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년 64세까지" "단협 3년에 한번"···현대차 노사 맞붙었다

중앙일보

입력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명촌정문에서 1조 근로자들이 퇴근하고 있다. [뉴스1]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명촌정문에서 1조 근로자들이 퇴근하고 있다. [뉴스1]

전국 최대 규모의 조합원(약 5만명)을 가진 현대자동차 노조가 2021년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협상에서 또다시 사측과 맞붙었다. 노조는 "정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을 앞세우고, 사측은 "단체협약 주기를 늘려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양쪽 모두 선진국 사례를 들며 각각 정년연장과 노사협상 주기 연장 카드를 들고 나왔지만, '연장'이라는 단어만 일치할 뿐 전혀 다른 내용때문에 협상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조, 정년연장 국민청원 나서  

14일 재계·노동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는 이날부터 한 달간 기아·한국GM 노조와 공동으로 정년연장(64~65세)을 위한 국민동의 청원작업에 돌입했다. 국민동의 청원이란 국회 홈페이지를 통해 10만명 이상이 동의할 경우, 청원이 접수되는 제도다. 현대차 노조는 "국민연금 수령 직전 해인 64세까지 회사에 재직할 수 있다"는 조항을 임단협 협상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기아 노조는 현대차보다 1년 더 긴 '65세 정년 연장' 방안을 회사에 요구한 상태다. 최근 노조 소식지에서도 현대차 노조는 "영국·미국은 정년차별제도를 폐지했고, 독일·스페인·이탈리아 등은 65세까지 재직 정년을 연장했다"며 "정년연장은 선진국의 사례에서 보듯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사측, 단협 주기 2년서 3년으로 늘려야

현대차 경영진은 "단체협약(단협) 주기를 현재 2년에서 3년으로 늘리자"는 안을 노조에 제시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올 초 개정된 노동법에 따라 노사 합의에 따라 단협 주기를 최대 3년까지 늘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현대차·기아 노사는 단협은 격년 주기로, 임금협상은 매년 진행하고 있다. 일단 단협 주기를 늘리고, 그다음 임금협상 주기도 2년 또는 3년으로 연장하겠다는 게 경영진의 구상이다.

정년연장과 임단협 주기 연장을 놓고 노사는 서로 맞서고 있다. 현대차 경영진은 노조에 "정년연장은 어떤 조건이든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고, 현대차 노조는 "임단협 주기 연장은 노조 협상력이 약화할 수 있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주요 자동차 회사 노사관계 비교.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주요 자동차 회사 노사관계 비교.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현대차·기아와 한국GM 등 완성차 3사 노조가 지난 3월 국회에서 ″65세까지 정년을 연장하는 내용의 법제화를 정부와 국회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사진 현대차 노조]

현대차·기아와 한국GM 등 완성차 3사 노조가 지난 3월 국회에서 ″65세까지 정년을 연장하는 내용의 법제화를 정부와 국회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사진 현대차 노조]

특히 현대차 사측이 들고 나온 임단협 주기 연장을 놓고는 노사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자동차 업계는 글로벌 메이커 사례를 들며 임단협 주기 연장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경우, 2000년부터 임단협을 4년마다 실시한다. 독일 폴크스바겐은 노조위원장 임기(4년)가 한국보다 2년 더 길고, 그 임기 내에서 노사가 협상 시기를 탄력적으로 잡고 있다. 김주홍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정책기획실장(상무)는 "매년 이어지는 노조와의 협상으로 경영진이 피로감을 호소한다"며 "제도를 바꾸면 임단협이 있는 해에만 깊이 있는 협상을 하고, 나머지 해는 근원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노조의 협상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고, 산별노조 체제에서 상급단체(민주노총 금속노조)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에 앞서 한국GM 노조 역시 지난해 "임단협 유효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변경하자"는 사측 제안에 교섭 결렬을 선언하기도 했다. 다만 산별노조에 가입해 있지 않은 쌍용차 노조는 최근 단협 유효기간을 3년으로 늘리는 데 합의했다. 채권단인 KDB산업은행을 이끄는 이동걸 회장의 강력한 요구에 따른 결과다.

"87년 노사체제가 문제" 지적도 

정승국 중앙승가대 교수(사회복지학)는 "한국 노동시장의 큰 문제는 한계에 다다른 1987년 체제에 기반을 둔 기존 노사 구조를 개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며 "공장 현장에 가면 고임금, 연공서열제로 신규 채용을 못 해 젊은 직원의 불만이 속출하는 등 세대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최근 대권 주자로 꼽히는 윤석열(61) 전 검찰총장에게 노동시장 문제를 자문한 바 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