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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라고 다 서로 물고 뜯나…새로운 여성서사의 등장 ‘마인’

중앙일보

입력

드라마 ‘마인’에서 동서지간으로 호흡을 맞춘 김서형과 이보영. 각각 효원그룹 첫째 며느리 정서현 역과 둘째 며느리 서희수 역을 맡았다. [사진 tvN]

드라마 ‘마인’에서 동서지간으로 호흡을 맞춘 김서형과 이보영. 각각 효원그룹 첫째 며느리 정서현 역과 둘째 며느리 서희수 역을 맡았다. [사진 tvN]

“하준이 손 잡고 효원가 그 높은 벽 넘을 겁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내가 곁에 있을게.”

동서지간으로 만났지만 경쟁 대신 조력 #김서형-이보영 등 다양한 워맨스 보여줘 #계급 비틀어 ‘하녀’ ‘기생충’ 같은 매력도

tvN 토일드라마 ‘마인’에 등장하는 대사다. 얼핏 보면 사랑하는 연인 혹은 부부간의 대화 같지만 두 사람은 다름 아닌 동서지간. 극 중 재벌가 효원그룹의 둘째 며느리 서희수(이보영)가 자신을 속인 남편 한지용(이현욱)과 이혼하고 자신이 6년간 키운 아들 한하준(정현준)을 데리고 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첫째 며느리 정서현(김서형)은 말리기는커녕 “내가 동서 편인 걸 잊지 마. 뭐든 할 수 있게 해주겠다”며 후방 지원을 약속한다. 앞에선 웃어도 뒤돌아서면 적인 재벌가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여성 간의 연대를 보여주면서 두 자릿수 시청률 돌파를 앞두고 있다.

“세상의 편견에서 벗어나 진짜 나의 것을 찾아가는 강인한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작품 설명처럼 이들은 한 푼이라도 더 갖기 위해 싸우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을 나답게 만드는 것을 위해, 그것을 방해하는 사람에 맞서기 위해 싸운다. 이는 비단 팔자 좋은 재벌가 며느리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하준의 튜터로 효원가에 들어왔지만 실은 과거 아이를 낳고 버려졌던 하준의 친모 강자경(옥자연)이나 집안일을 하는 메이드로 들어와 효원의 장손 한수혁(차학연)과 사랑에 빠진 김유연(정이서) 등 주변 인물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서는 법이 없다.

바둑판처럼 공간 따라 이동하는 인물관계

여배우 출신 서희수 역을 맡은 이보영은 재벌가 며느리답지 않은 다양한 패션을 선보인다. [사진 tvN]

여배우 출신 서희수 역을 맡은 이보영은 재벌가 며느리답지 않은 다양한 패션을 선보인다. [사진 tvN]

갤러리 대표 정서현 역을 맡은 김서형은 주로 무채색 계열의 옷을 입고 나온다. [사진 tvN]

갤러리 대표 정서현 역을 맡은 김서형은 주로 무채색 계열의 옷을 입고 나온다. [사진 tvN]

이 같은 캐릭터 설정은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냈다. 각각의 인물이 상주하는 공간적 특성과 맞물려 그 성격이 더욱 도드라진다. 이를테면 정서현이 사는 공간 '카덴차'와 서희수가 사는 공간 '루바토'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갤러리 대표인 정서현의 공간은 무채색 동양화부터 과감한 색감의 팝아트 등 다채로운 작품이 걸려 있고, 여배우 출신인 서희수의 공간은 곡선이 돋보이는 노기쁨 작가의 작품이나 토템처럼 둥근 돌을 쌓아 올린 이헌정 작가의 조각품 등으로 장식돼 있다. 이나정 PD는 “비주얼 프리 프로덕션만 4개월 정도 준비했다”며 “2021년의 상류층은 어떤 것을 좋아하고 먹고 입고 쓰는지 충분히 조사해 이미지와 방향성을 정했다”고 밝혔다.

“처음 콘셉트를 잡을 때 바둑판을 떠올렸다”는 김소연 미술감독의 설명처럼 각 인물이 다른 칸으로 옮겨가면 인물 간 관계도 새롭게 변화한다. 아기를 유산한 서희수가 잠시 자신만의 안식처로 떠나자 강자경이 쫓아가 수발을 자청하며 서로의 조력자가 되고, 한수혁과 김유연은 불면증을 이유로 방을 바꿔 잠을 청하다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등 공간이 바뀔 때마다 이야기의 방향도 틀어진다. 특히 모든 층이 한꺼번에 보이는 계단실은 가장 상징적인 공간이다. 김 감독은 “한 사람은 내려오고 한 사람은 올라가면서 결국 같은 높이에서 만난다거나 다른 사람 위에 선 누군가가 또 다른 사람에게는 아래에 있는 등 인물 간의 우위를 공간적으로 표현했다”고 밝혔다.

효원그룹의 메이드로 들어와 장손과 사랑에 빠지는 김유연 역을 맡은 정이서. [사진 tvN]

효원그룹의 메이드로 들어와 장손과 사랑에 빠지는 김유연 역을 맡은 정이서. [사진 tvN]

한하준의 튜터로 들어온 강자경 역을 맡은 옥자연. 하준의 친모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사진 tvN]

한하준의 튜터로 들어온 강자경 역을 맡은 옥자연. 하준의 친모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사진 tvN]

이런 공간 구조와 이야기는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1960)나 ‘화녀’(1971)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2019)과 오버랩되기도 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확연하게 나뉜 계급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면서도 교묘하게 비틀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야기의 기본 골격은 정상적인 부부나 가족을 찾아보기 힘든 막장에 가깝지만, 효원가 식구들의 대소사를 상담해주는 엠마 수녀(예수정)의 내레이션과 부감으로 내려다보는 장면들이 맞물려 성찰적이면서도 다층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덧붙였다. 재벌가의 갑질부터 불륜,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다툼까지 다분히 클리셰에 가까운 장면이 등장해도 쉽게 넘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욕망 향해 직진 ‘품위있는 그녀’의 변주 

백미경 작가의 전작인 JTBC ‘품위있는 그녀’(2017)와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역시 재벌가를 배경으로 우아진(김희선)과 박복자(김선아)라는 여성 투톱을 앞세운 작품이지만 전개 방식은 전혀 다르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품위있는 그녀’ 속 인물들이 각자 자신의 욕망을 향해 직진했다면 ‘마인’은 전혀 손을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인물들도 서로 연대한다”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 부분”이라고 짚었다. 한회장(정동환)의 친자식들보다 더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는 첫째 며느리 정서현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판을 짜고, 둘째 며느리 서희수 역시 더 나은 수를 놓기 위해 한 보 후퇴하거나 양보하면서 치열한 두뇌 싸움을 벌인다.

한 아이를 낳고 키운 사이로 만난 두 사람. 처음엔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지만 모종의 연대감을 형성하게 된다. [사진 tvN]

한 아이를 낳고 키운 사이로 만난 두 사람. 처음엔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지만 모종의 연대감을 형성하게 된다. [사진 tvN]

효원가 등 재벌가 정신 상담을 맡고 있는 엠마 수녀(예수정). [사진 tvN]

효원가 등 재벌가 정신 상담을 맡고 있는 엠마 수녀(예수정). [사진 tvN]

16부작으로 기획된 드라마가 후반에 접어들면서 베일에 싸여 있었던 인물들의 과거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서현은 동성 연인이었던 화가 수지 최(김정화)에게 “우리 얘기를 세상에 알려도 된다”고 말하고, 엠마 수녀 역시 상담을 받으러 온 서희수에게 과거 유명한 요정에서 일했음을 고백한다. 기존의 워맨스를 변주한 또 다른 관계들이 등장하는 셈이다. 공희정 평론가는 “극 중 장애아동이 그린 그림을 모아 전시를 기획하는 등 사회에서 약자 혹은 소수자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녹아있다.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더욱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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