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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100% 자유, 피카소 그림에 화투 합성도 매력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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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1호 16면

[SUNDAY 인터뷰] 양수리서 그림 전시회 연 조영남

칠순 조영남씨는 일인다역을 거뜬히 해낸다. 신인섭 기자

칠순 조영남씨는 일인다역을 거뜬히 해낸다. 신인섭 기자

일흔여섯 영남씨는 오늘도 바쁘다. 어제도 바빴고 내일도 그럴 것 같다. 어제는 이를테면 재판 때문에, 오늘·내일은 미술 전시 때문이다. 5년을 끈 초유의 미술품 대작 사기 사건에서는 피고인 화가로, 그러면서 본업인 가수로, 지난 2월부터 중앙SUNDAY에 매주 한 면 연재하는 회고록 ‘예스터데이’의 필자로, 거기다 약방의 감초처럼 수시로 호출되는 방송인으로, 웬만한 젊은 사람에게도 벅찬 일정을 너끈히 소화하는 그를, 나이대접을 잠시 접고, 영남씨라고 젊게 부르자.

문인화처럼 캔버스에 제목 넣어 #난 고집이 없는 B급 아티스트 #미술 한계 없고 사람들 마음 열려 #밀레·호크니 등 거장 그림 합성 #윤여정 관련 ‘안티’ 이해 어려워 #다투기보다 열심히 사는 수밖에

이런 영남씨건만 우리가 그에게 항상 다정했던 건 아니다. 언제부턴가 그에게는 적지 않은 ‘안티’가 생긴 듯하다. 최근엔 전 부인 윤여정씨의 아카데미상 수상과 관련된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윤씨가 상을 받아 “바람피운 남자에 대한 통쾌한 복수를 한 것 같다”고 한 발언 말이다. 예민한 페미니즘 감수성에 둔감했거나 이를 무시한 결과다. 10여 년 전엔 도발적인 제목의 책 때문에 논란의 복판에 있었다. 『맞아죽을 각오로 쓴 100년만의 친일선언』 말이다.

어쩌면 그의 삶과 예술세계 자체가 논쟁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근엄한 성악도에서 ‘딴따라’ 대중가요 가수로, 어느 순간 화가 겸업으로, 영남씨가 변신을 시도할 때마다 우리는 명확해야 마땅한 장르 간 구획, 거기서 오는 오래된 안정감이 공격받는다고 느꼈던 건 아닌가.

‘조수가 대작’ 사기 사건 후 작가 대접

16일 개그맨 김종석씨가 운영하는 갤러리 카페 ‘양수리빵공장’을 찾았다. ‘현대미술가 조영남 수리수리 양수리 화투전’이 열리는 장소에서 영남씨의 예술과 삶, 논란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서다.

현대미술은 결국 돈과 같이 간다. 대작 사기 사건에서 우리가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요즘 미술 작품은 한 땀 한 땀 공들이기보다는 조수를 써서 ‘생산’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런 관행은 사법적 개입의 대상이 아니었다. 1층에서 5층까지 카페 겸 갤러리 공간 한켠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참고하세요! 내년(22년)에는 현대미술가 조영남님의 그림값이 30% 이상 인상예정이랍니다’.

중앙SUNDAY에 연재하는 회고록 ‘예스터데이’ 육필 원고. 신인섭 기자

중앙SUNDAY에 연재하는 회고록 ‘예스터데이’ 육필 원고. 신인섭 기자

카페 주인 김종석씨는 “지난 4일 오픈 이후 모두 14점이 팔렸다. 그중 9점은 2030 MZ 세대가 구입했다”고 귀띔했다. 전시는 다음달 4일까지다. 영남씨와 마주 앉았다.

지난해 미술품 대작 사기사건 대법에서 승소한 이후 몇 번째 전시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90점 정도 전시한다. 전시 장소가 넓다 보니 옛날 작품 중에서도 덜 보여드렸던 걸 가지고 나왔다.”
화투 그림이 유명하지만 바둑·태극기도 그림에 활용한다. 뿔테안경을 활용해 조각작품도 만들었는데, 대표작을 꼽는다면.
“다 대표작이지.”
작품 제목을 그림에 써넣는 게 특이하다.
“캔버스에 제목을 쓰는 작가가 있고 안 쓰는 작가가 있는데 나는 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는 글과 그림이 섞여 있다. 그런 문인화의 전통을 이어받아 제목과 작가 이름을 화면에 써넣는 거다.”
영남씨는 팝아티스트 아닌가. 서양 미술에서는 그런 전통이 없는 것 같은데.
“사람들이 작품을 쉽게 감상할 수 있도록 편의성을 위해 제목을 적는 거다. 그런 점에서 나는 B급 아티스트다. 작가로서 고집이 없다. 다른 화가들은 사람들과 타협하지 않는 것을 멋으로 알고, 작품을 통해 뭔가 오소독스하게(정통으로)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데, 나는 사람들 얘기를 잘 듣는다. 내 그림 속 화투가 좋다고 하면 다음 그림에 화투를 더 많이 집어넣는 식이다.”
일종의 쌍방향이다.
“맞다. 플렉서블(flexible)하게, 작가라는 티를 전혀 안 내고 싶다.”
지난해 대법 승소도 작용했을 텐데 이제  작가 대접을 받는 것 같다. 최근 ‘홍대 이작가’가 구혜선·솔비 같은 ‘아트테이너(아트+엔터테이너)’의 작품들을 혹평하면서도 조영남은 미술작가로 인정할 수 있다고 했는데.
“내가 밀레의 명화 ‘이삭 줍는 여인들’에 바둑판을 합성한 작품을 그린 게 1990년대 후반이다. 과거에 그렇게 했기 때문에 2020년에, 영국의 현대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나무 그림(‘물가의 더 큰 나무들’)에 화투를 그려 넣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화투나무가 있는 풍경’ 같은 작품을 그릴 수 있었던 거다.”
밀레나 호크니 같은 거장들의 유명작품 덕을 좀 보겠다는 것 아닌가.
“그렇게 말해도 할 수 없다. 오히려 정확하게 본 거다. 현대미술은 한계가 없다. 피카소가 그림은 이렇게 그려야 한다, 그런 얘기 한 적 없다. 미술은 그냥 100% 자유다.”
문학으로 치면 남의 작품을 짜깁기하는 패러디나 혼성모방 느낌인데, 그림에서는 이런 시도가 미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나.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에 내가 화투를 붙였다고 치자. 그럼 ‘피카소 형님, 제가 한 수 위로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다. 피카소 그림을 더 매력 있게 만드는 거란 말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건 그렇지.”
이런 식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화가가 될 수 있나.
“누구나 될 수 있지만 화가가 되고 싶다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도 않다.”
대상과 비슷하다는 감동보다는 인식의 새로움을 주는 게 현대미술의 요체인가.
“미술 아니었던 것들이 현대미술에서 미술작품이 되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크게 확 열렸다. 그렇게 마음을 열어놓고 사니까 사는 게 편해진다.”

남들이 잘나가면 끌어내려 괴상망측

그림을 그리면 기분이 좋아지나.
“딸이 옆에서 들락날락해도 별로 신경 안 쓰고 몰두하게 된다.”
지난달 고법에서도 지난해 대법 판결과 비슷하게, 조수가 작품 일부를 그린 미술작품 판매를 사기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와 일련의 미술품 대작 사기 소송 사건이 완전히 종결된 느낌인데.
“지난해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얘기했지만, 국가가 세금을 들여서 가수이면서 현대미술 애호가였던 사람을 완전한 화가의 반열에 올려준 사건이다. 그래서 내가 그림을 안 그릴 수 없는 입장이 됐다. 나라에 고마울 수밖에.”
송사 전후를 비교하면 작품 호당 가격이 올랐다고 들었다.
“그림 호당 가격이 50만원에서 70만원으로 올랐다.”
조각 작품 ‘안경변주곡’(1992). [사진 아산갤러리]

조각 작품 ‘안경변주곡’(1992). [사진 아산갤러리]

그림 한 호는 우편엽서 크기다. 가로·세로 90×70㎝ 크기의 30호 작품의 경우 호가가 2000만원이라는 얘기다. 대법원 판결 이후 팔린 그림 총액이 7억원에 이른다는 보도에 대해 묻자 “판매는 잘 되지만 정확한 금액을 얘기하기는 그렇다”고 했다.

결국 예술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에 사법부가 개입한 셈인데.
“저개발국가에서 개발국가로 가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는 한국이 이미 선진국 반열이라는 진단도 있다.
“선진국 되려면 아직 멀었다. 결국 조수 문제에서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것 아닌가. 그래서 지난해 조수를 공모하겠다고 했더니 대학교수인 한 후배가 그랬다가는 또 큰일 난다고 말려서 그만뒀다. 이게 무슨 선진국이냐. 선진국이라면 하고 싶은 얘기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야 한다. 윤여정 상 탄 날도 그렇다. 소감을 묻길래 뻥 하고 복수를 당한 느낌이어서 솔직하게 그런 얘기를 했더니 사람들이 희한하게 해석하더라. 이런 식이어서는 윤여정과 관련된 나의 현재 상태에 대한 내 느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지 않나. 이준석이 얼마나 깝깝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낙후된 나라에서 선진국 정치인 흉내를 내고 있으니 말이다.”

조수 문제는 미술품 대작과 관련된 시비도 시비지만 알려진대로라면 영남씨가 조수 수고비를 지나치게 낮게 책정해 사람들의 공분을 부른 측면도 크다. 이 부분, 영남씨는 할 말이 꽤 있는 듯했다. 결국 민사 영역의 진실을 짧은 인터뷰 문답으로는 제대로 알아내기 어렵다. 영남씨는 “조수는 계속해서 쓸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전시를 제안하는 갤러리 측에서 조수 급료를 지급하도록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안티가 적지 않은 듯한데, 안티와 공존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면.
“내가 일찍이 ‘안티 예찬’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10여 년 전 친일 시비가 일었을 때 맷집을 키웠다. 결국 한 번 돌아선 사람을 다시 내 쪽으로 돌아보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다. 그 사람들과 일일이 다투다가는 결국 죽는다. 마광수가 죽었고, 이문열이 기를 못 펴지 않나. 다만 최근 윤여정 관련 안티는 이해하기 어렵다.”

영남씨는 그러면서도 “이 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재미있는 나라”라고 했다. 여러 시간대가, 그러니까 전근대와 근대가 뒤섞여 있다는 얘기였다. “남들이 잘나가면 끌어내려야 속 시원한 특징이 나라를 움직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집단적인 뜨거움이 결국 나라 전체적으로는 “괴상망측한 경쟁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는 거다. 한국인들의 극성맞은 성격이 미술의 백남준, 음악의 윤이상, 영화의 봉준호 같은 창의적인 인물의 탄생과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그럴 듯했다. 기자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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