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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1000원 원가에 세금 1029원'종가세 넘으니 코로나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67) 

대한민국 수제맥주 20년사⑥ 맥주업계의 염원, 종량세

전체 주종에 대한 주세 개편은 무산되고 맥주와 탁주에 대해서만 종량세를 적용하는 내용으로 주세법 개정안이 확정되면서 2020년 1월 종량세 시대가 열렸다. [사진 pxhere]

전체 주종에 대한 주세 개편은 무산되고 맥주와 탁주에 대해서만 종량세를 적용하는 내용으로 주세법 개정안이 확정되면서 2020년 1월 종량세 시대가 열렸다. [사진 pxhere]

2010년대 들어 생산과 유통에 걸쳐 꾸준히 규제 완화가 진행됐지만 수제맥주 시장의 성장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되지 못했다. 수제맥주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투자 의욕을 꺾는 ‘종가세’라는 바위가 업계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수제맥주의 미래를 논하기 어려웠다.

1968년 주세법 개정 이후 맥주에 대한 세금은 원가를 기준으로 부과하는 종가세 체제를 유지해왔다. 맥주의 경우 원가의 72%인 주세, 주세의 30%에 해당하는 교육세, 그리고 주세와 교육세에 대해 10%의 부가세를 납부해야 했다. 원가가 1000원이라면 1029.6원의 세금이 붙는 것이다. 종가세 체제는 수제맥주뿐 아니라 맥주업계 전반에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물론 그중 가장 불리한 입장에 서 있던 것은 수제맥주 업계였다. 수제맥주는 제품 특성상 고품질의 재료가 필요하고,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으로 인해 대기업처럼 규모의 경제를 확보할 수가 없다. 대기업에 비해 제품 원가가 비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체제에서는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도 불가능했다. 원가 상승이 엄청난 세금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원재료, 시설, 연구개발, 인력 등에 대한 투자를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종가세 체제에서 맥주에 부과되는 세금. [자료 한국수제맥주협회]

종가세 체제에서 맥주에 부과되는 세금. [자료 한국수제맥주협회]

이와 함께 맥주 대기업은 종가세 체제로 인해 수입 맥주에 역차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내에서 제조한 맥주의 경우 제조원가, 판매관리비, 이윤 등을 더한 맥주 가격을 기준으로 주세가 붙지만 수입 맥주는 공장 출고가와 운임 비용만 포함한 수입신고가에 대해 주세를 매겨 국내 이윤·판매관리비 등은 과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당시 편의점이나 마트의 ‘4캔 1만원’ 마케팅은 수입 맥주의 전유물이었다.

이처럼 맥주업계에서는 각기 다른 이유로 종가세의 반대편에 있는 세금 부과 체제인 종량세로의 전환을 주장했다. 종량세는 가격과 관계없이 생산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맥주 대기업과 수제맥주 업계가 한목소리로 규제 변화를 요구하는 흔치 않은 경우로 그야말로 업계의 숙원이라고 할 만했다. 수제맥주 주세경감, 유통 규제 해소 등을 이끌어 ‘맥주 대통령’이라고 불리던 홍종학 전 국회의원이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고 한국수제맥주협회도 정부 설득에 나섰다. 저가 수입 맥주가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어 정부가 눈을 감고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수입 맥주의 국내 맥주시장 점유율은 매년 눈에 띄게 커져 2013년에서 2017년까지 5년 동안 3배 이상 증가했을 정도였다.

종량세 개정이 당위성을 얻고 있었지만 개편 과정은 수월치 않았다. 맥주업계 사람들은 2~3년 동안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을 느껴야 했다. 2017년 6월 국가 조세정책 수립 지원 역할을 하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주세 과세체계 개편 관련 공청회를 주최하면서 종량세 개편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종량세 개편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오면서 수제맥주 업계는 한껏 들떴다. 맥주잡지 비어포스트는 주세법 워크숍을 개최해 업계의 의견을 모았고, 한국수제맥주협회에서는 종량세 추진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활동도 이어졌다.

논의가 무르익으면서 종량세 개편이 2018년 7월 발표된 ‘2019년 세법개정안’에 포함되는 것이 기정사실화하는 듯했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주세법이 개정되면 4캔 1만원 프로모션이 사라진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기획재정부의 발목을 잡았다. 이 여론은 사실과 동떨어진 것이었다. 분석 결과 대부분의 수입 맥주도 종량세 개정으로 세금이 내려갈 수 있고 일부 인상 요인이 있는 맥주도 소폭에 그쳐 소비자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나타났다.

말표 흑맥주를 내놓은 스퀴즈 브루어리의 춘천 브루펍. [사진 황지혜]

말표 흑맥주를 내놓은 스퀴즈 브루어리의 춘천 브루펍. [사진 황지혜]

2018년 말 홍남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주세 개편에 대한 의지를 내보이면서 다시 희망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2019년 5월 초로 예정됐던 기재부의 주세법 개정안 발표가 또다시 미뤄지면서 업계의 속은 타들어 갔다. 맥주와 탁주 업계에서는 종량세 개편에 찬성하지만, 세금 인상 우려가 나온 소주·약주·과실주 업계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결국 전체 주종에 대한 주세 개편은 무산되고 맥주와 탁주에 대해서만 종량세를 적용하는 내용으로 주세법 개정안이 확정됐다. 그리고 마침내 2020년 1월 종량세 시대가 열렸다.

종량세 체제의 도입으로 맥주업계는 최대 30%의 세금 감소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수입 맥주 일색이었던 ‘4캔 1만원’ 행사에 국산 수제맥주와 대기업 맥주도 합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편의점 수제맥주 시대는 업계에 또 다른 큰 고민을 안겼다. 코로나19로 인해 외식이 크게 줄면서 집에서 새로운 맥주를 한두 캔 마시는 문화가 확산됐다. 접근성이 우수한 편의점이 수제맥주 유통의 거점으로 떠올랐고 편의점에서 유통되는 수제맥주는 큰 폭의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문제는 편의점을 통해 맥주를 유통할 수 있는 양조장이 많아야 6~7개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생산물량, 재정상황 등의 이유로 편의점 유통을 하기 어려운 나머지 150여개의 소규모 맥주 양조장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매출 감소는 물론이고 폐업까지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올 들어 허용된 맥주 위탁생산(OEM)은 업계의 양극화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 객원에디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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