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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회장’이 말렸던 압구정 그 백화점, 20조 기업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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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현대백화점그룹이 15일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사진은 1985년 12월 개장 당시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을 둘러보고 있는 고 정주영(가운데) 현대그룹 창업자와 정몽근(왼쪽)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이다. [사진 현대백화점그룹]

현대백화점그룹이 15일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사진은 1985년 12월 개장 당시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을 둘러보고 있는 고 정주영(가운데) 현대그룹 창업자와 정몽근(왼쪽)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이다. [사진 현대백화점그룹]

한 해 매출 8000만원에서 20조원으로, 공사장 함바집에서 여의도 더현대서울까지….

현대백화점그룹 창립 50주년 #정몽근, 금강개발 ‘함바집’서 변신 #환란 때 공격적 출점 역발상 적중 #정지선, 패션·가구로 사세 더 확장 #“뷰티·헬스 더해 2030년 매출 40조”

15일로 창립 50주년을 맞은 현대백화점의 과거와 현재다. 현대백화점그룹은 1971년 설립된 금강개발산업이 모태다. 금강개발산업은 현대건설 공사장 부근에서 근로자의 유니폼이나 안전모, 그리고 식사를 제공하는 사실상의 함바집(건설현장의 간이 식당) 같은 회사였다. 하지만 현재는 서울 부촌을 상징하는 압구정동과 경기 판교, 여의도 등에 백화점을 보유한 재계 2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2020년 기준).

현대백화점그룹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현대백화점그룹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압구정동에 현대백화점이 처음 들어선 건 1980년대 초다. 정몽근(79)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은 당시 부친인 ‘왕(王)회장’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에게 백화점을 짓자고 처음 말을 꺼냈다. 정주영 회장은 배나무밭과 아파트만 덩그러니 있을 뿐 시내와 멀리 떨어진 압구정동에 백화점을 짓자는 아들을 완곡하게 말렸다고 한다. 하지만 정몽근 명예회장은 일본 도쿄에 있던 다카시마야 백화점 후다코다마가와점의 성공을 예를 들며 부친을 설득했다. 후다코다마가와점 역시 허허벌판에 백화점을 짓는다는 우려가 컸지만 도시가 확장되면서 성공사를 써내려간 백화점이다.

올 2월 서울 여의도에 문을 연 더현대서울 내관 모습. [사진 현대백화점그룹]

올 2월 서울 여의도에 문을 연 더현대서울 내관 모습. [사진 현대백화점그룹]

왕회장을 설득해 마침내 백화점업에 진출한 정몽근 명예회장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당시에도 공격적인 출점 전략을 구사했다. 전국 108개 백화점 점포 중 45곳이 문을 닫던 시절의 역발상이었다. 그는 1997년 서울 천호점을 시작으로 이듬해엔 부도 위기에 놓인 울산 주리원백화점(현 울산점)과 신촌 그레이스백화점(현 신촌점)을 인수했다.

경쟁사들이 출점을 자제하던 2000년대에 들어서도 미아점(2001년), 목동점(2002년), 중동점(2003년)을 연이어 열었다. 그는 ‘고객 제일 경영’을 내세웠다. 대표적인 게 ‘주차장 제일론’이다. ‘서비스나 매장 환경 못지않게 가장 중요한 시설은 주차장’이란 믿음에서다. 서울 목동점과 미아점 주차장 진입로 폭이 다른 백화점보다 훨씬 넓은 것도 여성 소비자들이 많이 방문하는 점포란 걸 고려한 것이다.

정지선 회장(가운데).

정지선 회장(가운데).

정몽근 회장의 뒤를 이은 장남 정지선(49)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재계에서 ‘조용한 2세 경영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회사 안에서 그는 좌고우면하지 않는 ‘뚝심 경영’과 ‘사람 중심 경영’을 앞세워왔다. 정지선 회장은 2010년 ‘비전 2020’을 발표하고 과감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세를 키웠다. 2010년 이후 출점한 백화점만 6개, 아웃렛은 8개에 달한다. 2012년 여성복 1위 기업 ‘한섬’과 가구업체인 ‘리바트(현 현대리바트)’를 잇달아 인수해 사업 영역을 유통에서 패션과 리빙·인테리어로 확장했다. 2010년 이후 추진한 M&A만 10여 건이 넘는다. 또 면세점 사업에도 진출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연초에 2030년까지 매출을 40조원으로 늘리겠다는 ‘비전 2030’을 내놨다. 유통, 패션, 리빙·인테리어로 구성한 3대 핵심사업에, 뷰티·헬스케어·바이오·친환경 사업을 더해 덩치도 키우고 경쟁력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현대백화점그룹 앞에 놓인 과제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게 이커머스 시장에 대한 대응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의 온라인 거래액은 3조5000억원 정도(2020년 기준)다. 이미 이 시장에서는 네이버·쿠팡 등이 연 거래액 20조원을 돌파하며 치고 나가고 있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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