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론

“북이 남한 혁명통일 포기” 해석은 정세 오판이다

중앙일보

입력 2021.06.15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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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북한이 지난 1월 치른 제8차 노동당 대회에서 당 규약을 개정한 데 대해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남한 혁명통일론’을 버렸다고 해석했다. 그는 북한이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이라는 표현을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발전을 실현한다’로 바꾸었고, ‘우리 민족끼리’ 대신 ‘우리 국가 제일주의’를 내세웠다는 사실을 판단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견강부회다. 좌파 세력은 이런 아전인수식 해석을 지렛대로 삼아 북한이 원하는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을 띄우고 있어 우려스럽다.

좌파, 노동당 규약 개정 내용 왜곡
김정은 전략 의도 제대로 읽어야

지난 2004년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김정일 위원장이 북핵이라는 무모한 선택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북한은 이후 6차례 핵실험을 강행하고 핵무장 국가의 완성을 선언했다. 북한이 2018년 4월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2017년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실험 성공에 따라 ‘핵 국가 완성’을 선언하면서 핵실험의 불필요성을 천명하자, 남쪽의 햇볕 정책론자들은 북한이 핵 포기를 선언했다고 왜곡·과장·홍보하는 역할을 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지난해 8월 국회 보고에서 ‘김여정 위임 통치설’을 제기했지만, 이번 당 대회에서 김여정은 기존 직책이던 정치국 후보위원에서도 빠졌고 당 부장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처럼 햇볕론자들이 계속 오판하는 가운데 북한은 6·15 남북정상회담 20주년 다음날이던 지난해 6월 16일 개성 연락 사무소를 폭파함으로써 남측을 무시하고 조롱했다.

좌파의 곡해와 달리 8차 당 대회의 실질적 의미는 남북한 체제 경쟁에서 김정은이 절반의 승리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 절반의 승리란 군사·외교적 승리이고 남은 과제는 경제·문화적 문제와 통일 문제로 상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북한은 2018년 핵무장 국가 완성을 선언했고, 2018년 6·12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6·19 북·중 베이징 정상회담 등의 성과를 기반으로 스스로 전략 국가임을 자처했다. 이에 따라 이번 8차 당 대회 규약 개정에서는 체제 자신감에 기초해 전체적으로 과거의 거친 표현들을 현대적 표현으로 수정한 것이 본질이다. ‘우리 국가 제일주의’도 2012년 집권한 김정은이 북한식 사회주의국가 체제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 민족 제일주의와 충돌하는 개념도 아니다.

당 규약 개정 논란 중에 중요한 문제는 북한 주도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햇볕론자들이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다. 북한은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선반도의 안전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하며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투쟁한다’고 명시했다. 강력한 국방력이란 표현도 핵 무력을 순화해서 표현한 것일 뿐이다.

2018년 이후 한반도 정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이 핵보유국, 즉 전략 국가를 자처하고 있는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수우파는 20세기 구 냉전시대 반공·반북주의에 기초한 ‘북한 체제 붕괴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진보좌파는 20년 전 탈냉전시대에나 부분적으로 통했던 햇볕정책의 변종인 북한의 ‘남한혁명 포기론’으로 정세 오판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금 동아시아 정세는 미·중 신냉전 시대가 심화하면서 대만 충돌론이 부상하고, 한반도 정세도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북한의 ‘남한혁명 포기론’을 내세워 한반도 정세가 엄중한 시점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철없는 불장난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략적 이해에 따라 북한의 현실과 전략을 오판하게 만들고 국가안보를 위기에 빠뜨리는 행위는 백해무익할 뿐이다.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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