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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41화. 삼총사

중앙일보

입력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을 위하여

명예의 결투를 펼치는 매력적인 스토리 덕분에 『삼총사』를 소재로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가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사진은 영화 '삼총사'(2011)의 한 장면.

명예의 결투를 펼치는 매력적인 스토리 덕분에 『삼총사』를 소재로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가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사진은 영화 '삼총사'(2011)의 한 장면.

『삼총사』는 프랑스를 무대로 국왕을 지키는 총사대의 활약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실존 인물이기도 한 프랑스의 귀족, 다르타냥을 주역으로 다채로운 모험을 펼쳐내고 있어요. 총사대에 들어간 다르타냥 앞에 수많은 시련이 다가오지만, 동료인 삼총사와 함께 힘을 합쳐 극복하죠. 믿음직한 아토스, 힘세고 유쾌한 포르토스, 그리고 미남에 화려한 검기를 뽐내는 아라미스. 하나는 모두를 위하여, 모두는 하나를 위하여(All for One, One for All)라는 표어와 함께 활동하는 삼총사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기 만점이죠.

다르타냥과 삼총사는 동료로서 멋진 활약을 거듭하지만, 사실 그들의 첫 만남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아니 최악이었어요. 왜냐하면, 이들의 이야기는 결투로 시작되었기 때문이죠. 다르타냥이 삼총사 모두와 결투 약속을 한 것입니다. 총사대의 앙숙인 근위대가 나타나면서 결투는 흐지부지되었지만, 그대로 진행되었다면 삼총사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다르타냥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삼총사 각자와 전부 결투해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얼마 되지 않으니까요. 물론, 삼총사 중 한 명이 죽더라도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이야기의 시작과 함께 끝나버릴 수도 있었던 결투 상황. 그것은 지극히 사소한 이유로 진행되었습니다. 악당을 발견하고 급히 달려가던 다르타냥이 삼총사 각자와 부딪힌 것뿐이죠. 다르타냥은 급한 나머지 대충 사과하고 떠나려 했지만, 당연히 삼총사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의를 모르는 친구” 이런 말을 들은 다르타냥도 화를 내고 말다툼이 벌어졌고 결투를 선언하죠. 그들은 진지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목숨을 걸고 대결하기로 했으니까요. 생각할수록 어이없지만, 『삼총사』를 쓴 뒤마도 이 이야기를 본 사람들도 우스갯소리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삼총사』의 무대인 17세기, 그리고 책이 나온 19세기 중반에도 ‘사소한 이유의 결투’가 수없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선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상대 정치가를 결투로 죽여 버리는 바람에 선거에 나가지 못한 일도 있었고, 프랑스의 작가 모파상처럼 십 수 번의 결투를 거듭한 사람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모파상은 “편집자에게 필요한 건 오직 결투 능력뿐”이라며, 기자나 편집자의 결투를 권하고 입회인으로 참석하기도 했죠. 결투에는 목숨이 걸려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결투가 거듭된 것은 결투가 ‘목숨보다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는 행위’이기 때문이죠. 결투에 거는 것은 시대와 장소, 상황에 따라서 다릅니다. 몇몇 판타지 이야기처럼 ‘세상의 운명을 건 결투’도 있지만, 때로는 다른 이들에겐 매우 하찮아 보이는 무언가를 위해 결투를 벌일 수도 있습니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죠.

어떤 이들은 돈이나 물질을 위해서, 또는 사랑하는 사람을 얻고자 결투를 벌이지만, 그 대상은 실존하는 어떤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가령 『삼총사』의 등장인물이나 19세기의 모파상 같은 이들은 명예를 위해 싸웠죠. 그것도 남에게 인정받는 평판 같은 게 아니라, 나 자신이 고결하다고 믿는 무언가로서의 명예 말이죠. 중세를 거치면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예기치 못한 일로 죽는 일이 적지 않았는데, 그만큼 쉽게 사라지는 목숨보다도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명예가 훼손된다고 생각한 일, 특히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했을 때 절대로 참지 않았죠. 어떤 일이 모욕인가는 사람에 따라 달랐습니다. 『삼총사』에서처럼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투할 수도 있고, 모파상처럼 작품에 대한 비판을 참지 못할 수도 있었죠. 열차에서 서로 마주 앉았는데 상대가 앞자리, 즉 자기 옆에 발을 올렸다는 이유로 결투를 벌이기도 했으니까요.

명예의 결투가 항상 나쁜 모습만 보였던 것은 아닙니다. 사소한 이유로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 명예의 결투에는 사실 ‘목숨을 걸더라도 소중한 가치를 지킨다’는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승패와 관계없이 ‘명예를 지키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는 명성과 함께 고결하고 믿음직하다는 인식을 받게 돼요. 『삼총사』에서 네 사람이 화해하고 더 없는 친구가 된 것처럼, 실제 역사에서도 결투를 마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화해하고 절친이 되었다고 합니다. 죽음을 앞에 두면 다른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명예를 위해 죽는다’는 공통점을 느끼기 때문이죠.

“상처 입은 몸은 치료술로 고칠 수 있지만, 상처 입은 명예는 칼로만 고칠 수 있다(Wounded fresh cured by heal, wounded honor cured by steel).” 이러한 덕목으로 이어진 명예의 결투. 현대에는 사라졌지만 『삼총사』를 비롯한 여러 작품, 그리고 판타지라는 낭만 속에서 멋지게 그려지는 것은 거기에 현대인조차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글=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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