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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다지고, 러시아 가두고…바이든, 최종 타깃 시진핑 겨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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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외교 시계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유럽 순방을 다녀온 다음 날 백악관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 순방 성과를 기자들에게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바로 다음 '목적지'인 중국을 꺼내든 것이다.

바이든, 첫 해외 순방 마치자마자 #백악관 "시진핑 주석과 회담 검토" #한·일·유럽·러시아 정상회담 후 #미·중 패권경쟁 담판 돌입 전망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7일(현지시간) 전화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앞으로 시 주석과 교류할 기회를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급 대화를 대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대통령 발언은 중국과 시 주석에게도 적용된다"면서다.

설리번 보좌관은 "현재로써는 구체적 계획이 없지만, 두 정상 모두 10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에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곧 두 정상이 관여할 수 있는 적절한 양식을 마련하는 데 착수할 것이다. 전화 통화가 될 수도 있고, 다른 국제 정상회의에서 별도로 만날 수도 있으며, 또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설리번은 "다음 순방 준비로 이번 순방을 끝마치는 건 결코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라고 농담했지만, 바이든 외교팀은 숨돌릴 새도 없이 바로 미·중 정상회담에 시동을 건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백악관으로 처음 초대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4월)와 문재인 대통령(5월)과 정상회담에 이어 첫 해외 방문인 유럽 순방(6월)까지 달리며 준비를 마친 뒤 시 주석과 담판을 벌이려는 수순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9일 유럽 순방에 나서면서 "동맹을 강화하고, 유럽과 미국이 단단하다는 것을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중국에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요약하면 세계에 "미국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리고,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을 규합하고, 러시아에 '레드라인'을 경고하는 것을 순방 목표로 삼았다. 얼마만큼 달성했는지 목표별로 짚어봤다.

① "미국이 돌아왔다"

영국 도착 후 첫 일정으로 미군 장병과 가족 앞에 선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돌아왔다"고 연설했다. 주요 7개국(G7)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연설 등 가는 곳마다 이 표현은 빠지지 않았다. 바이든 외교 정책의 핵심이다.

바이든은 취임 연설에서 "우리는 동맹을 회복하고 다시 한번 세계와 협력할 것"이라며 세계 리더 자리로 돌아오겠다고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로 고립을 자처한 미국이 다자외교 무대로 복귀한다는 신고였다.

이번 순방은 이를 실현하는 첫걸음이었다. 전통적 군사동맹이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는 거대 블록인 유럽을 첫 행선지로 정했다. 유럽 정상들은 일단 미국의 귀환을 환영했다. 트럼프 행정부 4년간 국방비 인상 압력과 미군 철수 엄포, 국제기구 탈퇴 압박에 시달린 데 대한 반작용이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바이든과의 정상회담을 "신선한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는 것"에 비유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클럽에 속해 있고, 기꺼이 협력할 의사가 있는 미국 대통령이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했다.

다만, 유럽 정상들은 '4년 후에는?'이란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바이든이 남아 있을지, 트럼프가 다시 나타날지, 제2의 트럼프가 나올지 의구심을 갖고 바라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② 유럽과 대중(對中) 전선을 짜라

바이든의 유럽 순방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 사람은 시진핑 주석과 중국이었다. G7과 나토, 유럽연합(EU) 정상회의 공동성명 모두 중국을 강도 높게 압박하며 '포위망'을 구축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도 바이든에게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다니 단연 중국은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모두 알지만 말하지 않고 있는 문제)였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촉발한 미·중 대결 구도를 물려받았다. 차이라면 트럼프는 미국 홀로, 중국에 강공을 펼치는 전략이지만 바이든은 동맹과 함께, 경쟁하겠지만 협력도 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단 바이든은 유럽 동맹들을 대중 전선에 동참시키는 데 성공했다. G7은 공동성명에서 중국을 처음 언급했고, 나토는 지난해 공동성명에서 중국을 "기회이자 도전"이라고 했다가 이번에 "기회"를 삭제했다.

G7 정상들은 공정하고 투명한 경제 시스템을 훼손하는 비시장 정책과 관행을 지적했다. 중국에 신장위구르 지역의 인권을 존중할 것을 촉구하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성까지 강조했다. 코로나19 기원에 대한 재조사를 제안했다.

나토는 중국의 '군사적 야망'을 동맹에 대한 "구조적 도전(strategic challenge)"으로 규정했다. 러시아는 "위협", 중국은 "도전"으로 명명해 수위를 조절했지만, 나토가 아시아 소속 중국을 겨냥한 것 자체가 나토 전략의 방향 전환을 의미한다고 영국 가디언이 전했다.

미·EU는 '무역 기술 위원회(TTC)'를 설치해 인공지능, 퀀텀 컴퓨팅, 바이오기술 등 신기술 표준에 관한 중요 정책을 조율하기로 했다. 중국의 기술 굴기를 견제하려는 것이다. 17년 묵은 항공기 보조금 분쟁도 '휴전'으로 갈등을 봉합했다. 동맹 끼리 싸우지 말고 중국 대응에 주력하자는 취지다.

물론 한계도 있다. 선언을 넘어선 구체적 실천 방안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예컨대,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에 대응하기 위해 바이든이 제안한 ‘더 나은 세계 재건(B3W)’은 저개발국 인프라 투자에 지원할 자금을 아직 모집하지 못했다.

제임스 린지 미 외교협회(CFR) 부회장은 NYT에 "바이든은 유럽인들로부터 말(words)을 얻었지만, 행동(deeds)을 얻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국가별 입장은 제각각이다. 수출 강국인 독일은 중국과의 경제적 연결 때문에 강대강 대치를 원하지 않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중국은 여러 이슈에서 라이벌인 동시에 여러 이슈에서 동반자"라며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와 대화가 더 필요했는지, 바이든 대통령은 그를 7월 백악관으로 초대했다.

바이든을 환영한 마크롱 대통령도 "중국은 북대서양에 있지 않다"며 "나토 임무의 핵심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중국의 부상을 비판하는 미국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③ 러시아를 동여매라

바이든 대통령은 일주일 가까이 대서양 동맹과 호흡을 마친 뒤 마지막 일정으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푸틴 대통령과 회담했다. 바이든 측 제의로 이뤄졌다.

바이든은 푸틴을 만나기 전 한 나라가 공격받으면 모두 나선다는 나토 조약 5조 상호방위를 거듭 강조했다. 일명 ‘모두는 하나를 위해, 하나는 모두를 위해(One for all, all for one)’ 약속이다.

임기 초반에 푸틴 대통령을 만난 것은 러시아에 레드라인을 알려주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ABC 뉴스는 "미국이 러시아를 '박스 안'에 가둔 뒤 더 큰 적인 중국을 상대하려는 전략"이라고 풀이했다.

러시아는 세계 2위 핵보유국이자 군사 강국이지만 경제 규모는 쪼그라들어 지금은 스페인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 대선에 개입하거나 정부기관 해킹, 송유관 회사 랜섬웨어 공격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지목됐지만, 미국에 보다 장기적이며 전략적인 도전 과제는 중국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에게 에너지, 통신, 급수, 농업 등 핵심 인프라 16개 항목을 건넨 뒤 "이 시설은 사이버 공격 금지 대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레드라인’이 어딘지 정확하게 보여준 셈이다.

두 정상은 회담을 마친 뒤 공동성명에서 “핵전쟁은 이길 수 없으며, 절대 일어나서도 안 된다"고 명시했다. 냉전 시대 정점이던 1986년 로널드 레이건과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낸 공동성명을 재인용했다.

백악관은 푸틴과 정상회담에서 러시아 봉쇄라는 목표를 이뤘다고 판단하고, 시 주석과의 만남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돌아왔지만,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왔다. 동맹과 함께 미·중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전략을 드러냈다. 한국 외교 시계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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