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노트북을 열며

‘최중혁 기자’를 위한 변명

중앙일보

입력 2021.06.16 00:29

업데이트 2021.06.16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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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임장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지난 9일 끝난 JTBC 드라마 ‘로스쿨’ 16부작을 정주행했다. 외계어로 점철된 한국 형사법을 토대로 인간도 볼만한 스토리를 짜낸 최초의 법정 드라마라는 점에 점수를 줬다. 숱한 장면 중 잔상이 긴 건, 이야기의 가는 줄기였던 피의사실공표죄(형법 126조) 공방과 최중혁 기자(김중기 분)의 표정이다.

최 기자는 특종을 위해선 ‘악마’와도 손잡는 단독병자다. 검사가 흘린 미확인 혐의를 받아 써 한 장난감 회사 사장이 목숨을 끊었고 사장의 아들은 로스쿨생이 돼 그 검사와 형법 126조의 위헌 여부까지 다툰다. 작품은 공인의 피의사실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와 피의사실 공표로 개인이 입는 회복 불능의 피해 중 ‘뭣이 무겁냐’고 묻는다.

최 기자에 투영한 제작진의 시선은 ‘검찰기자단 해체’를 바라는 문파들의 그것과 닮았다. 검사에 매달려 얻은 ‘단독’이 주는 카타르시스로 낙 삼는 단세포다. 기억 속에서 최 기자 맞은 편엔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마이크 레젠데스(마크 러팔로 분)가 떠올랐다. 그는 보스턴 글로브 스포트라이트 팀의 팩트 파인더다. 이 팀은 수사기관·법원이 은폐한 가톨릭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을 파헤쳐 퓰리처상을 탔다.

법조·탐사·정치 영역을 맴돈 내게 “누구랑 비슷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최중혁이다. 누구나 레젠데스를 꿈꾸지만 최중혁이라도 되면 다행인 게 법조 기자 일반의 처지다. 왜 그럴까.

JTBC드라마 ‘로스쿨’ 13화에서 해원일보 최중혁 기자가 진형우 검사에게 술을 얻어 마시는 장면. [JTBC 캡처]

JTBC드라마 ‘로스쿨’ 13화에서 해원일보 최중혁 기자가 진형우 검사에게 술을 얻어 마시는 장면. [JTBC 캡처]

답은 영화 속에 있다. 스포트라이트 팀 추적의 8할은 한 변호사가 법원에 낸 문서를 정보공개청구로 얻어내는 과정이다. 재판에 제출한 문서에 대한 열람권을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기본권으로 보는 미국에선 일반인도 남의 재판에 제출된 서류 일체를 검색해 볼 수 있다. 공개가 생명인 형사재판에선 비공개가 더 제한된다.

미국의 법조 보도 환경이 하늘이라면 한국은 지하세계다. 공판중심주의라지만 방청석에서 서면 제출된 증거의 내용을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공개가 원칙인 판결문조차 법원도서관에만 설치된 전용 PC 앞에 줄을 서야 검색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우리 언론도 법원에 쌓인 기록과 서류를 볼 수 있다면 보도의 중심은 재판과 수사에 대한 사후 검증으로 이동할 것이다. 최중혁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제도 변화 없이 기자단부터 깨면 받아쓰기 통제의 이익보다 ‘카더라’ 범람과 수사기관의 정보 독점으로 인한 폐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

“불리한 건 싫다”는 수준의 언론개혁을 떠드는 정치권에 이젠 형사 재판에 제출된 서류만이라도 일반인이 볼 수 있게 하자고 요청하는 건 과욕일 수 있다. 그래도 누군가 진짜 언론개혁을 고민하겠다면 『일반인의 재판과 재판기록에 대한 접근권과 그 제약』(2009, 설민수)을 일독하길 권한다.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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