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4분의 1 가격으로 조니워커 맛 즐기는 ‘탈리스커’

중앙일보

입력 2021.06.15 11:00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124)

슬슬 가게 문을 닫으려는 찰나에 한 손님이 찾아왔다. 후드티에 청바지. 이 계절에 어울리는 청년의 옷차림이다. 그래도 새벽이면 좀 추울 텐데, 가벼운 바람막이라도 하나 걸쳤으면 좋으련만.

“어서 오세요. 저희 바는 위스키를 팔고 있습니다. 우선 앉으시죠."

그에게 물수건을 건네자 손을 닦고 백바를 천천히 둘러본다. 생전 처음 보는 술들을 앞에 두고 그의 눈은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앗! 저기 제가 아는 술이 하나 있네요! 조니 워커! 아버지가 참 아끼는 술이에요. 매형이 누나랑 결혼 허락 받으러 저희 집에 올 때 사왔었죠. 좀 따서 마시자고 했는데 아버지가 얼마나 아끼시던지…. 정말 맛이 궁금했는데 한 잔 마셔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화려한 조니워커 블루라벨 한정판 위스키. [사진 김대영]

화려한 조니워커 블루라벨 한정판 위스키. [사진 김대영]

백바에서 조니워커 블루라벨을 꺼내 글렌 캐런 잔에 담고, 아이스볼이 담긴 유리잔과 함께 내놓는다.

“처음에는 스트레이트로 향을 맡아본 뒤에 한 모금 마셔보세요. 그리고 좀 술이 세다 싶으면 옆에 있는 유리잔에 담아서 마시면 됩니다.”

“이 둥근 건 얼음이에요? 되게 예쁘네요.”

“네, 원래는 얼음을 주문하면 네모난 형태로 배달이 되는데, 제가 손으로 깎아서 둥글게 만든답니다. 얼음은 술을 차게 해 알코올 느낌을 가라앉혀주죠. 향도 좀 더 온순하게 변하고요. 그리고 이렇게 큰 얼음은 잘 녹지 않기 때문에 위스키 고유의 맛을 좀 더 오랫동안 즐길 수 있어요”

“그렇군요, 이런 건 처음 알았어요. 술을 마시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네요.”

그가 블루라벨을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다. 그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퍼진다.

“정말 부드럽네요. 40도라고 써있는데 전혀 그렇게 안느껴져요. 소주보다 도수가 두 배는 더 되는데 훨씬 마시기 좋네요.”

“위스키는 숙성이라는 걸 하거든요. 그 과정이 이 부드러운 느낌을 만든답니다. 그리고 방금 드신 건 블렌디드 위스키라는 건데, 사람들이 마시기 좋게 만든 위스키죠. 그래서 참 마시기 편한 겁니다."

“매일 이런 걸 마시면 어떤 기분일까요…? 자기 차로 학교에 오는 친구는 아마 이런 술도 많이 마셔봤겠죠?”

그가 서울에 온지 한 달이 지났다. 부모는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한 아들을 위해 마을 곳곳에 현수막을 걸고 잔치를 열었다. 그는 그렇게 활짝 웃는 부모 모습을 처음 봤다. 아버지의 어깨는 잔뜩 올라갔고, 어머니의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아이고, 제 아들이라 이런 말 하긴 남사스럽지만…."

그는 대방동에 있는 학숙에 들어갔다. 서울에 유학중인 지역 출신 대학생이 공동생활을 하는 곳이다. 처음 보는 사람과 한 방을 썼지만, 동향 사람이라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학교는 달랐다. 서울 출신 학생이 대부분인 그 곳에서 소외감을 느꼈다.

“나이는 같지만 살아온 환경이 너무 다른 거예요. 저는 아침 저녁으로 바다를 바라보면서 살았다면, 그들은 아파트와 네온사인을 보면서 살았으니까요. 옷 입는 것도 다르고, 먹는 것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이럴 거면 그냥 고향에 있는 대학으로 갈 걸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는 특히 친구들의 돈 씀씀이를 보고 놀랐다. 서울에 오자마자 아르바이트를 찾았던 그에 반해, 친구들은 서로 한 달 용돈에 대해 말했다. 수업이 끝나면 술집으로 향하는 그들의 가벼운 발걸음에 비해, 집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새벽 편의점 알바를 하려면 조금이라도 자둬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곧 시험인데, 제대로 공부도 못했어요.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도 술 마시느라 공부 못한 건 매한가지겠지만, 저는 시험 기간에 벼락치기 할 시간도 없고…. 고등학교 때 신문 기사에서 봤어요. 좋은 대학을 가려면 아버지의 무관심, 어머니의 정보력, 그리고 할아버지의 자금력이 필요하다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막상 대학에 들어오니까 그 말이 와닿더라구요. 그 세 가지는 성공적인 대학생활을 위해, 아니 어쩌면 인생 전체에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서비스로 한 잔 드리겠습니다.”

탈리스커 10년. 참치회와 잘 어울린다. [사진 박진영]

탈리스커 10년. 참치회와 잘 어울린다. [사진 박진영]

백바에서 탈리스커 10년을 꺼내 글렌 캐런 잔에 담는다. 탈리스커 특유의 피트향이 풍긴다.

“탈리스커 10년입니다.”

“향이 굉장히 독특해요. 소독약 같기도 하고…맛은 아까 마신 조니워커에 비하면 거칠긴 한데, 그래서 그런지 맛이 더 확실하게 느껴지네요. 약간 짠 맛 같은 것도 느껴지는 것 같고…"

"저희 가게에서 파는 싱글몰트 위스키 중 가장 저렴한 위스키입니다."

"그래요? 저는 상당히 맘에 드는데…이게 가장 싼 거군요. 아까 마신 조니워커랑은…."

"네 배 정도 가격 차이가 나죠. 그런데 재미있는 건, 조니워커에 들어가는 키몰트 중 하나가 바로 탈리스커입니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죠. 조니워커의 아련한 스모키함을 만들어내는 게 바로 탈리스커입니다. 수 십 종의 위스키가 섞여 조니워커를 만들어내지만, 탈리스커 만큼 자기 개성을 뽐내는 녀석은 없지요."

"아까 조니워커를 마실 때 느껴졌던 그 맛이 이 탈리스커에서 나왔다니 신기하네요. 그러고 보니 두 맛이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탈리스커는 스코틀랜드 북쪽에 있는 스카이섬에서 만들어집니다. 북위 57도나 되죠. 그래서 스페이사이드나 하이랜드에서 만들어진 위스키와는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바다 앞에 지어져서 숙성 중에 바닷바람을 듬뿍 머금게 되죠. 한 번 병을 보세요. ‘MADE BY THE SEA’라고 적혀있죠? 바다가 만들어낸 개성 있는 맛은 어느 증류소도 흉내 낼 수 없고, 다른 위스키들과 섞여도 당당히 자기 맛을 냅니다."

"감사합니다. 위스키도 이렇게 제 몫을 해내는데 제 생각이 너무 어렸네요."

"아닙니다. 저도 대학생 때 새벽 편의점 알바를 했었어요. 매일 밤을 새는 게 힘들긴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즐기기로 했죠. 새벽 맑은 공기를 누구보다 먼저 마실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마음을 고치면, 아무리 힘든 환경도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물과 연료가 부족하고 환경이 척박한 탈리스커 증류소에서 이런 훌륭한 위스키를 만들어낸 것 처럼요."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