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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NFT, 돈 되는 아우라 제조기인가 게임 체인저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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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미술계 ‘대체불가 토큰’ 광풍

미술가 코디 최가 향후 NFT화할 데이터 페인팅 연작 중 ‘스톨런 데이터 애니멀 토템, 유인원 #00’(1999). [사진 PKM 갤러리]

미술가 코디 최가 향후 NFT화할 데이터 페인팅 연작 중 ‘스톨런 데이터 애니멀 토템, 유인원 #00’(1999). [사진 PKM 갤러리]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구세주)’는 1958년에 불과 45파운드(지금 우리 돈으로 약 170만원)에 팔렸다가 2017년에 약 5천억원에 팔렸다. 같은 그림 가격이 어떻게 이렇게 바뀔 수 있었을까? 원래 레오나르도 짝퉁으로 알려졌다가 (여전히 의심하는 학자도 적지 않으나) 진품이라는 견해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즉 관람객이 그림을 보며 느끼는 아우라(aura)의 크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우라 없는 복제가능 디지털아트 #NFT화로 원본성·유일성 부여받아 #실물 작품 NFT화에는 찬반 엇갈려 #미술 기존 위계 흔드는 역할할 수도

아우라는 무엇인가? 본래는 사람이나 물건이 뿜어내는 영적인 기운을 뜻하는 종교적 개념이었다. 매체 철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발터 벤야민(1892~1940)이 예술 이론에 적용하면서, 예술작품에 있는 그것을 우러러보게 하는 분위기나 속성을 가리키게 되었다. 벤야민에 따르면 아우라는 원본성·유일성·일회성에 근거한다. 여기서 일회성은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한 시점에 한 공간에서만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사진과 영화처럼 원본이 따로 없고 똑같이 무한 복제되어 동시에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아우라가 없다고 벤야민은 말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아우라가 없다는 게 작품성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에 아우라가 몰락한다고 했지만, 그것을 개탄하지 않았다. 오히려 권위를 벗은 예술에 사람들이 민주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면을 긍정적으로 여겼다.

아우라의 몰락은 향유자보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예술 생산자들에게 문제가 되었다. 원본성·유일성·일회성에 기반한 아우라가 시장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니, 사진과 영상 작가는 시장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작가들은 작품을 소수의 고화질 에디션으로 제작하고 무단복제를 최대한 막는 방식으로 버텨왔다. 그나마 사진과 영상작품은 20세기 중후반부터 미술관에 본격적으로 수용되어 유명한 작가들은 회화와 조각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팔기도 한다. 하지만 20세기 말 컴퓨터에서 탄생한 디지털 아트는 공공 미술관에서도 시장에서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독립된 작품보다 주로 게임·애니메이션·영화 등 엔터테인먼트산업의 요소로 기능해왔다.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매일: 첫 5000일’ 중 한 그림. [사진 크리스티 홈페이지 캡처]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매일: 첫 5000일’ 중 한 그림. [사진 크리스티 홈페이지 캡처]

그런 디지털 아트가 NFT(Non-Fungible Tokens·대체불가 토큰)화를 통해 원본성과 유일성을 얻게 된 것이다. 캐슬린 김 미국 변호사에 따르면 “NFT화 한다는 것은 블록체인이라는 디지털 장부에 기록하는 것, 즉 디지털 서명 또는 디지털 증명서라고 할 수 있다. 비물질인 디지털 파일에 고윳값을 지정해 기록, 저장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영상·이미지 등 저작물 그 자체가 아니라 작품명, 작가명, 계약조건, 작품이 저장된 곳의 링크 등 저작물의 메타데이터가 기록되는 것이다.” 똑같은 디지털 그림 사본이 수없이 많아도 NFT화된 이것만이 유일한 원본 진품임을 인정받아 아우라를 얻게 된다.

아우라의 생성은 시장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올해 3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Beeple)이 매일 하나씩 그린 디지털 그림 5000점을 모은 ‘매일: 첫 5000일’이 당시 약 780억원에 해당하는 4만2329이더(ether·암호화폐 이더리움 단위)에 팔려 파란을 일으켰다. 사실 미술계 종사자나 미술 애호가들은 대부분 비플의 그림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한다. 딱 게임 이미지나 SF 웹소설 일러스트레이션 같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산 사람이 NFT 전문 펀드의 CEO로 밝혀지면서 NFT를 띄워서 투기적 이익을 얻기 위해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는 비판도 크게 일었다. 비플의 성공 이후 국내에서도 미술작품의 NFT화와 판매가 우후죽순 나타나면서 투기 거품 우려는 더 커졌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지금 NFT 아트 시장에 분명 거품이 있지만 이미 2014년에 탄생한 NFT 아트가 이제야 본격적으로 활용되는 것은 비플의 경매 덕분”이라며 너무 편견을 갖지 말 것을 주문했다. 디지털아트를 선구적으로 전시·연구해온 아트센터 나비의 노소영 관장도 “시장이 형성되지 않으면 디지털아트의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무한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구입해 소유하기가 꺼려지던 디지털아트가 NFT로 인해 드디어 시장을 형성하게 되었다. 거품이 많지만 과도기적 현상으로 본다”고 말했다.

과거에 나온 선구적인 디지털아트가 시장에서 새롭게 빛을 볼 수 있는 순기능도 있다. 코디 최 작가가 무려 20여 년 전에 제작해 두었다가 지난달 아트바젤 홍콩 기간에 NFT 장터 오픈씨(Opensea)에 올린 ‘데이터 페인팅’ 연작(1999)이 그 예다. 그는 97년에 유치원 아이들이 쓰는 컴퓨터 드로잉 프로그램에서 일종의 해킹으로 동식물 이미지(사진 이미지가 아닌 원시적 픽셀 이미지)를 추출한 다음, 손톱만큼 작은 그 이미지들의 사이즈를 전문 연구소에 의뢰해 1년 걸려 증폭시켰다. 그렇게 만들어진 수백여 개의 기본 데이터 중 몇 개를 골라 컴퓨터 언어 수식을 통해 겹치고 긁어내는 것을 1000번 가까이 반복해서 일련의 구상과 추상 그림을 만들었다.

최 작가는 “디지털 시대에 회화의 미래를 생각하던 중, 들뢰즈의 리좀 이론에서 영감을 받아 데이터들이 서로 연결되고 충돌하며 위계 없이 증식해 나가도록 했다.”며 “2000년대 초에는 이 연작을 캔버스에 프린트해서 전시할 수밖에 없었는데, 모두들 제발 여기에 붓질이라도 하나 더 하라고 하더라.”고 웃었다. 그는 이 시리즈 중 최초 작품을 지난달 아트바젤 홍콩 기간에 NFT 플랫폼 오픈씨에 7만 이더, 당시 시세로 2000억원에 판매하겠다고 올려 화제가 됐다. (아직 팔리지 않았다.) “비플의 작품과 비교할 때, 연대와 개념과 미술사적 의미 등을 따져 그 정도는 받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정했다. 어차피 암호화폐 가치는 계속 변동하고 그것이 기존 화폐로 고액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태생적 디지털 아트가 아닌, 기존의 아날로그 실물 작품을 디지털 파일로 만들어 NFT화해서 파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아날로그 작품의 디지털 파일은 아날로그 원본의 아우라가 제거된 것인데, 그것을 NFT화해서 다시 원본성과 유일성의 아우라를 부여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을까? 게다가 이것이 아날로그 원작보다 훨씬 비싸게 팔리는 경우는, NFT화에 그다지 큰 수고와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기이하게 느껴진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디지털 파일을 NFT로 만드는 것을 민팅(minting)이라고 하는데 NFT 플랫폼에 디지털 파일을 업로드하고 작품명, 작품 설명, 에디션 수 등을 입력한 후 gas fee라 불리는 수수료를 암호화폐로 지불하면 끝난다.” 그 수수료도 시간대에 따라 다르지만 몇십 달러인 경우가 많다.

최 작가는 아날로그 작품의 NFT화 자체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다. “이건 진보에 역행하는 것이다. 태생적 디지털과 디지털화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트센터 나비의 노 관장의 예견처럼 메타버스가 발달할수록 그 안에 세워진 미술관에 작품을 진열하고 또 그 안에서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기존의 아날로그 작품을 디지털 파일로 만들어 NFT화하는 경우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NFT는 순수미술에 비해 대접받지 못한 엔터테인먼트 산업 관련 디지털아트의 작품의 위상을 바꿔 놓을까? 비플의 경우도 그렇고, 최근에 크리스티에서 열린 NFT 경매에서 흥미롭게도 백남준과 제니 홀저 같은 거장들의 작품보다 생소한 이름의 디지털 아티스트와 NFT 아티스트의 작품이 더 비싼 값에 팔렸다. 이것은 해프닝일까, 미술판의 거대한 지각변동의 조짐일까?

결국 NFT 아트는 우리 사회와 문명의 큰 틀의 변화에서 보아야 한다. 매체철학자 심혜련에 따르면, 벤야민은 예술을 사회적 산물로 간주하며, 매체와 기술의 변화가 예술 그 자체와 그 수용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연구했다. NFT를 제대로 알기 위해 그런 통찰력이 필요하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