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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훈 칼럼

이준석, 도덕·담합·위선 정치를 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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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지난 일주일 뉴스피드를 도배하다시피 한 분석들을 모아보면 이렇다. ‘이준석 현상은 통쾌한 세대반란이다’ ‘이준석 현상은 파괴적 정치혁신이다’. 열광적 분석들이 쏟아지자 36세 젊은이의 도약에 대한 우려와 질투도 따라붙었다. 또한 시장 자유주의로의 퇴행일 뿐이라는 당파적 비판도 곁들여졌다. 젊은 야당 대표의 선출에 온 나라가 떠들썩한 것은 이준석 현상의 파장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리라.

기득권 담합정치에 대한 반란 #불공정 세습능력주의에 저항 #도덕과 명분의 정치 종언 #이준석 현상은 이제 시작일 뿐

50대 후반의 필자가 이준석 현상에 담긴 MZ세대의 꿈과 희망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다만 사회과학적 해석 몇 가지를 독자들과 나눌 뿐이다. ①이준석 현상은 정치귀족들이 겹겹이 쳐놓은 담합 체제를 뚫는 혁명적 반전이다. ②이준석 현상은 불공정한 국가 개입과 간섭을 질타하는 청년들의 반란이다. ③이준석 현상은 우리 정치의 DNA에 깊이 새겨진 도덕과 명분 정치의 종언이다.

첫째 이준석 대표는 프랑스의 젊은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강한 맛 버전이다. 2017년 40세의 마크롱은 앙 마르슈(En Marche)라는 미니정당을 창당하고 그 후보로서 대통령 자리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새로운 인물의 제도정치권 진입을 저지하는 카르텔 정치의 장벽은 프랑스보다 한국이 월등히 높고 험하다. 이준석 대표는 지난 주 당대표 선출을 위한 여론조사에서 2위 후보자를 두 배 이상 앞서고도 당원 투표에서 다소 뒤져 종합 집계로는 6%포인트 차로 승리하였다.(조직의 벽) 앙 마르슈와 같은 신생정당의 창당은 한국에서 더더욱 견고한 진입장벽과 마주친다. 우리 정당법은 정당설립 요건으로 최소 5개 이상의 시, 도당 조직과 각 시, 도당별 1천명 이상의 당원 확보를 규정하고 있다.(법의 벽)

결국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의 정당정치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집권당과 야당이 간판만 바꿔단 채 그들끼리의 카르텔을 유지하는 역사가 이어져왔다. 현 담합체제의 여당에는 민주화 운동가들이 기득권을 이어왔고 국민의힘은 사회 각계의 명망가들이 주를 이루는 명사정당으로 이어져왔다. 이준석 대표의 선출은 이러한 명망가들의 담합체제를 흔드는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후련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둘째, 적잖은 논란이 되고 있는 이준석 표 능력주의는 불공정한 국가의 개입과 이른바 586들의 가족 세습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청년들의 처절한 외침에 대한 메아리이다. 2019년에 펴낸 대담집 『공정한 경쟁』에서 이준석 대표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자유”이며 “공정은 그 위에서 하는 달리기 게임”이라고 표현했다.

당연히 그는 원칙 없이 정치적 선심 쓰듯 진행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소리 높여 반대해왔다. 수년간 고시원 골방에서 고생한 끝에 통과한 정규직 일자리를 그렇게 내주면, 그동안의 노력으로 통과한 사람은 뭐가 되느냐는 청년들의 절규에 대한 화답인 셈이다.

하지만 시장의 효율과 자유경쟁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이준석 대표와 청년 지지층의 공명을 자유주의 연합의 탄생으로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대학생 작가 임명묵은 이렇게 청년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임명묵, 『K-를 생각한다: 90년대생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공정에 대한 90년대 생들의 외침은 그들이 처한 심리적 압박과 가치의 퇴조라는 배경 하에서 형성된 정서적 기초가 특정이슈와 맞물려 터져 나오는 현상에 가깝다.” 시험과 그에 기반한 능력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그들이 느끼는 불안 속에서 유일하게 예측가능성을 제공해주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처연한 현실을 앞에 두고 이준석 현상을 그저 삭막한 시장주의로의 퇴행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기성세대들의 말의 사치가 아닐까.

셋째, 이준석 대표의 말과 행동은 그동안 한국정치를 지배해온 도덕의 정치, 명분의 정치가 끝났음을 알리고 있다. 일본학자 오구라 기조의 예리한 지적대로, 한국의 정치경쟁은 도덕과 명분을 차지하는 싸움이었다. 여당은 민주화라는 대의명분에 이어 인권, 환경 등으로 도덕 규범을 넓히며 세력을 확장해왔다. 야당은 산업화와 선진화라는  발전주의 규범을 권력경쟁의 축으로 삼아왔다. 이에 따라 한편에서는 민주화의 이념과 역사가 성역화 되고, 다른 편에서는 박정희 모델이 신화화되어왔다.

이에 대해 이준석 대표는 더 이상 명분과 도덕에 기대지 말라고 외친다. 그는 싱가포르의 사례를 빗대어, “도덕주의 국가운영과 리더들의 도덕적 강박”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비판한다. 이제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실력을 갖춘 리더이며, 도덕과 명분의 탈을 쓴 정치는 퇴장하라는 그의 주장에 청년들은 박수를 치는 중이다.

결국 이준석 현상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어느덧 뻣뻣해지고 무감각해진 채 심통만 늘어난 제도권 정치에 대한 반란이다. 반란의 에너지는 사실 오랫동안 생활세계의 바닥에서 축적되어 왔다. 다만 이제야 논리와 순발력, 판단력, 마키아벨리적 냉정함을 두루 갖춘 젊은 리더를 통해서 폭발하고 있을 뿐이다. 이 폭발에는 여야가 따로 없을 것이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