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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취소되고 태릉·용산도 주민 반발…주택 공급 ‘빨간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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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1호 08면

[SPECIAL REPORT]
‘기승전 아파트’ 공화국

아파트 1만 가구 건설이 계획된 서울 노원구 태릉 골프장 전경. [연합뉴스]

아파트 1만 가구 건설이 계획된 서울 노원구 태릉 골프장 전경. [연합뉴스]

2017년 5월 출범 직후부터 주택시장 옥죄기에만 열중하던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5월 국·공유지를 중심으로 서울 도심에서 7만여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나섰다.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주택 수요를 자극하자 시장에 공급 확대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실제로 공급이 부족하다고 인정하고 정책 전환에 나선 건 아니었다. 실제론 공급이 부족하지 않지만 투기 세력이 퍼트리는 ‘공급 부족 프레임’을 깨 분위기를 반전하겠다는 취지였다. 당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후에도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수치로만 보면 문 정부의 ‘자신’도 일리는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규제를 대거 풀면서 주택 공급(인·허가)이 늘었고, 그 물량이 문 정부 1~3년차인 2017~2019년 대거 입주했기 때문이다.

스텝 꼬인 2·4 부동산 대책 #LH 직원 투기 탓 3기 신도시 난항 #설익은 공급 정책 연쇄 차질 우려 #서울의료원·DMC 부지 개발도 반발 #주택시장 불안, 패닉바잉 올 수도

국토부에 따르면 2018년 주택 준공 실적은 62만 가구가 넘는다. 10년 연평균 물량보다 16만여 가구가 많다. 문제는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다. 주택 수요자들은 직장·학교가 가까운 도심에서의 주택을 원했는데, 입주 물량 상당수는 도심 밖에 있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지난 10년 간 신규 재개발·재건축을 틀어막은 영향이다. 문 정부까지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규제하면서 기존 재개발·재건축 사업마저도 멈춰 섰다. 그러면서 집값은 급등했다. 노형욱 국토부 장관은 5월 인사청문회에서 “3기 신도시라든가 이런 것들이 (입지를) 서울 외곽지역이다 보니 서울 도심 수요라든가 이런 것들에 미스매치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문 정부는 뒤늦게 대규모 주택 공급에 나섰지만, 졸속으로 마련된 주택 공급 대책엔 먹구름이 끼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신도시 예정지 투기 사태로 3기 신도시 개발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데다 경기도 과천시 정부청사유휴지 개발 계획은 취소됐다. 주민·지자체와 충분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졸속 대책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도심 내 공급 예정지 가운데 지자체 협의를 완료하고 인·허가 단계에 들어간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그러다 보니 정부 공급 정책에 연쇄 차질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도 서울 목동 행복주택 사업이 주민 반발로 좌초한 뒤 연쇄적으로 사업이 중단·축소되면서 행복주택 공급은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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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태릉과 용산 사업도 위태롭다. 노원구 주민들은 사업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는다며 오승록 노원구청장에 대한 주민소환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 공급 축소 및 저밀도 개발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 노원구와 달리 주민들은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주민들은 21일까지 노원구 유권자 15%의 서명을 받아 주민소환을 청구할 계획이다. 용산에선 용산비상대책위원회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용산 정비창 부지 개발 계획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과천 계획안이 주민 반발로 철회되자 용산 주민도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강남구 서울의료원 부지(3000가구), 마포구 서부면허시험장(3500가구), 상암DMC 미매각 부지(2000가구) 등지도 지자체와 주민 반발이 나타나고 있다. 서초구 조달청 부지(1000가구)엔 정부가 공공임대를 검토키로 해 서초구청이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상황이 이렇자 국토부도 당초 공급 계획의 변경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공급 예정 물량을 확보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지자체와의 논의 과정에서 공급 물량 등은 당초 계획과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뒤늦게 공급 기조로 정책을 선회한 뒤 설익은 공급 대책을 내놓은 데 따른 예견된 차질이라고 지적한다. 양지영 R&C연구소 소장은 “해당 지역 주민 입장에서 정부 계획이 지역 여건과 생활에 도움이 될지 고민하는 건 당연한 것”이라며 “주민과 사전에 협의 없이 추진한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국·공유지에서조차 주택 공급이 차질을 빚고 있는데 ‘실체가 없는’ 2·4 대책이 제대로 되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86만여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2·4 대책은 서울 역세권을 개발해 12만3000가구를, 공공재건축 등을 통해 13만6000가구 등을 공급한다는 ‘말 뿐인’ 숫자가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정부의 주택 공급 대책이 어긋나면 또 다시 주택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에선 공급 계획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겨우 잠잠해진 패닉바잉(공포 매수)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최근 주택시장은 양도소득세 중과세 강화로 다주택자 매물이 더는 나오기 어렵다고 판단한 주택 매수자들이 집을 사려고 움직이면서 매수세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달 ‘주택매매시장 소비심리지수’는 133.8로 전월(128.4) 보다 5.4포인트 오르면서 5개월 연속 하락세를 멈추고 반등했다. 특히 서울·수도권 주택매매시장 소비심리지수는 139.5로 전월(133.1)보다 6.4포인트나 뛰었다.

국토연구원의 주택 매매시장 소비심리지수는 매수심리 흐름이 어떤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지표로 통한다. 국토연구원은 이 지수가 95 미만이면 주택시장이 ‘하강국면’, 95~115는 ‘보합국면’, 115 이상이면 ‘상승국면’으로 분류한다. 여기에 전세시장까지 심상치 않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3주 연속 전셋값 상승폭을 키우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6월 둘째 주(14일 기준)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은 0.11% 오르며 전주(0.08%)보다 오름폭이 확대됐다. 이는 지난 2월 셋째 주(0.08%) 이후 17주 만의 주간 최고 상승률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민간 공급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정부 공급 대책마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높아진 전·월세 가격이 집값을 떠받치며 집값 불안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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