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골초 임금 정조 “민생에 담배만큼 공이 큰 것 어딨나”

중앙일보

입력 2021.06.15 08:00

[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 살기(104)

해가 바뀔 때마다 다짐하는 게 있다. 금주와 금연이다. 대부분 작심삼일, 의지의 나약함을 절감하고는 실패로 끝난다. 왜 그럴까. 지독한 중독성, 습관성이 있는 향정신성물질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호품 중 인류에게 가장 크게 해를 끼친 게 술과 담배가 아닌가 싶다. 법적으로 허용된 것 중 최악이다. 둘 다 1군 발암물질로서 당장은 사람을 죽이는 독약은 아니지만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식음료로 취급된다(담배가 식품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양을 무시하면 마약과 다름없다. 신체를 넘어 정신까지 갉아먹는 고약한 식품(?)이다.

60~70%의 알코올(술)은 소독약으로 사용된다. 주사 맞을 때 주사부위를 문지르고, 코로나 시대 곳곳에 비치돼있는 손 소독약도 알코올 성분이다. 살아있는 세포를 무차별 죽일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우리가 마시는 술이 이 소독약과 다를 것으로 생각하지만 농도만 다를 뿐 똑같은 알코올이다(이런 도수의 술도 있다). 살균력은 농도가 낮아질수록 약해지나 그렇다고 살균작용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소독 시 알코올 농도가 100%가 아니고 왜 70%일까. 70% 쪽이 독성은 낮지만 알코올이 세포 내부로 잘 스며들어 대미지를 더 주기 때문이다. 살균작용은 대개 10% 이상으로 본다. 술의 도수가 10%는 넘어야 썩지 않는 이유다. 이 정도의 술이 우리의 상피세포에도 똑같이 작용한다는 것. 독한 술을 넘길 때 목구멍과 위 속이 짜릿해지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세포가 죽어간다는 뜻, 이른바 속 쓰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술이 사회적·정신적·신체적 측면에 미치는 해악은 상상을 초월한다. [사진 pixabay]

술이 사회적·정신적·신체적 측면에 미치는 해악은 상상을 초월한다. [사진 pixabay]

그럼 체내로 흡수된 술은 어떻게 될까. 마신 양과 관계없이 혈관 등 모든 장기에 영향을 준다. 특히 뇌에 그 피해가 크다. 음주의 양에 대한 안전기준은 없다. 마시면 마실수록 뇌의 용적이 줄어든다는 연구가 있다. 알코올의 섭취량이 많을수록 뇌 회색질(gray matter)의 밀도가 낮아진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음주습관은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혀 정신장애가 오고 폭력성이 증가하며 자살 충동까지 느끼게 한다. 알코올 의존성은 정신병으로 취급하며 강제 수용되기도 한다. 치료가 마약중독 이상으로 어렵다. 최근 노인성 질환으로 여겨졌던 치매가 젊은 층에서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단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알코올이 주요 원인이라 했다.

술이 사회적·정신적·신체적 측면에 미치는 해악은 상상을 초월한다. 술에 취하면 행동이 돌변하고 개가 되는 사람도 있다. 술에 관대한 국민성도 문제다. 술김에 했다 하면 용서되고 이해된다. 범죄의 형량까지도 참작한다. 인사불성을 블랙아웃이라 하고 기억에 없다고 하면 봐준다. 대형 교통사고의 원인 중 음주운전이 으뜸이다.

그럼 담배는? 술보다 더 해롭다는 건 상식이다. 니코틴은 고농도로 물에 타 먹이거나 주사하면 즉사한다. 신문에 니코틴 살인사건이 보도되기도 했다. 또 담배연기 속에는 발암성분 등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수없이 많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니코틴의 혈중농도 3.7㎎/L 이상을 치사량으로 본다. 담배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해도 연달아 다섯 개비 정도를 폐 속 깊숙이 흡입하면 이 양에 도달한다는 추정이다.

담배를 하루에 한 개비만 피워도 혈관건강을 해친다는 연구도 있다. 최근 영국의학회지는 관상동맥질환의 발생비율은 남성이 하루 20개비 이상에서 127%, 한 개비에도 74%가 높아진다고 했다. 여성의 경우는 더 심해 각기 295%, 119%이었다. 우리의 사망 원인인 1위가 암이고 그 중 폐암이 으뜸, 폐암의 위험요인 중 1위가 흡연이다.

그런데도 왜 용감하게 담배를 피우게 됐을까. 담배를 처음 배울 때는 두통과 구토 등 심한 고통을 경험한다. 참고 물을 마셔가며 스스로 중독의 길을 택한다. 이유는? 멋있어 보여서, 어른이 된 것 같은 착각 때문이었을까. 증·고교 시절 숨어 피우다 선생님께 걸려 모질게 얻어맞은 경험이 있는 흡연자도 있을 터. 불손한 의도(?)로 시작한 것이 평생 후회하고 의지의 나약함을 확인해 주는 계기가 될 줄이야. 나도 소싯적에는 그랬다.

날이 갈수록 흡연자에 대한 인식이 험악해졌다. 눈총받고 하대 받는 시대가 됐다. 비난받지 않으려고 몰래 숨어서 피우는 세월이다. 주위는 온통 금연구역이고 흡연자를 한군데(흡연구역) 모아 밀폐된 공간에 몰아넣는 모진 세상이 됐다. 함부로 피우다간 벌금까지 문다. 그런데도 끊지 못하는 이유는? 멋져서가 아니라 중독성 때문이다.

술과 담배는 다소나마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스트레스를 풀고 인간관계의 연결고리로 작용해서다. 그렇다 쳐도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해악은 엄청나다. 인간은 한번 뇌의 쾌락보상을 경험하면 웬만한 의지로는 끊지 못하기 때문이다.

술과 담배에 대한 논란은 역사가 유구하다. 주색잡기를 풍류로, 술 잘 먹는 것을 호기로, 그렇지 못하면 졸장부로 여기는 풍조마저 있었다. 술, 담배에 관해서는 흑역사도 많지만 옛적에는 예찬 쪽이 훨씬 더 많았다. 특히 술에 대한 찬사는 차고 넘쳐 소개에도 벅찰 정도. 해서 술은 생략하고 담배에 대해서만 몇 자 적는다.

날이 갈수록 흡연자에 대한 인식이 험악해지고 있지만 끊지 못하는 이유는 멋져서가 아니라 중독성 때문이다. [사진 pixabay]

날이 갈수록 흡연자에 대한 인식이 험악해지고 있지만 끊지 못하는 이유는 멋져서가 아니라 중독성 때문이다. [사진 pixabay]

성군으로 치는 정조는 ‘담배어천가’의 대표적 인물이다. 스스로도 골초였다. “여러 가지 식물 중에 이롭고 유익한 것으로는 남령초만 한 것이 없다. 민생에 이만큼 덕이 있고 이만큼 공이 큰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 탓인지 당시 세간에는 담배가 편두통, 배앓이, 치통 등에 효과가 있는 민간요법으로 통했다. 치료용으로 어린애에게도 피우게 했다. 약이 귀했던 시절이라 그런 성 싶다. 이에 중독된 10대 초중반의 새색시가 혼수품에 짧은 담뱃대를 숨겨오는 경우마저 있었다. 내 조모와 모친도 그랬다고 들었다. 반대로 광해군은 흡연에 대해 엄격했다.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는 예절이 그때부터 생겼다는 기록이다.

담배에 얽힌 잔혹사는 다음 주제로 미루고, 우선 조선시대에 한 사대부가 읊조린 황당한 담배예찬을 소개한다. 명시라 올려보지만 분명 중독으로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다.

“책상을 앞에 두고 글을 읽는다. 중얼중얼 반나절을 읽으면 목구멍이 타고 침이 마르지만 달리 먹을 게 없다. 글 읽기를 마치고 화로를 당겨 담뱃대에 불을 붙여 한 대 피우니 달기가 엿과 같다.”

“대궐의 섬돌 앞에서 임금님을 배알한다. 엄숙하고 위엄이 있다. 입을 닫은 채 오래 있다 보니 입맛이 다 떨떠름하다. 대궐문을 벗어나자마자 급히 담뱃갑을 찾아 서둘러 한 대를 피우니 오장육부가 다 향기롭다.”

“길고 긴 겨울밤 첫닭 울음소리에 잠을 깼다.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다. 몰래 부싯돌을 두드려 단박에 불씨를 얻어 이불 속에서 느긋하게 한 대 피우니 빈방에 봄이 피어난다.”

“산골짜기 쓸쓸한 주막에 병든 노파가 밥을 파는데, 벌레와 모래를 섞어 찐 듯하다. 반찬은 짜고 비리며 김치는 시어 터졌다. 그저 몸 생각해 억지로 삼켰다. 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참자니 먹은 것이 위에 얹혀 내려가지 않는다. 수저를 놓자마자 바로 한 대를 피우니 생강과 계피를 먹은 듯하다.”

지금은 끊었지만 과거 골초였던 나에게는 이 시에 대해 다소 수긍 가는 부분이 있긴 하다. 혹여 당신도 그런가?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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