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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먹고싶나" 사비로 '누렁이' 만든 미드 프렌즈 제작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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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트콤 '프렌즈'의 제작자 케빈 브라이트가 직접 한국 개고기 산업을 조명한 다큐 '누렁이' 포스터. 영어 제목도 한국말 발음 그대로 지었다. [사진 저스트 브라이트 프로덕션즈]

미국 시트콤 '프렌즈'의 제작자 케빈 브라이트가 직접 한국 개고기 산업을 조명한 다큐 '누렁이' 포스터. 영어 제목도 한국말 발음 그대로 지었다. [사진 저스트 브라이트 프로덕션즈]

“개고기 소비의 미래는 한국인에게 달렸어요. 한국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모든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이 영화를 볼 수 있길 바랐죠.”

한국 개고기 산업을 다룬 다큐멘터리 ‘누렁이(Nureongi)’를 10일 유튜브(https://youtu.be/KBfSiE3m_4Q)에 무료 공개한 미국인 케빈 브라이트(66) 감독의 말이다. 13일 본지와 e-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한국이 교육제도‧경제력의 위상이 높은 나라라고 알아왔는데, 개고기를 먹는다는 말을 듣고 개고기 시장을 직접 찾아가 확인하고 싶었다”면서 “내가 만난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개고기가 합법인지 아닌지, 연간 얼마나 많은 개가 소비되는지, 한국에 개농장이 얼마나 있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첫 한국여행에서 개고기에 대한 상반된 정보들을 발견하고 ‘누렁이’를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한국 개고기 조명한 다큐 '누렁이' 연출한 #미드 '프렌즈' 제작자 케빈 브라이트 감독 #"한국 개고기 복잡한 문제란 것 알게 돼… #편견없는 실상 보여주려 사비로 다큐 제작" #내달 복날 전후 상영·관객과의 대화 계획

그는 미국 인기 시트콤 ‘프렌즈’(1994~2004) 제작자로 유명하지만, 다큐 연출자로도 활동해왔다. 신작 ‘누렁이’를 만들기 위해 2017년부터 4년간 한국의 여러 개 농장을 방문했고, 식용견 농장주부터 육견협회 관계자, 대학교수, 국회의원, 동물 보호가, 일반 시민까지 폭넓은 인터뷰를 통해 한국 개고기 산업의 실상을 들여다봤다. “전국 개농장이 1만개”에 달하고, “연간 도살량이 최소 150만 마리 이상”이라는 다큐 속 관계자들 설명 중엔 한국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 많다.

지난 7일 다큐를 세계 최초로 공개한 서울환경영화제에선 “민감한 쟁점의 측면들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접근하면서, 사육업자의 생계와 동물권 운동가의 열정, 개고기 역사 등 이 주제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이야기를 들춰냈다”고 평가받았다.

유튜브 900여개 댓글엔 찬반 팽팽

다큐 '누렁이'를 연출한 케빈 브라이트 감독. 이 다큐에는 한국 개농장에서 구조한 개를 미국에 입양보내는 DoVE(Dogs of Violence Exposed) 프로젝트를 그의 아내와 공동 설립한 한국계 미국인 태미 조 저스맨이 카메라 앞 화자로 나섰다. [사진 저스트 브라이트 프로덕션즈]

다큐 '누렁이'를 연출한 케빈 브라이트 감독. 이 다큐에는 한국 개농장에서 구조한 개를 미국에 입양보내는 DoVE(Dogs of Violence Exposed) 프로젝트를 그의 아내와 공동 설립한 한국계 미국인 태미 조 저스맨이 카메라 앞 화자로 나섰다. [사진 저스트 브라이트 프로덕션즈]

‘누렁이’는 10일 유튜브에 무료 공개된 뒤 닷새 만에 조회 수가 3만을 넘었다. 900여개 댓글 중엔 “누군가에겐 반려견이 되고 누군가에겐 개고기가 된다. 단지 개인 인식의 차이다” “개가 인간을 사랑하게 만든 게 인간이다. 그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하지 않나” 등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브라이트 감독은 “촬영 과정에서 한국의 개고기 소비가 매우 복잡한 문제임을 알았다”면서 “이 영화가 외부인에 의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많은 한국사람들과 함께 작업했다. 한국 문화가 동물 학대를 지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개고기 산업을 둘러싸고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다큐를 투자 없이 자비로 만들고 유튜브에 무료 공개한 이유에 대해 “개고기 소비로 인해 한국에서 문화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그것을 논의할 시기가 바로 지금이기에 아무런 이익도, 명예도 바라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큐 '누렁이'에서 개농장에 갇힌 개의 모습. 브라이트 감독은 다큐 제작 과정에서 “사전 조사는 미국에서 온 내 프로듀서 팀이 하고 한국 도착 후엔 한국 로케이션 프로듀서가 현지 조율과 섭외를 담당했다”고 설명했다. [사진 저스트 브라이트 프로덕션즈]

다큐 '누렁이'에서 개농장에 갇힌 개의 모습. 브라이트 감독은 다큐 제작 과정에서 “사전 조사는 미국에서 온 내 프로듀서 팀이 하고 한국 도착 후엔 한국 로케이션 프로듀서가 현지 조율과 섭외를 담당했다”고 설명했다. [사진 저스트 브라이트 프로덕션즈]

영어 원제도 ‘누렁이’의 한국말 발음에서 따왔는데.  

“한국 사람에게 익숙하게 들리길 원했다. 누렁이는 한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개 품종이고, 식용견으로 해석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영세 개농장…비위생·밀집된 개들의 '호러'"

다큐는 정부 허가를 받아 대규모로 운영하는 개농장 등 개고기 산업의 다양한 측면을 비췄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영세한 개농장을 첫 방문했을 때를 들었다. “이렇게 비위생적인 환경에 밀집된 수많은 개들의 ‘호러’를 보며 누가 정말 이 개들을 먹고 싶어할까란 생각도 들었다”면서다.

다큐 속 영세 개농장에선 개들이 바닥을 띄워 설치한 ‘뜬장’ 높이까지 배설물이 쌓인 열악한 철창에서 피부병 등을 앓거나 죽어있는 모습도 포착된다. 현재 개고기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인정하는 식품 원료로도, 축산물위생관리법상의 가축으로도 분류되지 않은 채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다큐 속 인터뷰에서 이혜원 수의사는 “(이런 개고기의 미생물 검사에서 나온 세균이) 소고기나 돼지고기에서 나왔다면 식용 불판정을 받게 되어있다”라고 설명했다.

"식용견·애완견 다르지 않다는 강형욱 설명 인상적"

강형욱 동물 훈련사,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한 표창원 전 의원, 동물운동가이기도 한 박칼린 뮤지컬 음악감독, 홍혜걸 의사 등도 출연해 목소리를 냈다. 브라이트 감독은 식용견과 애완견이 다르지 않다는 강 훈련사의 설명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돌이켰다. 미국에 있는 자신의 반려견 ‘호프’와 ‘오스카’도 한국의 개 농장에서 구조됐는데 충성스럽고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면서다.

서울의 전통적인 궁과 빌딩숲을 개농장의 처참한 뜬장 모습과 교차하는 방식의 편집을 했는데.  

“서울의 당당한 모습과 뜬장을 나란히 배치한 것은 의도적이었다. 단지 인간들이 잘 지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살아있는 동물들은 어떻게 존재하든 상관없다는 뜻일까, 라는 메시지였다.”

전기충격 도축 장면에선 개가 바로 죽지 않고 눈을 깜빡이는 모습까지 카메라에 담았다.  

“내가 개들이 죽기 전에 매 맞고 불에 그을려진다는 주장에 대해 들려주자 육견협회 관계자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고, 전문 개고기 산업에서는 개를 죽이는 빠르고 인도적인 방법이 있다’며 그 과정에 대한 자부심을 보였다. 내가 제대로 된 기록을 위해 도살 장면을 한번 촬영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자 그가 동의했다. 육견협회 허락을 받아 촬영했다.”

"개소주 제조자의 반려견 사랑은 진심이었죠" 

브라이트 감독은 “개고기를 계속 먹을지 안 먹을지는 한국인의 몫”이지만 “살아있는 동물에게 고압 전류를 보내면 내장이 타서 동물이 죽는다. 그것은 도살이 아니라 살육이다. 개를 포함한 어떤 동물에게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했다.

케빈 브라이트 감독의 반려견 '호프'와 '오스카'(왼쪽부터). 둘 다 한국의 개농장에서 구조됐다. [사진 저스트 브라이트 프로덕션즈]

케빈 브라이트 감독의 반려견 '호프'와 '오스카'(왼쪽부터). 둘 다 한국의 개농장에서 구조됐다. [사진 저스트 브라이트 프로덕션즈]

다만 다큐 속 개고기 산업 종사자 및 찬성파에 대해 그는 “나는 누군가를 헐뜯거나 괴롭힐 의도는 전혀 없었다”면서 “영화 속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견해와 의견을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다들 친절하게 인터뷰에 응했고 나도 약속을 지킨 것 같다”고 했다. “경동시장의 개소주 제조자의 요크셔테리어(반려견)에 대한 사랑은 진심이었죠. ‘개고기 박사님’(안용근 전 충청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은 개고기에 관한 사실을 분명히 알리고 한국사람들이 결정하도록 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 내 취지를 지지해줬어요.”

개고기 산업 종사자들이 완성된 영화를 봤나.

“육견협회 관계자들이 몇 달 전 비공개 상영으로 먼저 봤다. 육견협회가 영화의 마지막 편집본을 보고 의견을 낼 기회를 주려는 목적이었고 기꺼이 그들과 타협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런데 육견협회는 이 영화가 거짓말이고 파괴돼야 하며 한국의 누구도 봐선 안 된다고 했다. 육견협회는 내가 개고기 소비를 옹호하는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나는 이 영화가 양쪽 모두를 반영하는 편견 없는 영화라고 내내 이야기해왔다. 그때가 육견협회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브라이트 감독은 무엇보다 “개고기 산업을 위한 법적 기준을 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적용 가능한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면서 “▲개고기 산업‧소비는 합법화돼야 하는가 ▲애완견과 식용견을 어떻게 정의‧분류하나 ▲개농장 합법화된다면 식용견을 어떻게 사육‧도살할 것인가 ▲개농장이나 개고기 소비가 불법화된다면 관련업 종사자들의 생계를 위한 정부 지원이나 보조금이 있을 것인가” 등을 사안으로 들었다.

BTS는 폭발적…'프렌즈' 특별대본 선물하고 싶죠

다큐 '누렁이'엔 한국의 다양한 동물 보호 단체도 등장한다. 특히 구조동물 안락사 혐의로 재판 중인 동물권 보호단체 ‘케어’의 박소연 전 대표 출연 비중도 크다. 브라이트 감독은 “소송이 진행 중인 것을 알고 있다”면서 “법원의 심판을 받아야 할 문제에 대해 의견을 말할 수 없다”고 짧게 답했다. [사진 저스트 브라이트 프로덕션즈]

다큐 '누렁이'엔 한국의 다양한 동물 보호 단체도 등장한다. 특히 구조동물 안락사 혐의로 재판 중인 동물권 보호단체 ‘케어’의 박소연 전 대표 출연 비중도 크다. 브라이트 감독은 “소송이 진행 중인 것을 알고 있다”면서 “법원의 심판을 받아야 할 문제에 대해 의견을 말할 수 없다”고 짧게 답했다. [사진 저스트 브라이트 프로덕션즈]

그는 방탄소년단(BTS) 등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 드러냈다. 자신의 지난 40년간 방송 경력 중 “내 삶을 상상 이상으로 바꾼 쇼”라 꼽은 ‘프렌즈’의 25주년 특별 방송에 BTS를 초청한 이유를 “우리가 안 그랬다면 미친 것이기 때문”이라 했다. “BTS는 지역적인 K팝 현상을 초월해 전 세계적인 폭발력을 보여줬다”면서 “한국에 갔을 때 희망컨대 이 그룹을 만나 ‘프렌즈’ 출연자 전원이 사인한 7개의 특별 대본을 전해주고 싶다”고 ‘팬심’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다음 달 초복(11일)을 전후해 한국을 방문, ‘누렁이’ 상영 및 관객들과 대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에서 이 문제에 대한 토론을 시작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 만큼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계가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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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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