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나라냐’던 진영과 ‘이것도 나라냐’란 진영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한 철학자가 말했었다. 김학의·이용구 두 법무차관의 진퇴를 보며 절감한다.
김학의 건과 유사한 이용구 진퇴 #경찰 출신도 "경찰 발표 신뢰 못해" #"차관이라 괜찮다" 여겼다면 오판
둘 다 요직(각각 검찰총장·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에 거명됐고, 결격 사유가 있는데도 법무차관으로 기용됐다가 추문 끝에 물러났다. 모두 경찰이 기이하게 행동하고 해명했다. 한 번은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갈등하는 방식으로, 한 번은 정권과 함께하는 방식으로다.
우선 김 전 차관이다. 그가 박근혜 정부의 초대 법무차관으로 거론되자 성 접대 동영상 설이 제기됐고 민정수석실에서 이를 확인하려 했으나 경찰은 “내사·수사하고 있지 않다”고 부인했다. 실상 경찰은 동영상을 봤고 관련 진술을 받았으며 언제든 입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용구 전 차관은 공수처장 후보로 거명되던 때, 술에 취해 택시기사를 폭행했다. 추미애 당시 법무장관의 정책보좌관이 “안 좋은 소문이 돈다”고 연락하자 이 전 차관은 폭행 건을 털어놓으며 공수처장 후보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고 한다. 추 전 장관이 최근 “무혐의로 처리됐다고 지나가듯 이야기했다”는 거로 봐서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 전 차관은 곧바로 법무차관으로 발탁됐다. 청와대 검증 과정에서 “택시기사와 합의해 경찰에서 내사종결 처분을 받아 해결됐다”는 취지로 해명했다는데 청와대가 받아들였다. 실제론 이 전 차관이 택시기사에게 합의금 조로 1000만원을 건넸고 택시기사는 폭행 영상을 삭제했다. 경찰은 택시기사 영상을 보곤 “안 본 거로 하자”고 할 정도로 ‘봐주기’ 수사를 했다. 경찰은 지금도 상부의 외압이 없었고 상부에 보고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이해 가지 않는 상황이다. 경찰대학장 출신의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도 “갑갑하다”고 했다. 그와의 통화다.
- 경찰이 석연치 않게 움직였다.
- “이 전 차관 문제가 드러났을 때 김창룡 경찰청장에게 ‘재수사를 지시하라.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분명하게 하고 가자’고 요구했는데 못 하더라. 그땐 청와대 눈치를 봐서라고 생각했다. 지금 보니 이런 부분(경찰 봐주기)이 나오니 애써 외면한 게 아닌가 싶다. 경찰의 섭리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그때그때 바로바로 보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니라고 오리발을 내미니 전혀 신뢰할 수 없다.”
- 결국 공수처장은 안 되지만 법무차관은 된다고 본 것도 기이하다.
- “덮일 거라고 본 거다. 당시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공수처장은 물 건너갔겠다, 인사청문회도 없는 차관이니 이슈가 되겠나 했을 수 있다.”
김 전 차관 때 민정수석이었던 같은 당의 곽상도 의원도 “(법무부에선) 내사 종결됐다고 하니 더는 문제가 안 생기겠다고 판단하고 차관으로 추천한 거라고 보는 게 맞을 거다”고 했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두 유력 인사가 남자 주인공의 출생 비밀을 공유하며 나눈 대화다.
“몇 명이나 알지?”
“우리까지 8명.”
“그럼 비밀(secret)이 아닐세. 정보(information)일 뿐이지. 지금 아는 사람이 몇 명 안 된다지만, 곧 수백 명은 알게 될 거야.”
이 전 차관은 폭행 사건 후 57명에게 전화했다고 한다. 정·관계를 포함해서다. 서초경찰서에서도 생활안전계·형사계가 알았고 정보통도 눈치챘을 것이다. 언제든 말이 날 수 있는 구조였다. 현 정권은 그냥 질렀다. 더군다나 김 전 차관 사건 재수사를 막후 조정하고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징계 과정에 관여하게 될, 눈에 띄는 차관으로다. 그런데도 덮일 수 있다고 봤다면 권력의 나태함 또는 오만함이다. “권력자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므로 일반적으로 반대에 대한 걱정 없이 자신의 단기 이익에 집중한다”(데이비드 데스테노)는 오류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론 김 전 차관은 5일 만에, 이 전 차관은 6개월여 만에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