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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견제와 균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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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2003년 4월 검찰이 뒤집어졌다. 윤락가에서 암약하던 법조 브로커 박모씨와 현직 검사 20여명의 통화 기록이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다. 발원지는 검찰이 박씨 관련 영장을 줄줄이 기각한 데 격분한 서울 용산경찰서였다. 박씨의 별칭을 따 명명된 이 ‘오다리 사건’은 경찰이 검찰을 들이받았던, 거의 최초의 사건이었다.

경찰은 검찰 앞에서 한없이 약한 존재였다. 검찰에 구속돼 처벌받은 경찰관리들은 끊이지 않았지만, 그 역관계는 거의 성립하지 않았다. 수사지휘권과 영장 청구권, 기소권을 가진 생사여탈의 결정권자를 건드릴 경찰은 드물었다. ‘오다리 사건’ 수사 역시 적어도 경찰 재직 시에는 ‘대검찰 투사’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황운하 의원이 수사 지휘자였기에 가능했다.

수사팀은 결국 한 달 뒤 박씨를 구속하는 데 성공했지만, 거기까지였다. 형사처벌을 받은 검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후 경찰이 검사들을 상대로 시도한 몇 차례의 ‘독립적 수사권 행사’도 모두 실패했다. 견제 세력의 부재 속에서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고, 그 결과는 검찰권 남용 논란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랬던 검찰이 드디어 동급의 적수를 만났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몇 개 사안에 대한 검찰 수사의 적정성을 따져보기로 결정하면서다. 배경은 미심쩍다. 야당의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전직 검찰총장과 야당 소속의 부산시장이 표적이라는 건 여당의 이해관계와 정확히 부합한다. 말 그대로 한 줌밖에 안 되는, 일천한 경력의 ‘병력’으로 동시다발적 수사가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이었다. 공수처는 원래 판·검사를 표적으로 하는 기관으로 구상됐고, 현실화한 공수처 역시 본질은 검찰 견제에 있다. 공수처의 선공과 검찰의 역공에 경찰까지 얽히고설키면서 수사판이 난장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온 바다와 산과 들과 하늘이 들고일어서 폭풍치고 번개 치며 포효하여 핏빛으로 새로이 나는 것.’ ‘사랑’에 대한 박노해 시인의 정의대로 신체제의 구축과 정착은 혼란을 겪은 뒤에야 가능한 법이다. 이왕 이렇게 된 바 수사 기관들이 정정당당하게 제대로 붙어서 제대로 부서진 뒤 제대로 된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을 구축하길 기대해본다.

박진석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