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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환경운동가의 24시 “세상은 툰베리를 너무 단순히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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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성장 여정을 그린 다큐 '그레타 툰베리'. [사진 영화사 진진]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성장 여정을 그린 다큐 '그레타 툰베리'. [사진 영화사 진진]

“G7 정상들은 기후와 관련한 공허한 약속을 뽐내고 이행되지 않은 오래된 약속을 반복하며 좋은 시간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G7 리조트 상공에서 제트비행기가 공중곡예를 펼치는 가운데, 스테이크와 바닷가재가 나오는 바비큐 축하연을 벌이다”

다큐 '그레타 툰베리' 찍은 그로스만 감독 #첫 1인 시위부터 1년여의 '성장기' 그려 #"세상을 보는 특별한 관점 담고 싶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8)가 트위터에 잇따라 올린 글이다. 주요 7개국(G7) 및 문재인 한국 대통령 등 초청국 정상들이 영국 공군 특수비행팀 ‘더 레드 애로우스’(The Red Arrows)의 에어쇼를 관람하는 사진도 함께였다. 에어쇼는 회의 이틀째인 12일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에서 열렸다. 스테이크와 바닷가재는 같은 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주최한 만찬 메뉴였다.

툰베리는 “기후위기와 생태위기가 급속히 심각해지고 올해 탄소배출 증가폭이 역대 두 번째로 클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G7은 어마어마한 화석연료를 소비했다”라고도 비판했다. 기후 위기에 대한 일관된 경고와 함께 특유의 ‘송곳 일침’을 느낄 수 있는 트윗이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비판한 그레타 툰베리의 트위터. [트위터 캡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비판한 그레타 툰베리의 트위터. [트위터 캡처]

2019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노벨평화상 유력 후보에 이름을 올린 환경운동가. 2019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에 이어 그해 포브스가 꼽은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도 선정된 그레타 툰베리다. 이번 G7 관련 뉴스도 그렇듯 그가 매서운 트윗을 남길 때마다 전 세계 언론이 앞다퉈 이를 전한다. 트위터 팔로어도 무려 500만에 육박한다. 3년 전 폭염을 견디지 못한 15세 툰베리가 스웨덴 의회 앞에서 ‘기후 학교 파업’ 1인 시위를 시작했을 때 과연 이같은 오늘을 예감할 수 있었을까.

“처음엔 당연히 예상치 못 했다. 영화의 첫 구상이란 것도 없었다. 친구로부터 그레타가 기후 시위를 준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땐 몇 시간만 찍어보고 사무실로 돌아가 ‘영화로 찍을 만큼 흥미롭지 않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세계가 나를 계속해서 놀라게 했다. 리얼리티가 픽션보다 강하다.”

17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그레타 툰베리’의 나탄 그로스만 감독이 본지와 서면 인터뷰에서 밝힌 얘기다. 툰베리와 같은 스웨덴 출신의 감독은 2018년 8월 카메라를 들고 의사당 앞에 가서 시위 팻말을 든 소녀를 만났다. “나의 첫 인상은 그녀가 기후변화에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지만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점이 흥미로웠다.” 무엇을 찍게 될지, 혹은 소녀가 무엇을 하게 될지 둘 다 몰랐다. 그때 사람들이 모여들어 소녀에게 질문을 던졌고 소녀는 또박또박 답했다. 이렇게 시작된 촬영은 2019년 9월까지 이어져 101분짜리 ‘환경운동가 성장기’로 탄생했다.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성장 여정을 그린 다큐 '그레타 툰베리'. [사진 영화사 진진]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성장 여정을 그린 다큐 '그레타 툰베리'. [사진 영화사 진진]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성장 여정을 그린 다큐 '그레타 툰베리'. [사진 영화사 진진]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성장 여정을 그린 다큐 '그레타 툰베리'. [사진 영화사 진진]

“나는 항상 그레타의 관점에서 영화를 찍으려 했다. 그녀의 키만큼 카메라를 낮춰서 관객이 내면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1년 넘게 따라다니면서 나는 그레타가 매우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고 언론은 그녀를 너무 단순히 묘사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다른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툰베리 가족의 신뢰 속에 거실, 식당, 침실까지 밀착해 찍은 영화는 때로 개인적인 ‘셀카’ 느낌까지 준다. 그 속에서 툰베리는 각종 원소 주기율표나 기후 관련 통계를 줄줄 외우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인다. 반면 맞춤법에 집착하거나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안 하겠다고 떼를 쓰는 장면에선 평범한 어린아이 같기도 하다. 일종의 자폐증적 성향을 보이는 ‘야스퍼거증후군’과 관련해서도 별달리 감추는 모습이 없다. “그 때문에 힘들지 않느냐”라는 기자 질문을 오히려 무색하게 만드는 답변까지 한다.

“많은 이들이 야스퍼거를 장애라고 말하지만 그녀는 ‘내가 더 집중하게 하고 기후변화라는 복잡한 주제에 계속해서 관심 갖게 한다’고 답했다. 난 이 부분이 독특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어떤 주제에 계속 관심을 가질 집중력이 없다. 그것이 우리가 그녀에게서 배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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툰베리의 1인 시위에 할리우드 배우이자 정치인 출신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관심을 보이고, 그가 관심을 보였단 사실이 언론의 관심을 끌고, 그 관심을 갈망하는 정치인들이 가세하면서 바람은 태풍으로 커진다. 각 환경단체와 시민운동가들은 ‘수퍼스타’가 된 그녀와 손잡기 바쁘다. 그래도 태풍 속 툰베리는 한결 같고 우직하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만났을 때나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총장을 만났을 때나 그는 자신의 메시지에만 집중한다. 자신을 흉보는 많은 ‘악플’들을 흥미롭다는 듯 읽어나갈 때조차 별반 흔들림이 없다.

“그녀에겐 세상을 바라보는 특별한 관점이 있었다. 그녀는 일을 멋지게 꾸미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에는 언제나 관심이 없었다. 나는 영화를 본 사람들이 생각을 감추는 대신 표출하고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게 되길 바란다. 우리에겐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성장 여정을 그린 다큐 '그레타 툰베리'. [사진 영화사 진진]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성장 여정을 그린 다큐 '그레타 툰베리'. [사진 영화사 진진]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성장 여정을 그린 다큐 '그레타 툰베리'. [사진 영화사 진진]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성장 여정을 그린 다큐 '그레타 툰베리'. [사진 영화사 진진]

다큐의 하이라이트는 2019년 9월 유엔본부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초청받은 툰베리가 무동력 보트로 약 2주간 대서양을 횡단해 가는 여정. 거센 파도에다 좁고 불편한 선내 생활은 10대 소녀가 감당하기 벅찼을 테다. 툰베리는 눈물을 머금은 채 자신의 일기장 겸 녹음기에 힘겨움과 부담을 토로한다. 당시 세계적인 화제가 됐던 뉴스 이면에서 그가 어떤 내적 갈등에 시달렸는지 엿볼 수 있다. 이를 밀착 촬영한 그로스만 감독은 배급사 인터뷰에서 “몇주간 항해가 힘들 것이긴 해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이 이야기의 궁극적인 끝이 될 거라 생각해 항해에 동참했다”고 밝혔다.

영화는 탄소 감축을 위해 비행기 이용을 거부하고 새 옷을 거의 사지 않으며 육식 소비를 절제하는 툰베리를 ‘대안적 삶’으로 추켜세우진 않는다. 툰베리는 종종 격앙된 목소리로 ‘어른들’을 꾸짖지만 그가 현실적으로 요구하는 ‘우리의 행동’이 무엇인지도 모호하다. 무엇보다 다큐에선 무책임한 정치인들이 기후위기를 방관하는 것인 양 비쳐지지만, 현실에선 환경문제의 심각성 및 진실과 관련해 과학적인 찬반 토론이 치열한 상황이다.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아주 많은 대안이 필요하다. 그레타를 비롯한 아이들의 시위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그레타가 우리 어른들에게 문제를 인지하고 기후 위기를 진짜 위기로 보고 대응하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그녀는 미래의 환경을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로 삼고자 한다.”

영화엔 툰베리의 내밀한 생각이 종종 사색적인 내레이션으로 담긴다. 감독에 따르면 이는 자신이 툰베리와 몇 시간 인터뷰한 것을 재구성한 것이라고. “그레타는 여행의 순간들을 기억하기 위해 일기장에 있는 구절을 읽어 주기도 했다. 나는 이 인터뷰와 일기장을 독백처럼 편집해서 관객이 그녀의 생각으로 이끌어지도록 했다.”

이제 18세가 된 그레타 툰베리가 앞으로도 계속 ‘어른들’을 꾸짖으며 성장할 수 있을까. 다른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환경문제에 집착하는 그의 남다름이 계속 선명한 등대불로 남을까, 사람들을 홀리는 도깨비불에 그칠까. 분명한 것은 그의 단호함과 선명한 메시지가 또래 세대의 행동을 자극했고 국경을 넘어서 젊은 세대의 공통 관심사로 떠올랐단 점이다. 이번 다큐의 언론 시사 때도 국내 단체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들이 참석해 “그레타가 만든 변화는 청소년들을 움직이게 했다. 우리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며 공감을 표했다.

그로스만 감독은 앞서 일상에서 소비하는 에너지 문제를 제기한 단편영화 ‘더 토스터 챌린지’(2015)로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식빵 한쪽을 굽기 위해 세계적인 사이클 선수가 자전거 페달을 굴려 동력을 얻어내는 과정을 담았다. 그의 첫 장편다큐인 ‘그레타 툰베리’는 올 전주국제영화제와 서울환경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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