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권력으로 덮을 수 있다고 믿었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강일구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장이 서울경찰청에서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택시기사 폭행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일구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장이 서울경찰청에서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택시기사 폭행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것이 나라냐’던 진영과 ‘이것도 나라냐’란 진영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한 철학자가 말했었다. 김학의·이용구 두 법무차관의 진퇴를 보며 절감한다.

김학의 건과 유사한 이용구 진퇴 #경찰 출신도 "경찰 발표 신뢰 못해" #"차관이라 괜찮다" 여겼다면 오판

둘 다 요직(각각 검찰총장·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에 거명됐고, 결격 사유가 있는데도 법무차관으로 기용됐다가 추문 끝에 물러났다. 모두 경찰이 기이하게 행동하고 해명했다. 한 번은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갈등하는 방식으로, 한 번은 정권과 함께하는 방식으로다.

우선 김 전 차관이다. 그가 박근혜 정부의 초대 법무차관으로 거론되자 성 접대 동영상 설이 제기됐고 민정수석실에서 이를 확인하려 했으나 경찰은 “내사·수사하고 있지 않다”고 부인했다. 실상 경찰은 동영상을 봤고 관련 진술을 받았으며 언제든 입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용구 전 차관은 공수처장 후보로 거명되던 때, 술에 취해 택시기사를 폭행했다. 추미애 당시 법무장관의 정책보좌관이 “안 좋은 소문이 돈다”고 연락하자 이 전 차관은 폭행 건을 털어놓으며 공수처장 후보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고 한다. 추 전 장관이 최근 “무혐의로 처리됐다고 지나가듯 이야기했다”는 거로 봐서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 전 차관은 곧바로 법무차관으로 발탁됐다. 청와대 검증 과정에서 “택시기사와 합의해 경찰에서 내사종결 처분을 받아 해결됐다”는 취지로 해명했다는데 청와대가 받아들였다. 실제론 이 전 차관이 택시기사에게 합의금 조로 1000만원을 건넸고 택시기사는 폭행 영상을 삭제했다. 경찰은 택시기사 영상을 보곤 “안 본 거로 하자”고 할 정도로 ‘봐주기’ 수사를 했다. 경찰은 지금도 상부의 외압이 없었고 상부에 보고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이해 가지 않는 상황이다. 경찰대학장 출신의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도 “갑갑하다”고 했다. 그와의 통화다.

경찰이 석연치 않게 움직였다.
“이 전 차관 문제가 드러났을 때 김창룡 경찰청장에게 ‘재수사를 지시하라.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분명하게 하고 가자’고 요구했는데 못 하더라. 그땐 청와대 눈치를 봐서라고 생각했다. 지금 보니 이런 부분(경찰 봐주기)이 나오니 애써 외면한 게 아닌가 싶다. 경찰의 섭리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그때그때 바로바로 보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니라고 오리발을 내미니 전혀 신뢰할 수 없다.”
결국 공수처장은 안 되지만 법무차관은 된다고 본 것도 기이하다.
“덮일 거라고 본 거다. 당시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공수처장은 물 건너갔겠다, 인사청문회도 없는 차관이니 이슈가 되겠나 했을 수 있다.”

김 전 차관 때 민정수석이었던 같은 당의 곽상도 의원도 “(법무부에선) 내사 종결됐다고 하니 더는 문제가 안 생기겠다고 판단하고 차관으로 추천한 거라고 보는 게 맞을 거다”고 했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두 유력 인사가 남자 주인공의 출생 비밀을 공유하며 나눈 대화다.

“몇 명이나 알지?”

“우리까지 8명.”

“그럼 비밀(secret)이 아닐세. 정보(information)일 뿐이지. 지금 아는 사람이 몇 명 안 된다지만, 곧 수백 명은 알게 될 거야.”

이 전 차관은 폭행 사건 후 57명에게 전화했다고 한다. 정·관계를 포함해서다. 서초경찰서에서도 생활안전계·형사계가 알았고 정보통도 눈치챘을 것이다. 언제든 말이 날 수 있는 구조였다. 현 정권은 그냥 질렀다. 더군다나 김 전 차관 사건 재수사를 막후 조정하고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징계 과정에 관여하게 될, 눈에 띄는 차관으로다. 그런데도 덮일 수 있다고 봤다면 권력의 나태함 또는 오만함이다. “권력자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므로 일반적으로 반대에 대한 걱정 없이 자신의 단기 이익에 집중한다”(데이비드 데스테노)는 오류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론 김 전 차관은 5일 만에, 이 전 차관은 6개월여 만에 물러났다.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