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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신 판치는 ‘펜트하우스’…이번엔 “흑인으로서 불쾌” 논란

중앙일보

입력

‘펜트하우스3’에서 죽은 로건 리의 친형으로 등장한 알렉스 리(박은석). 레게머리와 문신 등이 흑인을 비하했다며 문화적 전유 논란이 일었다. [사진 SBS]

‘펜트하우스3’에서 죽은 로건 리의 친형으로 등장한 알렉스 리(박은석). 레게머리와 문신 등이 흑인을 비하했다며 문화적 전유 논란이 일었다. [사진 SBS]

SBS 금요드라마 ‘펜트하우스3’이 ‘문화적 전유’ 논란을 빚고 있다. 지난 11일 2회 방송에 등장한 알렉스 리(박은석) 관련 에피소드가 문제가 됐다. 레게머리와 문신 등 파격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자신이 죽은 로건 리(박은석)의 친형이라며 심수련(이지아)에게 그의 죽음과 관련된 비밀을 캐물었다. 시즌 1에서 체육 교사 구호동으로 분해 청아예고에 잠입한 데 이어 형 알렉스에 이르기까지 로건의 세 번째 변신에 시청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시즌 2에서 심수련과 똑 닮은 나애교(이지아)가 등장해 한 차례 반전을 꾀했던 터라 그 황당함은 더욱 컸다.

죽음 맞은 로건 리, 세번째 캐릭터로 등장 #레게머리·문신 분장으로 문화적 전유 비판 #제작진 “특정 인종·문화 희화화 의도 없어”

“이 정도 막장, 계속 볼건지 실험하냐”

국내에서는 “이제 코미디로 장르를 전환한 것 같다” “이렇게까지 막장으로 가도 계속 볼 건지 실험하는 기분” 등의 댓글이 대부분이었지만 해외 반응은 달랐다. 한국 드라마 팬들이 모인 커뮤니티는 물론 박은석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찾아가 “무례하고 불쾌하다” “흑인으로서 모욕감을 느꼈다”며 해당 캐릭터를 수정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레게머리 등 흑인의 정체성이 담긴 스타일을 맥락 없이 사용했으며 그것이 마치 갱스터의 상징인 것처럼 오용됐다는 이유에서다. ‘문화적 전유’는 한 문화집단이 다른 문화집단 고유의 문화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 특히 그 문화에 대한 이해나 존중 없이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13일 박은석이 틱톡에 영어로 올린 사과문. [박은석 틱톡 캡처]

13일 박은석이 틱톡에 영어로 올린 사과문. [박은석 틱톡 캡처]

논란이 커지자 박은석은 13일 틱톡에 영어 게시물을 올려 입장을 표명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회에 해를 끼치거나, 조롱하거나, 무례하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며 “캐릭터의 외모로 인해 상처받은 분들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일곱살 때 가족들과 함께 미국에 이민을 떠나 스물두살에 한국에 돌아온 그는 “조롱보다는 문화적 존경을 담았으나 잘못된 시도였다”며 “나 역시 소수자로서 이 문제에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했다. 의식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개연성 사라진 탓에 더 희화화로 느껴져”

‘펜트하우스’에서 자산가로 등장한 로건 리(박은석). [사진 SBS]

‘펜트하우스’에서 자산가로 등장한 로건 리(박은석). [사진 SBS]

동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해 체육교사 구호동(박은석)으로 변장했다. [사진 SBS]

동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해 체육교사 구호동(박은석)으로 변장했다. [사진 SBS]

전문가들은 ‘펜트하우스’에서 등장인물을 쉽게 죽이고 다시 살려내는 일이 반복되는 것과 맞물려 대중의 반감이 더욱 커졌다고 분석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시즌 2에서 가장 중요하게 사용된 장치가 심수련과 나애교의 ‘쌍둥이’ 코드인데 시즌 3 시작부터 똑같은 코드를 들고나온 것은 작가로서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로건은 이미 구호동으로 한 차례 변신을 꾀했기 때문에 알렉스는 외형부터 극단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하지만 이야기의 개연성이 사라지고 시청자에게 우스운 장면으로 다가오면서 더욱 희화화로 느껴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순옥 작가는 앞서 SBS를 통해 “‘순옥적 허용’은 개연성의 부족함 때문에 생긴 말이지 않나 싶다. 인정한다”며 “많은 사건이 터지고 급작스럽게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다 보니 캐릭터의 감정이 제대로 짚어지지 않고 죽었던 사람이 좀비처럼 살아나면서 시청자들도 혼란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절대 살리지 말아야지 결심하다가도 저도 모르게 새로운 사건을 터트리거나 슬슬 살아날 준비를 하고 있다”며 “시청자들께 감사하고 부끄럽다”고 덧붙였다. 이번 논란에 대해 제작진은 14일 “특정 인종이나 문화를 희화화할 의도는 없었다”며 짧게 입장을 밝혔다.

“비하 의도 없어도 오해…재발 방지해야” 

2017년 콘서트에서 흑인 분장을 하고 브루노 마스의 ‘업타운 펑크’를 부른 마마무. [SNS 캡처]

2017년 콘서트에서 흑인 분장을 하고 브루노 마스의 ‘업타운 펑크’를 부른 마마무. [SNS 캡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등을 통해 해외에서도 실시간으로 국내 드라마를 볼 수 있고, K팝 팬덤이 전 세계로 확장되면서 해외에서 먼저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도 잦아졌다. 2017년 걸그룹 마마무가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미국 팝스타 브루노 마스의 ‘업타운 펑크’를 불렀다가 사과한 ‘블랙페이스’ 논란이 대표적이다. 걸그룹 블랙핑크는 지난해 발표한 ‘하우 유 라이크 댓’ 뮤직비디오에서 힌두교 신상처럼 보이는 소품을 바닥에 놓았다는 지적을 받고 해당 장면을 삭제하기도 했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해외에서도 팝스타 케이티 페리가 ‘다크 호스’ 뮤직비디오에서 고대 이집트 여왕 차림으로 등장했는데 옆에서 시중드는 남성이 이슬람을 상징하는 목걸이를 차용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에이브릴 라빈의 ‘헬로 키티’ 뮤직비디오에서는 기계적으로 춤추는 여성 백댄서의 모습이 아시아 여성에 대한 비하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미국에서는 1960년대 이후 중단된 ‘블랙페이스’가 인종차별적 표현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한국에서는 문화적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며 “비하의 의도가 없다 해도 오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상호 이해와 교류를 통해 재발을 방지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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