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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죽어도 CEO 처벌 사각” 지적에…말 못 꺼내는 경영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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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학동 건물 붕괴 사고 현장의 13일 모습. [뉴시스]

광주광역시 학동 건물 붕괴 사고 현장의 13일 모습. [뉴시스]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광역시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건물 붕괴 사고(9일)를 계기로 정치권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강화하는 내용의 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사망자 발생 사고가 일어났을 때 사업주와 최고경영자(CEO)를 구속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를 완화하는 쪽으로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경영계로선 악재를 만난 셈이다.

광주 재개발 건물 붕괴 계기 #중대재해법 강화 움직임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13일 “2년 전 서울 잠원동에서 철거 중인 건물이 무너졌는데,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아프게 자문한다”며 “정부가 추진 중인 대형 참사 공사장 전반에 형사 책임을 묻는 제도가 더 실효적으로 마련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밝힌 ‘형사 책임을 묻는 제도’ 중엔 중대재해법이 포함된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11일 광주 사고 현장을 방문해 “관련 규정 개정을 직접 챙길 것”이라며 “국회에서 법적 보완 작업을 체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중대재해법에 대한 보완은 직원이 다치거나 숨지는 산업재해뿐 아니라, 일반 시민 피해에 대한 책임 범위도 확대해 CEO를 처벌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법은 ‘공중이용시설의 설계·설치·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한 시민 재해’에 대해 사업주 등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데, 이번 광주 사고에서 무너진 상가를 공중이용시설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 때문이다. 보통 사무용 건축물, 공연장, 학원, 예식장 등이 공중이용시설로 분류된다. 그래서 이번 사고에 대해 중대재해법이 적용된다 하더라도 원청 회사인 현대산업개발 경영진 등 사업주를 처벌하긴 어려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건물붕괴 사고를 유발한 철거는 현재 중대재해법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법 제정 과정에서 사각지대가 발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처벌 범위 확대 추진되나

강 의원은 “사업주가 포괄적인 안전보건 의무를 지도록 하는 법 개정이 시급히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산업재해예방TF 단장인 김영배 의원도 “붕괴 징후를 느낀 공사장 작업자들은 황급히 대피했지만, 주변 통행자와 통행 차량 안전조치는 없었다”며 보완 입법 의지를 내비쳤다. 강 의원 등은 해당 법안에 대해 조만간 강화한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사업주를 처벌하는 사고 범위뿐만 아니라, 현재 ‘징역 1년 이상’으로 규정돼있는 처벌 강도가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광주광역시 학동 건물 붕괴 사고 희생자 합동 분향소. [뉴스1]

광주광역시 학동 건물 붕괴 사고 희생자 합동 분향소. [뉴스1]

“법 완화 분위기 물거품”

중대재해법에 특히 앞장서 반대해온 중소기업계를 포함한 경영계는 반박 의견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 경영계 관계자는 “올해 들어 현 정부가 경영계 친화 행보로 바뀌어 가고 있는 점에서 중대재해법 완화 기대가 커졌는데, 이번 광주 사고를 계기로 물거품이 될까 우려하는 분위기”라며 “현재로썬 비판을 감내해가면서 사고 수습 뒤의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경영계가 그동안 중대재해법에 대해 반박하는 입장이 바뀐 것은 아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이 법안 제정 당시 “사고가 일어났을 땐 수습과 보상이 중요한데, 99%의 중소기업이 사주가 대표를 겸하고 있는 상황에서 구속이 되면 사고 수습도 안 되고 기업이 도산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번 사고와 관련 있는 건설업계 관계자도 “CEO가 현장 곳곳을 모두 확인할 수 없는 현실 요건에 따라 국가인증을 받은 안전기술자를 현장에 배치하고 있는데, 중대재해 책임까지 CEO에게 묻는 것은 과도하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광주 사고 이후 이 같은 주장을 꺼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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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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