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전 아스피린 NO" 의사 말 따랐다가…심장마비 사망

중앙일보

입력 2021.06.15 05:00

환자안전보고학습시스템(KOPS)이 지난해 11월 전국 의료기관에 발령한 항혈전제 환자안전 주의경보. 의료기관인증평가원 경보 캡처.

환자안전보고학습시스템(KOPS)이 지난해 11월 전국 의료기관에 발령한 항혈전제 환자안전 주의경보. 의료기관인증평가원 경보 캡처.

60대 남자 환자가 인공관절 교체 수술을 받기 위해 지난해 10월 외래 진료를 받았다. 의사는 항혈전 약인 아스피린을 먹지 말 것을 주문했다. 일주일 동안 먹지 않았다. 수술 하루 전 검사에서 다른 항혈전 약인 클로피도그렐을 복용하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혈이 안 될 것을 우려해 수술을 취소했다. 두 개의 약을 끊다가 6일 후 수술했고, 그 후 4일간 먹지 않았다. 병원 측이 환자의 경과를 관찰했지만 수술 4일째 급성심근경색으로 숨졌다. 숨지기 전까지 아스피린은 11일, 클로피도그렐은 18일 복용을 중단했다.

투약 관련 사고 자율보고 3년새 4배로
감기약 비염약 3가지 동시 복용하기도
서울대병원 입원환자 상담해 약물 조정

병원 측은 의료기관인증평가원(이하 평가원)의 환자안전 보고학습시스템(KOPS)에 사고를 보고했다. 평가원은 필요 이상 오래 항혈전 약을 중단하면서 발생한 사고라고 보고 전국 의료기관에 '안전주의 경보'를 발령했다. 출혈을 막기 위해 항혈전 약을 중단했지만, 너무 오래 중단해 혈관이 막혀 숨진 것으로 판단했다. 평가원 측은 "뇌경색·심근경색 등 심각한 위해가 발생할 수 있으니 출혈 위험과 혈관질환 발생 위험을 함께 고려해 항혈전약 중단과 재개에 신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환자안전법에는 200병상 이상 병원에서 투약으로 인해 한 달 이상의 의식불명 같은 중대한 안전사고가 생기면 즉각 보고하게 돼 있다.

투약 관련 사고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KOPS에 보고한 투약 관련 사고가 4325건으로 전체 환자안전 사고의 31%를 차지했다. 낙상 다음으로 많다. 투약 관련 사고 발생자 중 2명이 숨졌다. 3명에게 영구적 손상 또는 부작용을, 722명에게 장기적인 손상 또는 부작용이 생겼다. 투약 사고 보고는 2017년 1075건에서 지난해 4325건으로 4배로 늘었다. 구홍모 중앙환자안전센터장은 "환자 안전사고 보고는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이런 사고를 공유해 재발하지 않도록 교육하는 게 목적이어서 보고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투약 사고 보고 건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투약 사고 보고 건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입원과정에 약물 오류 잡아내 

입원하는 과정에서 약물 오류를 잡아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환자가 이 병원 저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점검하면서 잡아낸다. 서울대병원 약제부 백진희 팀장은 10일 '인간 중심의 약사의 역할 모색' 포럼에서 약물 상담서비스 결과를 공개했다. 2019년 10월~지난해 7월 서울대병원 4개 병동 입원환자 4017명의 평소 복용약을 점검해 1061명에서 문제를 발견했다.

어떤 환자는 감기약, 알레르기 비염 치료제 등으로 세 가지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환자는 "입이 자주 마르고 어리럼증이 있다"고 상담 약사에게 호소했다. 의사와 협조해 두 개의 약을 중단했고, 이 중 한 개는 비염이 악화할 때 복용할 것을 권고했다. 병원 측은 퇴원하는 환자에게 "종합감기약을 먹을 때 중복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의를 줬했다. 항히스타민제는 피부 질환, 알레르기 비염 등에 쓰는데, 어지럼등 등 부작용이 있어 낙상을 야기한다.

퇴원 환자의 약에도 문제를 발견했다. 이미 복합제 성분을 함유한 고혈압 약을 복용하는 환자에게 고혈압 약이 추가로 처방된 것을 발견했고, 의사와 상의해 추가 처방약을 취소했다. 환자에게도 이런 사실을 알렸다. 또 약의 복용횟수가 잘못된 점을 발견해 바로잡았다.

입원할 때 대부분의 병원은 환자에게 "현재 복용 중인 약의 처방전이나 약 봉투를 갖고 와라. 없으면 약을 갖고 와라"고 요청한다. 간호사가 입원환자의 복용 약을 파악한다. 처방전이나 약 봉투가 없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약을 보고 어떤 약인지 파악한다. 그런데 눈으로 봐서 구분하기 어려운 약이 적지 않다.

여러가지 알약들의 모습. 중앙포토

여러가지 알약들의 모습. 중앙포토

가령 항암제 스프라이셀정과간염치료제 바라크루드정은 맨눈으로 구분하기 쉽지 않다. 서울의 모 대학병원에서 약 모양을 보고 항암제라고 파악했다가 처방 전 오류를 발견한 적도 있다.

인데놀정(부정맥약), 바크론정(골격근이완제), 신일티아민염산염정(비타민B1), 오코돈서방정(마약성 진통제) 등의 4종류의 약도 식별하기 어렵다. 파킨슨병약과 부신호르몬제도 그렇다. 프로그랍캡슐(면역억제제)과올데카캡슐(혈압강하제)도 마찬가지다. 간호사가 구분하기 힘들면 약사에게 넘긴다.

하지만 조윤숙 서울대병원 약제부장은 "병원 약사의 인력 배치 기준이 (원내) 조제매수 위주로 설정돼 있다. 의료의 변화에 따라 병원 약사에게 중환자·이식환자·암환자 약물 검토 등의 새로운 일이 많이 늘어서 입원환자 약 식별 요청을 다 소화하기 버겁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약품 안전 사용 서비스(DUR), '내가 먹는 약 한눈에 알아보기' 등의 정보기술(IT) 인프라를 활용하면 되지만 환자의 본인인증 절차 등이 까다롭고, 약사가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조윤숙 부장은 "입원할 때,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이동할 때, 퇴원할 때 환자의 약 복용 이력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부작용이 생기고, 치료 효과가 떨어진다. 또 퇴원 후 응급실에 실려 오거나 재입원이 느는 등 의료비를 증가시킨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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