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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만으론 먹고 살기 어려워” 직장인 절반 투잡·스리잡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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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1호 02면

평생직장 대신 ‘N잡러’ 시대

구독자 3만명을 보유한 유튜버 ‘뿅글이’(채널명·24)의 직업은 5개다. 특성화고를 졸업해 내로라하는 대기업 마케팅팀에서 근무하던 그는 3년 전 우연히 유튜브 채널 운영을 시작하며 직장인과 유튜버를 겸하는 ‘N잡’ 세계에 발을 들였다. 회사에서 가열차게 노트북을 두드리고, 야근으로 파김치가 된 모습까지 솔직하게 공개하자 누리꾼들 중심으로 ‘내 모습인 줄’, ‘현대 사회 직장인 다 똑같구나’ 식의 댓글 반응이 뜨거웠다. 평균 조회 수가 1만 회를 훌쩍 넘어서면서 콘텐트가 인기를 얻자 기업체 광고 제의도 이어졌다. 그는 “‘유튜브 수익 창출 금지’ 내용의 사내 공지를 본 순간 회사를 떠나야겠단 다짐을 했다”라며 “젊은 나이에 회사 생활에 안주해서 새로운 도전을 못 한다는 게 아쉬웠다”고 설명했다. 현재 새로운 직장으로 옮긴 그가 유튜버, 온라인 쇼핑몰 사장, 엑셀 강사, 마케팅 컨설팅 전문가까지 5개의 직업을 병행하며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나날을 보내는 이유다.

N잡으로 벌어들인 월평균 수입 95만원

MZ세대 ‘N잡’ 선택 아닌 필수로 여겨 #유튜버·강사·쇼핑몰 등 5개 겸업도 #“젊은 나이에 안주 않고 새로운 도전” #재능 공유 등 알바 진입장벽 낮아 #노후 대비 위해 40·50도 늘어나 #회사 기밀 유출 우려, 겸업 금지도 #“직업 자유” “직장윤리 위배” 논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산업 성장과 MZ세대의 자아실현 욕구가 맞물리면서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있다. 하나의 직장, 하나의 직업에만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경로로 수익을 창출하는 ‘N잡러’로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다. ‘N잡러’란 2개 이상의 수를 뜻하는 ‘N’과 직업을 뜻하는 ‘job’, 사람을 뜻하는 ‘~러(er)’가 합쳐진 신조어로,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본업과 부업이 철저히 분리된 ‘투잡’과 달리 3, 4개의 직업을 골고루 겸한다는 게 특징이다. 지식공유 플랫폼 해피칼리지가 직장인 102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49.2%가 N잡러이며, 이들이 N잡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월평균 95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경제적 수익 효과가 크다 보니 MZ세대에게 N잡은 점점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 가고 있다. 대기업 직장인 유진수(가명·33)씨는 지난달부터 배달의민족 ‘배민커넥트’ 배달원으로 일하고 있다. 시간·장소·운송수단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부수입을 올릴 수 있어서다. 퇴근 후 30분만 투자하면 월평균 20만원가량을 챙길 수 있다. 유씨는 “내 집 마련하기 어려운 시기에 N잡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평생직장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으니 자기계발을 하거나 생활에 경제적 보탬이 되는 N잡을 찾는 사람들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설문조사 결과, N잡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자금 마련 목적(43%)이 가장 많았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낮은 진입장벽도 매력적이다. 해피칼리지에 따르면 N잡러 중 34.4%가 재능공유 등 비대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거나 전문 기술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전문가 매칭 서비스 플랫폼 숨고에는 피부 관리 비법 전수, 여행 계획 세우기 등 이색 재능을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전문가들이 상당하다. 유튜버 뿅글이는 “휴대폰으로 셀카 편집을 잘하는 직장인 친구가 있어 부업을 권유했더니 2주 만에 직장인 한 달 월급만큼 벌었다”라며 “본인이 잘하는 것을 찾아서 도전하면 얼마든지 수익으로 연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N잡은 40·50세대 사이에서도 퍼지고 있다. 은퇴 이후를 고려한 안전장치가 될 수 있어서다. 세무회계 사무소에서 일하는 40대 직장인 김인선(가명) 씨는 지난 2월부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온라인 쇼핑몰에 뛰어들었다. 마스크 관련 용품을 판매하며 주업 대비 30%가량의 수입을 벌고 있다. 김씨는 “지금 직장을 그만두더라도 노후까지 먹고 살 수입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며 “N잡을 하면 할수록 본업만큼이나 충분한 수입원이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했다.

스마트스토어는 네이버에서 온라인 쇼핑몰을 무료로 운영할 수 있는 서비스다. 제품 판매·배송·CS를 자동으로 운영할 수 있다. 재고 관리나 자본금 없이도 운용이 가능하고, 절차가 복잡하지 않아 중장년층 중심으로 인기다. 사업자 등록증만 있으면 언제든지 온라인에 개인 샵을 개설할 수 있다.

네이버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7월까지 50대 신규 스마트스토어 사업자 수는 2019년 9월~2020년 1월 대비 84% 증가했다. 김씨 역시 “별다른 교육이 필요하지 않아 중장년층도 쉽게 스마트스토어 창업이 가능하다”며 “40·50세대 지인들도 제2의 인생을 대비해 스마트스토어 운영에 뛰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잘 하는것 도전하면 얼마든지 수익”

하지만 일부 기업에선 소속 직원의 N잡러 활동이 달갑지만은 않다. 본업에 충실한지 의문을 갖는다. 회사 기밀이 새어나갈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업무를 통해 취득한 정보로 수익을 창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대비해 기업들은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에 겸업 금지 또는 사전 허가가 필요함을 명시하고 이를 어길 시 징계를 하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직업선택의 자유와 직업윤리 준수 사이에서 쉽사리 어느 하나의 가치를 우위에 둘 수 없어서다. 김광훈 노무사(노무법인 신영)는 “회사마다 두고 있는 겸업 금지 조항만을 이유로 퇴직, 해고 등의 조치를 하는 것은 부당 해고가 될 수 있다”라며 “겸업을 하더라도 회사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경우까지 검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업무에 지장 없는 겸직까지 전면적,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반면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N잡이 자칫 직장 내 윤리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교수는 “회사 입장에서는 피고용인이 최대한의 능력치를 발휘했으면 좋겠다는 마인드를 가지는 게 당연하다”며 “프리랜서, 특수고용직의 경우 업무 상황에 따라 N잡을 선택할 수 있으나, 정규직의 경우는 여가에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업무시간에는 본업에 충실해야 하는 게 직업윤리”라고 지적했다.

“학생과 소통” vs “교육에 소홀”…교사 유튜버 논란

“교사의 학교 브이로그(Vlog·자신의 일상을 담은 동영상) 촬영을 금지해주세요”

지난달 19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린 청원인은 “교사들이 학교에서 브이로그를 촬영하는 일이 우후죽순 늘어난다. 영상을 보면 아이들의 목소리를 변조해주지 않고, 모자이크도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유튜버라는 부업을 허락하는 순간 본업에 쓸 신경을 다른 데에 돌리게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청원은 18일 기준 약 7800여명의 동의를 받았다.

최근 유튜브로 ‘N잡’하는 교사가 증가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교사 유튜브 채널은 2534건(중복 포함)에 달한다. 이들 중 광고수익 최소요건을 달성해 겸직 허가를 받고 활동하는 유튜브 채널은 528건이다. 국가공무원인 교사는 본래 국가공무원법 제64조에 따라 공무 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지만, 직무 수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유튜브 활동이 가능하다. 유튜브로 광고수익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매년 학교장의 겸직 허가를 받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학부모 입장에서는 교사 유튜버가 달갑지만은 않다. 수업시간, 급식시간, 하교시간 등 교사의 일상을 촬영하는 만큼 학생에게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어서다. 일부에서 ‘교사 브이로그가 아니라 학생 브이로그냐’라는 비판이 나온다. 청원인은 “자막으로 욕설을 다는 경우도 있다”며 “교사로서의 품위 유지는 어디로 갔냐, 교육자로서 떳떳한 행위냐”고 물으며 교사 브이로그 제한을 요청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최모(43)씨는 “모든 아이가 촬영에 동의했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만 유별나게 동의하지 않으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유튜브 영상을 편집할 시간에 아이들 관리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불만스러워 했다.

동료 교사 중 일부도 무분별한 유튜브 촬영을 못마땅해한다. 교사 유튜버로 활동 중인 N꾸림씨는 “학생들과의 소통을 위해 일회성 촬영을 할 순 있지만,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브이로그를 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반면 교사 유튜버 박모씨는 "‘선생님 영상 보고 교사를 꿈꾸게 됐다’는 학생들도 있다. 유튜버가 꿈인 학생들에게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입장문을 통해 “학교 브이로그는 학생들과 친근하게 소통하는 창구, 특히 지금과 같은 언택트 상황에서는 더욱 사제 교감의 기능을 하고 있다”며 “다만 촬영과 편집 등 영상 제작이 교육활동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아야 하고 제작 목적과 내용도 점검할 필요는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 교원정책과 관계자는 “교사 유튜브 채널의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문제가 다수 발견되면 관련 규정을 보완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오유진 인턴기자 oh.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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