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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친문 강경파의 좌표 찍기, 민주주의 부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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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트위터. 인터넷 캡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트위터. 인터넷 캡처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비판했던 광주 지역 카페 사장이 친문 강성 지지자들로부터 ‘전화 테러’를 당했다. 지난 12일 광주에서 열린 만민토론회에서 실명으로 정부 정책을 비판한 배훈천씨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여권 강성 지지층의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배씨는 토론회에서 “주 52시간제 강행으로 가게 수입이 줄고 시장의 활력이 사라졌다”며 현장에서 느낀 심정을 전했다. 그러자 지난 15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배씨가 보수 야당과 밀접한 조직에서 활동하는 정치적 인물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배씨가 비판한 내용에 대해선 언급도 하지 않은 채 배씨의 정치 성향을 의심하며 문제 삼고 나선 거다. 사달은 직후 벌어졌다. 라디오 방송 내용을 소개한 기사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뒤부터 배씨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됐다. 배씨의 카페로 “당신 일베냐” “국짐(국민의힘을 국민의짐으로 낮춰 부르는 말) 당원이지?” “가게 못할 줄 알라” 등 욕설을 퍼붓고 위협하는 전화가 쉴 새 없이 걸려왔다. 배씨는 16일 페북에 “조국씨, 광주 카페 사장의 정체를 태극기 부대, 일베라고 암시하는 당신의 트윗 때문에 가게 전화를 자동응답으로 바꿔야 했다”고 썼다.

광주 자영업자 전화테러, 송영길에겐 “탈당” #구시대 ‘각목 정치 테러’의 디지털 버전

배씨에 대한 이런 공격은 자유민주주의에서 가장 기본적 원칙인 언론의 자유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심각한 범죄행위다. 이런 행동이 자칭 민주화 세력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 놀랍다. 더욱 경악스러운 건 대한민국의 ‘정의’를 책임졌던 전 법무부 장관이 ‘지령’을 내리듯 트윗을 하자 강성 친문 지지자들이 폭력조직의 행동대원처럼 일제히 무차별 공격에 나섰다는 점이다. 조 전 장관은 “세뇌된 단원에게 지령을 내리는 장막 뒤의 어두운 테러리스트 두목과 뭐가 다른가”(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친문 강경파들이 자신들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디지털 테러를 가한 건 부지기수다. 16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민심과 동떨어진 ‘특정 세력’과 거리두기를 주장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에 대해 친문 커뮤니티엔 “반문질 그만하라” “탈당하라”는 글이 여럿 올라왔다. 4·7 재·보선 패배 이후 ‘반성문’을 쓴 민주당 초선 의원 5인은 성명서 발표 후 수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고 ‘항복 선언’을 해야 했다.

과거 우리 정치사엔 ‘정치깡패’가 존재했다. 권력자를 비판하거나 정치적으로 자신과 반대 입장을 가진 이들에게 대낮에 몰려가 각목을 휘두르는 폭력을 서슴지 않았다.

정권에 비판적인 이들을 향한 좌표 찍기와 이어지는 무차별 공격은 ‘디지털 각목’과 다름없다. 주요 친문 인사들이 이들에게 어떤 경고도 하지 않고 이 상황을 지켜보기만 한다면 그들은 민주주의의 부정을 지켜보는 방조범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