자폐는 어떻게 정신병의 오명을 벗었나

중앙선데이

입력 2021.06.19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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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1호 21면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존 돈반·캐런 주커 지음
강병철 옮김
꿈꿀자유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는 자폐에 대한 백과사전이 아니다. 인간 사회가 1930년대부터 채 100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이 달라졌나 알려주는 역사책이다.

1942년 7월 미국정신의학협회 공식 학술지에 진지한 어조로 정신장애 어린이의 안락사를 옹호하는 논문이 실렸다. 인류학·동물학·유전학 등이 결합한 우생학은 나치 독일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예방적 우생학을 통해 결함이 있는 사람을 돌보기 위한 재정적 부담을 감소하자는 주장이 공공연히 펼쳐졌다.

이 책은 높은 담벼락 너머 수용시설에 감금된 ‘비정상’인 자들의 무표정과 멍한 눈동자를 설명하는 생생한 다큐멘터리다.

자해를 막기 위한 구속복을 입고 사지가 침대에 묶인 채 정신이 몽롱해지는 약을 먹으며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삶. 오물과 쓰레기 속에서 자신의 배설물로 범벅이 된 환자와 수용시설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다. 과수원 구석의 ‘낙과’처럼 비정상을 구분하고 배척해 한쪽으로 치워두는 건 불과 50여년 전까지 미국에서도 권장 받는 사회 시스템이었다.

이 책은 사람들이 어떻게 작은 힘을 모아 세상을 바꾸는지 알려주는 지침서다. ‘자폐증은 성에를 제거할 수 없는 고장 난 냉장고 같은 엄마 탓’이라는 게 1970년대까지도 학계의 정설로 통했다. 그걸 깬 건 엄마들이다.

자폐 청소년이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서핑을 배우는 모습. [사진 Christina Spicuzza]

자폐 청소년이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서핑을 배우는 모습. [사진 Christina Spicuzza]

친척 만나기조차 꺼리던 그들은 함께 모이고 단체를 만들고 서로에게 버팀목이 됐다. 끈질기고, 포기할 줄 모르는 엄마들은 기존 이론을 뒤집는 정보를 모으고, 피케팅을 하며 부조리를 알리고, 정치권에 압력을 넣으며 수용 시설로 향하던 아이를 스쿨버스에 태웠다. 루스 설리번, 버나드 림랜드, 조지와 앨리스 부부 등은 자폐증을 혐오하던 세상에 균열을 낸 초기의 ‘혁명가’다.

이 책은 학문과 이론의 발전 과정을 알려주는 보고서다. 좌충우돌하면서 한 뼘씩 지식의 한계를 넓혀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1950년대에는 환각물질 LSD를 활용한 엉뚱한 치료법이 시도되기도 했고, 1960년대에는 전기 충격기를 통한 처벌로 자폐아를 교정하려 했다. 또 구체적 사례를 통해 학문과 이론이 사회 정치적 분위기에 어떻게 휩쓸리고, 학계에선 얼마나 치열한 논쟁과 암투가 펼쳐지는지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책은 사람에 관한 책이다. 최초로 자폐 진단을 받았지만 이웃과 함께 살며 90세에도 골프를 즐기는 도널드, 다섯 살 때 수용시설에 들어가 74세에 나와 세상을 다시 배우기 시작한 아치, 옷장에 배설물을 짓이기고 차도로 무턱대고 돌진하던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자폐아 운동에 뛰어든 거슨 세인스, 환각물질 LSD를 치료에 이용하려 했던 엉뚱한 의료진, 자폐아 치료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브리짓 테일러 등 수많은 영웅이 등장한다.

최근에는 자폐를 ‘신경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등장했다. 심지어 약간의 자폐적 성향은 창의적이고 멋지다고 여기기도 한다. 이런 주장을 펼치는 이들은 ‘토머스 제퍼슨,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이작 뉴턴, 미켈란젤로, 모차르트 등이 어쩌면 자폐인이었을 지도 모른다’고 상상한다.

800쪽이 넘지만 저널리스트가 쓴 책답게 구체적 스토리가 이어져 쉽고 재밌게 읽힌다. 후주와 참고자료, 색인이 80쪽에 이를 정도로 학술적이기도 하다.

이해준 기자 lee.ha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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