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임종환자 돌봄은 내몫’ 예배당 밖으로 나온 종교인

중앙일보

입력 2021.06.13 13:00

[더,오래] 이형종의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배운다(70)

고령자가 늘어나면 당연히 사망하는 사람이 대폭 늘어난다. 다사사회를 인식한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생활의 질(QOL, Quality of Life)’ 외에 ‘죽음의 질(QOD, Quality of Death)’을 논의하고 있다. QOL이란 인생의 질 또는 생활의 질로 번역되며, 인간답게 만족하며 생활하는지를 보여주는 개념이다. 그러나 사망자 수가 대폭 늘어나는 시대에 QOL보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에 초점을 두는 QOD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QOD란 일시적인 죽음을 나타내는 ‘Death’가 아니라, 죽음으로 가는 과정과 유족케어를 포함하는 ‘Dying’을 사용하여 ‘Quality of Dying’으로 표시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QOD개념은 어떻게 만족하며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종말기의 삶의 질을 의미한다. 어디에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죽는 장소와 죽는 방법을 생각하고, 지난 인생의 회고, 유언, 묘지 준비, 가족 및 지인과 커뮤니케이션 등은 QOD의 질을 높이는 대표적인 대책이다.

'다사사회'에서는 어떻게 삶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가 심각한 사회 문제다. 많은 고령자가 죽음을 앞두고 평생 살아온 의미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묻는 문제와 마주하고 있다. [사진 pixabay]

'다사사회'에서는 어떻게 삶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가 심각한 사회 문제다. 많은 고령자가 죽음을 앞두고 평생 살아온 의미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묻는 문제와 마주하고 있다. [사진 pixabay]

도대체 질 높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이러한 민감한 이슈에 대해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2010년(40개 국가)과 2015년(80개 국가) 두 차례에 걸쳐 전 세계의 ‘QOD’을 조사했다. 케어와 그 보건의료 상황, 보건 의료분야의 인력, 경제적 부담, 케어의 질, 지역사회와 관계 등 5개 영역을 조사하고 종말기 의료의 정비상태를 수치화하여 발표하였다. 세계 QOD의 조사결과를 보면, 영국, 호주, 뉴질랜드가 상위를 차지했다. 일본은 2010년 조사에서 40개 국가 중에서 23위(한국 26위)를 차지했지만, 2015년 조사에서 14위(한국 18위)로 상승했다. 아시아 국가 중에는 대만(6위), 싱가폴(12위)에 이어 3위였다.

2015년 조사에서 대만이 6위를 차지한 것은 주목할만하다. 그 배경으로는 대만에서 QOD를 높이는 대책이 일찍부터 실시되었다는 점이다. 대만은 2000년 ‘안녕완화의료조례’가 제정돼 환자가 자유의지로 종말기 의료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유럽에서 채플렌이라는 성직자(신부나 목사)가 종말기 환자의 케어를 담당하고 있지만, 대만에서는 풍부한 경험을 쌓은 승려(임상종교사)가 병동과 자택에서 의료인과 협력해 간호를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만에서는 죽음 방식을 포함한 삶의 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다사사회에서 행복도를 높이기 위한 QOD 대책

다사사회에서는 어떻게 삶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실제로 완화의료, 재택의료, 고령자시설 등 ‘노병사(老病死)’와 밀접한 현장에서 다양한 상실 체험이 이뤄지고 있다. 다사사회에서 많은 고령자는 신체적 고통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 즉 죽음을 앞두고 평생 살아온 의미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묻는 문제와 마주하고 있다.

‘내가 왜 이렇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을 마주할 때 큰 불안과 고뇌가 따른다. 그러나 의료 복지 분야의 전문가는 죽음을 앞둔 환자의 심리적 불안을 케어할 수 없다. 또 이런 질문에 대해 과학적인 답변도 제시할 수 없다. 과학적 사고로 생활해온 사람에게 홀로 종말기에 인생과 죽음의 철학적 질문을 마주하기에는 너무 힘들다. 종말기를 맞이한 사람은 고통·불안·고독·이별의 슬픔과 비통, 죽음의 공포 등 복잡한 감정을 스스로 받아들이며 감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그 사람다운 최후를 실현하도록 의료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QOD를 의식하고, 사회적으로 지원해주는 대책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즉 유럽의 채플렌과 같이 삶과 죽음의 문제를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종교인이 의료와 복지 영역의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채플렌은 주로 유럽과 미국 등 기독교 문화권의 병원 등 공공장소에서 환자의 심리케어를 제공하기 위해 전문적 실습을 받은 종교인을 의미한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병동 외에 복지시설, 교육기관, 경찰과 소방서, 군대와 교도소 등 다양한 공공장소에서 고용되어 있는 종교인 신분의 전문직이다.

임상종교사는 지역사회, 복지시설 등 공공장소에서 심리케어를 제공하는 종교인이다. 특정 종교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복리를 위해 활동한다. [사진 unsplash]

임상종교사는 지역사회, 복지시설 등 공공장소에서 심리케어를 제공하는 종교인이다. 특정 종교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복리를 위해 활동한다. [사진 unsplash]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절, 신사, 교회 등 종교시설 이외의 장소에서 성직자가 활동하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최근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 공공장소에서 생사의 문제와 마주하는 종교인을 요청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따라 2018년 3월 유럽의 채플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임상종교사(臨床宗敎師)’라는 직업이 탄생했다.

(사)일본임상종교사회가 임상종교사 자격을 인증하고 있다. 임상종교사란 재해지역, 지역사회, 의료 복지시설 등 공공장소에서 심리케어를 제공하는 종교인을 말한다. (사)일본스피리츄얼케어가 인증하는 ‘스피리츄얼케어사’는 특정 직업의 종사자와 종교인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임상종교사는 반드시 종교인 출신을 전제하고 있다.

원래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발생을 계기로 처음으로 도호쿠대학(東北大學)에서 심리케어 자격교육과정이 시작되었고, 그 후 류코쿠대학(龍谷大学), 쓰루미대학(鶴見大学), 고야산대학(高野山大学), 무사시노대학(武蔵野大学) 등 여러 대학도 교육과정을 운영해왔다. 2016년 심리케어 자격과정을 운영하는 기관들이 (사)일본임상종교사회를 창설하였다. 일본임상종교사회는 임상종교사가 높은 윤리성을 기반으로 양질의 케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임상종교사 교육 프로그램을 갖춘 교육기관과 협력해 자격인증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사)일본임상종교사회는 임상종교사의 자격인증을 위한 명확한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종교인 신분으로 소정의 교육과정 수료 증명, 기타 몇 가지 요건을 엄격하게 심사한 후에 임상종교사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자격과정은 3개월에 걸쳐 집합교육과 워크숍, 병원과 보건시설에서 실습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육기관은 윤리, 종교에 관한 기초강의(10시간), 스피리츄얼케어와 슬픔케어에 관한 전문강의(10시간), 공공장소에서 실습(30시간), 협회에 등록된 연수지도자가 담당하는 실습(20시간) 등으로 교육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협회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자격제도를 만들 당시 매년 80~100명 정도의 자격인증자를 선발해 현장에서 의사와 간호사 등 다른 의료전문직과 협력을 모색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2018년 9월 현재 159명이 임상종교사로 자격인증을 받고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대만과 달리 의료기관과 연계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임상종교사는 일본의 다양한 공공장소에서 종교인 특성을 살린 심리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교토에서는 2015년부터 자살대책의 하나로서 임상종교사를 활용하고 있다. 임상종교사가 특정 종교의 포교와 권유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종교의 차이를 넘어 사람의 비탄과 고뇌에 집중하여 경청하는 종교인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상종교사는 특정 종교단체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지 않고, 공공의 복리를 위해 활동한다는 엄격한 윤리강령을 준수해야 한다.

미증유의 다사사회에서는 인생 전반기와 같이 인생 후반기에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행복도는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 일본에서 고령자의 사망자 수가 전체 사망자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암과 노화 등으로 사망하는 ‘길고 완만한 죽음’이 다사사회의 큰 흐름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개인은 자유의지로 죽음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또한 국가의 입장에서는 국민의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 QOD를 높이는 대책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커리어넷 커리어 전직개발 연구소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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