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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직격인터뷰

"MZ세대와 여의도 정치 사이 이준석이란 포털이 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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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이준석 체제를 보는 30대의 시선

16일 중앙일보에서 30대 학자·정치인들이 '이준석 현상'에 대해 토론했다. 왼쪽부터 천하람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김수정 국민대 사회학과 강사, 길정아 고려대 정부학연구소연구교수. 김상선 기자

16일 중앙일보에서 30대 학자·정치인들이 '이준석 현상'에 대해 토론했다. 왼쪽부터 천하람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김수정 국민대 사회학과 강사, 길정아 고려대 정부학연구소연구교수. 김상선 기자

주로 ‘88만원 세대’이자 ‘N포 세대’로 불렸다. “지금의 90년대생들은 자신들을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여기지 않고 특정 이상을 실현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단지 그들은 현시대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할 뿐이다”(『90년대생이 온다』)와도 과히 다르지 않은 진단이다.

거대담론 없는 실용주의가 가치 #'20대 보수화' 보다 “여당 반대다” #능력주의 비판엔 “승복 기준 필요” #개별 이슈에 반응하는 정치할 듯

지금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0년대 출생)라고 한다. 4·7 재·보선에서 압도적으로 야권 성향으로 돌아서면서 정치판에 굉음을 낸 데 이어 이번엔 36세의 제1야당 당수 이준석 체제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다. 먼 미래의 일로 여겨졌던 게 당장의 일이 됐다. 다수의 정치평론가들은 “586세대를 MZ세대가 밀어낼 것”이란 전망까지 한다. 상전벽해다.

그렇다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동년배들은 어떻게 볼까. 16일 중앙일보에서 길정아 고려대 정부학연구소 연구교수와 김수정 국민대 사회학 강사, 천하람 변호사(국민의힘 순천-광양-구례-곡성갑 당협위원장)를 만났다. 모두 이 대표 또래다. 이들은 세대교체로 보긴 어렵다고 했다. 이 대표 체제의 출범을 “실낱같은 희망”(김 강사)이란 표현을 쓰기도 했다.

30대 당 대표가 나왔다.
천하람=“내부에서 보기에 이번 돌풍의 1등 공신은 총선 완패다. 거듭된 4연패(2016년 총선-2017년 대선-2018년 지방선거-2020년 총선)로 당내 공간이 열렸다. 조국 사태 같은 것들을 겪으면서 당심과 민심의 괴리가 위험하다는 걸 우리 당원들도 느낀 것 같다. 이준석으로 가면 이길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김수정=“오랫동안 지금 586이란 분들이 청년세대를 정치 부분에 있어서 대상화해 왔다. 동료나 주체로 보기보단 포섭·회유하거나 뽑아 쓰고 가치가 없어지면 버렸다. 이준석은 거기서 근 10년을 버텨낸 생존자라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에겐 '우리 정치'가 아니라 '그들의 정치'였다. 이 대표가 갑자기 당 대표가 되면서 시선이 가게는 했다. 하지만 세대론적 관점에서 의미를 부여할까 말까 경계에 있는 느낌이다. 이 대표가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느냐, 이후 MZ세대가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 의미를 가질지, ‘삼일천하’로 끝날지 판단할 문제다.”
길정아=“이 대표가 그간 공정성이나 공존 혁신 이런 부분들을 굉장히 많이 얘기했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이런 비전에 대한 니즈가 있었다. 앞으로 그가 제시하는 정책적 비전에 따라 정말 MZ세대의 대표 주자 혹은 그들의 니즈를 반영한 인물로 탄생할 것인지, 아니면 보수의 아이덴티티가 더 강조된 정치인이 될지 저 역시 판단을 유보한다.”
천하람=“세대교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준석 혼자다. 그러나 생각의 교체라고는 본다. 우리 당은 1970년대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굉장히 많았는데, 이준석이란 사람이 일단 2021년 지금으로 당을 끌어올리고 있기는 한 거다. 사실 여의도 정치와 MZ세대 사이엔 솔직히 넘지 못할 4차원의 벽이 있었다. 제가 정치한다고 했을 때 친구들이 ‘시궁창에 왜 가냐’고 만류했다. 이준석이란 사람이 그사이에 엄청나게 큰 포털을 하나 연 거다. 순간 이동할 수 있는.” 
불과 얼마 전까지 20·30세대가 정치적으로 무기력하다고 봤었다.
천=”정치적 에너지는 지금도 많다고 생각한다. 아이스하키 단일팀처럼 자기들이 관심 있는 이슈들엔 관심을 보인다. 기성세대의 눈으로 보면 20·30세대가 약간 쩨쩨해 보일 텐데 그건 먹고살기가 팍팍해서다. ‘내가 나중에 어차피 잘 될 거다’란 기대가 없어지니까 손톱만큼이라도 불공정하게 손해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엄청나게 파르르 나온다. 대의를 위해서 공정한 프로세스가 희생되는 것을 못 참는 시대가 됐고, 그 부분을 건드리는 순간 정치적 에너지가 폭발할 수 있다. 그걸 이준석이 포착했다고 본다.” 
지금 20대가 보수화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데 대해선.  
길=“이들이 보수화되었다기보다는 반여(反與)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했을 때도 20·30세대가 적극적인 정치적 행위자로 행동했었다. 이것을 진보화라고 보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저는 선거를 통해 정권을 위임받은 정부가 이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불만족을 가진 것이고, 전통적인 의미의 진보·보수와 착근되지 않는 20·30세대가 현 정권에서 보인 불만족이 겉으로 보수화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김=“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이 세대가 공통적으로 가진 그 속성은 미(me) 제너레이션, 나 중심적인 거다. 사실 자칭 진보라는 친구들도 자기 삶과 직결된 문제를 따라서 진보가 됐다가 보수가 됐다가 하는 거다. 예전과 같은 진보·보수 개념이 없다.”
천=“우선 반 기득권이라고 본다. 20대가 보기에는 민주당이 엄청난 기득권이다. 그런데 조금 더 깊게 들어가면 보수화되기 좋은 환경이 됐다곤 생각한다. 지금의 20대는 공동체보단 ‘나는 내 알아서 할 테니까 공정한 경쟁의 툴(tool)만 줘. 방해만 하지마’란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런 토양이라면 보수에 정서적으로 동조하기 훨씬 좋아져 있는 상황이다.” 
 11일 서울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새로 선출된 이준석 대표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 오종택 기자

11일 서울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새로 선출된 이준석 대표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 오종택 기자

20·30세대가 지향하는 지배적 가치는 공정인가.
김=“세대 문제뿐만 아니라 이제 계층 문제랑 연결이 되어서다. 지금 MZ세대라 하나로 묶어서 많이 보지만 그 내부가 우리 사회처럼 양극화되는 부분이 많다. 요즘 은행에 가면 손주들을 위한 적금을 들라는 상품이 많더라. 사실상 출발선이 같게 되기 어려운 상황이 돼버린 거다. 반작용으로, 최소한 보이는 부분이라도 공정해야 하는 거다.”
천=“지금 20대가 특히 원하는 건 성공에 대한 예측 가능성, ‘내가 이 정도 인풋을 넣어서 노력하면 이 정도 아웃풋이 나오겠지’라는 예측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니 정량화된 시험 이런 것이 오히려 공정하다고 느낀다. ‘배경을 싹 다 빼고 그냥 시험지로 나를 차라리 평가해줘라’고 한다. 배경에 너무 격차가 커졌다. 20대에겐 이게 현실적인 요구다.”   
기성세대에선 이를 잘못된 능력주의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우리는 그리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출발선이 같다면 ‘내가 쟤보다 점수가 낮아도 인정한다’고 한다. 86세대의 대학생들과 지금의 대학생은 다르다. 그때는 엘리트였지만 지금은 노동자다. 다 알바를 한다. 시작을 제대로 못 하면 영원히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질 수 없다고 느낀다. 사회가 주사위를 여러 번 던질 기회를 줘야 하는데 딱 한 번 준다. 그러니 던질 때 신중해지고 공정에 대해 얘기를 하게 된다.”
천=“지금의 20대, 30대도 완벽한 잣대가 아니란 걸 알지만 최소한 같은 문제를 풀고 승자와 패자가 나뉘니까 최소한 승복 가능한 기준은 아니냐는 것이다.” 
페미니즘도 논란이다. 이 대표가 안티 페미니즘적인 게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김=“이 대표가 당 대표가 됐고, 인구의 절반의 여성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입장을 고수할 수 있을까. 조금 더 포용적인 입장으로 갈 거라고 예상한다. 안티 페미니스트란 느낌은 없고 전략가로서 했다는 느낌이다. 젠더 감수성은 여학생도 남학생도 점점 비슷한 비중으로 가진 것 같다. 일반적으로 입 밖으로 잘 꺼내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에) 보이는 건 강한 것들만 보일 수밖에 없다.”  
천=“오프라인에선 다들 멀쩡해 보이고 싶어한다. 남자들끼리 모여서 얘기할 때 굉장히 많이 한다. ‘왜 남자라는 이유로 거절 못 하고 회식에 부장님 따라다녀야 되느냐’ ‘물통은 왜 우리가 들어야 하나’ 등등. 남성과 여성 모두 자기의 삶이 팍팍한 것을 (상대방을) 가상의 적으로 만들어서 푼다. 사실 진정한 적은 쓸데없는 회식을 하는 부장님인데(웃음). 그렇다고 해서 남성들이 겪는 역차별의 경험이 실체가 아예 없는 것인가. 한 조각조각 떼서 보면 역차별적인 요소가 있다. 특히 10대들에겐 ‘애를 낳은 이후엔 남자들이 훨씬 더 살기 좋으니 네가 이 정도는 참아’라고 해도 안 먹힌다.” 
기성세대와 완전히 다른 MZ세대의 경험이 새로운 비전과 어젠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스스로 정치세력화 가능성에 대해선 어찌 보나.
천=“20대가 할 거라고 본다. 20대는 윗사람이 시켜도 ‘뭐라는 거야’라고 하는 세대다. 태어났을 때 선진국인 최초인 세대다. 또 디지털 네이티브다. ‘내가 속하는 집단은 내가 결정한다’는 게 가능한 세대다. 정치에서도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대변하겠다는 사람들이 쭉 나올 거다. 예를 들어 ‘나는 왼손잡이를 대변하겠다. 왼손잡이용 골프채는 왜 더 비싸냐’처럼 개별화된 이슈들을 다루는 MZ세대의 정치인들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길=“사실상 세대라는 이슈가 정치에서 화두가 되기 시작했던 시기가 2000년대 초반이었다. 당시 386을 묶어내는 코어는 민주화 등 거대담론 상에서의 코호트(동일집단)적 경험이다. MZ세대는 거대담론 상에서의 핵심 가치는 산발적인, 그러니까 ‘없음’, 무엇의 부재로 인해 오히려 하나로 묶일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실용주의적 부분이다. 새로운 형태의 코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매우 많은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집단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