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긴축 시계’가 빨라졌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 인상 시점을 기존보다 1년 앞당겼다. 자산매입 축소(테이퍼링) 논의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Fed가 시장 예상보다 강한 매파(통화 긴축 선호)적 색채를 드러내면서 시장은 당황한 기색이다.
15~16일(현지시간) 진행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달라진' Fed의 면모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기존의 정책에 손을 댄 건 없었다. Fed는 일단 현재의 제로금리(0.0~0.25%) 수준을 유지하고, 매달 1200억 달러 규모의 자산매입(국채 800억 달러·주택저당증권 400억 달러)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매의 발톱 드러낸 Fed "2023년 금리 인상"
하지만 분위기가 바뀐 건 확실했다. 이를 드러내는 것이 FOMC 위원들의 금리전망이 담긴 ‘점도표’다. 2023년까지 두 차례의 금리 인상 예상 전망이 나왔다. 전체 위원 18명 중 13명이 2023년 금리 인상을 전망했다. 이 중 11명은 2023년에 두 차례 금리 인상을 예상했다. 2022년 금리 인상을 예상한 위원도 7명이나 됐다.
지난 3월 회의와 비교하면 큰 변화다. 당시엔 2023년 이후 금리 인상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3개월 만에 기준금리 인상 시점이 1년 앞당겨진 것이다.
테이퍼링 논의가 테이블 위에 올라왔음도 시사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FOMC 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테이퍼링 문제를 논의할지에 대한 논의(talking about talking about)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테이퍼링과 관련한 구체적인 발표 및 도입 시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파월 의장은 “더 많은 데이터(경제지표)를 봐야 시점에 관해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테이퍼링 관련 결정을) 발표하기 전에 사전에 알리겠다”고 말했다.
Fed의 움직임은 시장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다. 테이퍼링 관련 언급 정도만 예상했는데 금리 인상 시점까지 앞당겼기 때문이다. 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Fed의 반응이 매파적으로 변했다”고 평가했다.
물가와 고용 상황 변화에 긴축 손든 Fed
Fed의 입장 선회는 빠르게 회복하는 미국 경제 상황에 따른 것이다. Fed는 여전히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지표상 수치는 시장의 우려를 키울 수준이다.
지난 5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5.0%(전년동기대비)로 2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생산자물가지수(PPI)도 1년 전보다 5.6% 오르는 등 물가 급등세가 심상치 않다.
Fed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 듯 물가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올해 개인소비지출(PCE) 인플레이션 상승률 예상치는 3.4%, 에너지ㆍ농산물 등 변동성 큰 항목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도 3.0%로 봤다. 도이체 방크는 “Fed가 매파적으로 변한 건 인플레이션 때문”이라며 “파월 의장은 인플레 위험이 있음을 인정했다”고 평가했다.
Fed가 매의 발톱을 드러낼 수 있었던 데는 기본적으로 미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 Fed는 이날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올해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7.0%로 예상했다. 고용 시장 전망도 나아진 모습이다. 파월은 “노동자에 대한 수요와 일자리 창출을 볼 때 나는 우리가 매우 강한 노동시장으로 가는 길게 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고용회복에 방점을 찍으며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해왔던 Fed가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생긴 셈이다. 뉴욕타임스(NYT)도 “파월 의장이 몇 달 전보다 더 (경제 상황에 대한) 낙관적인 톤을 들려줬다”며 “주거비용 상승이 지속적인 가격압력 요인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해 긴축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씨티은행 "올해 말 월 150억달러 테이퍼링"
Fed는 언제쯤 긴축을 시작할까. 시장의 예상은 올해 하반기다. 테이퍼링으로 일단 기초 작업을 다진 뒤 금리 인상 등으로 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케시 존스 찰스 슈왑 채권 부문장은 “2023년에 금리 인상을 하려면 테이퍼링 빨리해야 한다”며 “Fed의 자산매입 규모가 적정 수준으로 줄어들기 위해서는 10개월~1년 걸린다. 결국 올해 후반기부터 테이퍼링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씨티은행은 “Fed가 9월에 테이퍼링을 발표하고 12월부터 매월 150억달러씩 매입 규모를 축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CNBC 방송은 ”지난 3월 조기 금리 인상 신호를 보내지 않았던 Fed가 이날 2023년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며 “Fed의 예상치 못한 행보에 투자자들이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날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0.77%), 나스닥(-0.24%), S&P 500(-0.54%) 지수는 모두 하락했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도 장중 1.594%까지 오르며 지난 4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편 한국은행과 Fed는 600억 달러 한도의 한국과 미국 간 통화스와프 계약을 9월 30일에서 12월 31일로 3개월 연장하는 데 합의했다. 연장된 한·미 간 통화스와프 규모(한도)는 600억 달러이고, 다른 조건도 같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