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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7 09:31:20

럭셔리 단지 강남 ‘빗장 도시’ 돼 양극화 심화…아파트 이름이 계층 상징 됐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1.06.19 00:02

업데이트 2021.06.19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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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1호 06면

[SPECIAL REPORT]
‘기승전 아파트’ 공화국

2017년 2월 입주한 서울 통일로 경희궁자이 2단지. 지상을 공원처럼 꾸몄다. 박종근 기자

2017년 2월 입주한 서울 통일로 경희궁자이 2단지. 지상을 공원처럼 꾸몄다. 박종근 기자

아파트는 현시대를 사는 한국인 모두에게 애증의 대상이다. 누구나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누구도 쉽게 가질 수 없다. 시영 아파트, 주공 아파트의 이름을 단 서민 주택의 대명사였던 아파트가 아크로리버파크(반포), 트리마제(성수동) 같은 상표가 붙으며 프리미엄을 얹어 거래하는 명품이 됐다. 문재인 정부의 규제 위주 부동산 정책 때문에 이런 현상은 더 심해졌다. 특히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9년간 재임하면서 낡은 아파트의 재건축을 철저히 틀어막은 서울에서는 모두가 바라는 ‘역세권 신축 대단지’ 아파트의 공급이 거의 끊겼다. 투기의 대상이라고 손가락질하면서도 들어가기 위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을 마다 않는 이율배반의 상징, 아파트는 우리 사회에서 어떤 존재인가.

서민 주택서 명품으로 진화
반포·잠실 등 시영·주공 환골탈태
주차장·학교·공원 등 인프라 풍부

서울 재건축 10년째 억제
‘역세권 신축’ 품귀 탓 가격 뜀박질
값싼 집 찾아 5년 새 44만 명 경기로

단독·빌라는 여전히 외면
놀이터·녹지 등 주거 환경 개선
다양한 주택 만들게 규제 풀어야

#현재-헌집 줄게 새집 다오

서울은 이제 더는 ‘1000만 도시’가 아니다. 1988년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넘어선 서울 인구는 1992년 1097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꾸준히 감소해 지난해에는 991만 명에 그쳤다. 32년만에 1000만명선이 깨진 것이다. 하지만 살 집은 아직도 넉넉하지 않다. 전체 세대에서 1∼2인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63.8%까지 올라가면서 가구수는 2005년 331만가구에서 2019년 389만가구로 꾸준히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96%에 그쳤다.

아파트는 더 부족하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서울의 총 주택 373만호 가운데 아파트는 46%인 172만호다. 가장 인기 있는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을 합쳐도 50만호 수준이다. 게다가 서울 아파트는 하루가 다르게 낡아가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 지은 지 40년이 넘은 아파트가 5만호, 30년 이상인 아파트가 24만호다. 새 아파트는 갈수록 찾기 힘들다. 단독주택은 더 심각하다. 절반 이상이 지은 지 30년이 넘었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는 올해 서울에서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를 3만717가구로 집계했다. 지난해 입주 물량(4만9277가구)보다 37.6% 줄었다. 내년 입주 물량(2만423가구)은 여기서 또 33.5% 줄어든다. 정부가 서울에서 재건축·재개발 규제 등으로 아파트 공급을 억제한 후유증이다. 서울 아파트 중위 가격은 5월 기준으로 9억 9833만원에 달했다. 시민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새 아파트를 찾아 경기도로 빠져나갔다. 2017년 이후 44만명이 하남·김포·고양·남양주·용인 등으로 이동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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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해성 아주대 건축학과 교수는 “서울 시민들을 주차도 어렵고 엘리베이터조차 없는 낡은 아파트에서 고통을 감수하며 살게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불로 소득이 생긴다고 계속 억제만 하다가는 나중에 한꺼번에 재건축이 몰리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용적률을 높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도 서울시 모든 토지의 수용 용적률의 반의반도 안 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용적률을 높이면 주거환경이 악화되지 않느냐고 걱정한다. 하지만 높인 용적률을 소진할 때까지 50년 정도 걸리고, 그동안 인프라를 차근차근 채워나가면 된다는 것이 제 교수의 생각이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다양한 형태의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정부에서 분양가상한제 등의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북유럽은 아파트를 선호하지 않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이 설계해 외관부터 살만한, 보기 좋은 아파트가 많다”며 “제도적으로 저가로만 공급하게 하니 품질이 낮은 획일적인 아파트가 분양되고, 그런데도 수요가 넘쳐 가격이 오르니 규제를 더 강화해 개성 있는 단지가 나오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과거-엘리트가 된 주공 아파트

입주한 지 45년이 된 서울 여의도 한양아파트. 지상이 자동차로 가득하다. 정준희 인턴기자

입주한 지 45년이 된 서울 여의도 한양아파트. 지상이 자동차로 가득하다. 정준희 인턴기자

1957년 종암아파트, 62년 마포아파트가 서울에 선을 보였다. 본격적인 보급은 강남 개발과 함께 이뤄졌다. 1970년대 들어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시작으로 남서울아파트(현 반포주공아파트), 압구정 현대아파트, 잠실 주공아파트 등이 잇따라 분양됐다. 하지만 1975년까지 서울 아파트는 5만8000호에 그쳤다.

80년대 일산 분당 신도시, 목동 신시가지 개발과 함께 아파트 대중화가 시작됐다. 2베이 구조에 지역난방, 엘리베이터 등을 갖춘 2세대 아파트로 볼 수 있다. 2000년을 전후해 3베이 구조, 지하주차장 등을 갖춘 3세대 아파트가 등장했다. 최초의 초고층 대단지 주상복합으로 불리는 타워팰리스가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 1세대 아파트를 재건축한 최근 아파트 단지는 헬스장, 도서관, 조식 서비스 등을 갖추고, 4베이 설계와 차 없는 지상에 공원식 조경을 갖추는 등 고급화에 주력하고 있다. 잠실 주공아파트 1~3단지가 엘리트(엘스, 리센츠, 트리지움)으로 재건축되는 식이다.

정헌목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인류학)는 “기본적으로는 60년대, 70년대 빠르고 효율적으로 주거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국가 정책으로 아파트를 만들기 시작했다가, 80년대 이후부터 조금 더 비싸더라도 튼튼하고 편리한 주거 공간으로 기획한 것이 단지형 아파트의 시초”라며 “한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생겨난 대기업 종사자 등 중산층이 핵가족화와 맞물려 편리하고 안전한 아파트로 이동하면서 기본적인 삶의 양식으로 자리 잡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3세대 이후 아파트는 도시의 인프라인 학교·공원·도서관 등의 역할도 떠맡고 있다. 대규모 재건축 단지는 기부채납 등으로 이런 인프라를 공급하고, 심지어는 임대주택 공급자 역할까지 맡고 있다. 문제는 ‘대규모 고급 단지’라는 배타적인 커뮤니티로 발전하면서 아파트 간, 또는 아파트-단독주택 빌라 간의 양극화를 부추긴다는 점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피에르 부르디외 『구별짓기』에서 지적한 것처럼 아파트 이름이 곧 사회적 위치와 재력을 대변하는 상징이 됐다”고 말했다. 지리적 측면에서 어떤 지역에 사느냐, 아파트 고유의 이름에서 같은 동네라도 어떤 사회적·지위를 차지하느냐를 보여줘 다른 사람과 구별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서울 강남은 ‘빗장 도시(gated city)’가 됐다.

황세원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는 “단지가 사유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담장을 두르고 외부인의 출입을 막으면서 도시 안의 고립된 섬처럼 파편화된다”고 지적했다. 4세대 단지들은 80년대, 90년대처럼 담장을 두르지는 않지만, 주민 전용 시설을 경계부에 두텁게 배치해 더 교묘하게 안과 밖을 구별 짓는다. 황 교수는 “한강 변이나 북한산 기슭의 대단지 아파트가 공공 조망을 방해하고 독점하는 차폐경관 현상을 일으키거나,  대규모 단지가 보행권을 제약하는 등의 사회적인 도시 공간의 불평등성에 대해 인식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미래-빌라촌 어찌하오리까

아파트 공화국의 미래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일단 좁은 땅을 활용하는데 아파트 단지가 효율적이라는 점에는 대부분의 전문가가 공감한다. “대단지 아파트는 사실 공공에서 마련해야 하는 놀이터, 어린이집, 경로당 등까지 떠맡고 주차 문제도 해결할 수 있어 인프라 측면에서 좋을 수밖에 없다”(강인호 한남대 건축학과 교수), “구매자는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고, 공급자는 단독주택을 여러 채 짓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드는데 분양도 잘되니 이득이고, 정책 입안자는 단기간에 많은 주택을 공급할 수 있으니 만족”(최윤경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최선은 아니지만 주차장·놀이터·녹지 등 일반 주거지의 환경이 워낙 나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인기”(박인석 명지대 건축학과 교수) 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만큼 단점도 명확하다. 강인호 교수는 “골목길은 사라지고 큰 도로만 남으면서 도시를 구성하는 알갱이가 너무 커진다”고 말했다. 우리 몸으로 따지면 동맥·정맥만 남고 실핏줄은 다 사라지는 셈이다. 강 교수는 “단독주택을 다 헐고 아파트를 짓기는 쉽지만, 한번 지은 아파트를 다시 주택지로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며 “도시가 굉장히 드라이해지고 동맥경화에 걸려, 장기적으로 인구나 산업 여건의 변화에 따른 기능적 대응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인석 교수는 “중산층 이상의 경제력은 점점 커지는데 갈 만한 주거 공간은 아파트 단지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제는 아파트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 안에서 고급 아파트 단지, 중급 아파트 단지, 저급 아파트 단지 이렇게 계층화될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결국 시민들 간의 위화감을 조성하는 문제가 될 테고, 더 이상 시민 공동체라는 건 유지할 수 없다. 박 교수는 “계속 다가구주택 동네, 단독주택 동네를 방치하면 몽땅 아파트 단지로 갈 수밖에 없다”며 “더 늦기 전에 일반 주택지구도 아파트 단지 못지않은 살만한 수준으로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고, 사회의 책무”라고 지적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나쁘게만 볼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제해성 교수는 “아파트 공화국이라 나는 오히려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우리 국민이 아파트 단지를 좋아하는 것이 다행이라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아파트나 고층 빌딩에 사는 것 자체가 못사는 것이라고 낙인이 찍혀있는데 우리는 반대다. 제 교수는 “아파트를 막을게 아니라 단독이나 빌라촌에 부족한 부분, 예를 들어 공영 주차장, 어린이집, 공원을 정부에서 지어주는 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상황이 이어지는 한 아파트를 향한 열망을 누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부 교수는 다양한 주거 형태를 만들기 위해 지역마다 한 구역씩 규제 샌드박스 지역을 지정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지금의 건축 법규를 다 따라가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어렵다”며 “용적률만 정해주고 ‘주택 관련법 다 무시해도 좋으니 창의적인 걸 한번 만들어봐!’라는 시도를 몇 번하다 보면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형태의 주거지가 나올 수 있고, 그 뒤에 그 주거 형태에 맞도록 법을 개정하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창우 기자, 오유진·원동욱·윤혜인 인턴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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