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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세일즈맨이 버려야 할 이 말…소비자 바보 만드니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경랑의 4050세일즈법(38)

온라인 거래를 일상처럼 하는 A 전자 마케팅팀 김대리. 오늘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할인 대상 품목이라 금액 기준을 채우려 잔뜩 장바구니에 넣었음에도 도대체 할인이 되지 않아 30분을 이리저리 연구하다가 결국 고객센터에 문의했다. 고객센터의 대답은 “충분히 이상하다고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해당 상품들은 이번 쿠폰 이벤트 대상 품목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할인 쿠폰을 사용할 수 있다면 결제할 때 결제창에서 확인이 됩니다” 였다. 고객의 입장을 이해하는 듯한 말투는 있었으나, 원래 아니었단다. 분명 상세 설명과 장바구니 두 군데 다, 할인 쿠폰이 표시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원래 그런 건데, 내가 바보 같다는 건가? 아니, 원래 뭐가 그렇다는 건가?’ 김대리는 짜증을 넘어 화가 나려고 했다. 상담원이 무슨 잘못인가 싶다가도, 원인을 파악해서,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설명해 주거나 정식으로 사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굳이 시간 낭비해가며 따지고 싶지 않아 가능하면 그곳에서는 물건을 사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마무리했다.

물건을 구매하고 궁금한 점이 있어 고객센터에 문의 했을 때 "회사 정책상 원래 그렇다"라는 답변이 돌아오면 문제의 본질은 해결되지 않은 채 마음만 상하게 된다. [사진 pixnio]

물건을 구매하고 궁금한 점이 있어 고객센터에 문의 했을 때 "회사 정책상 원래 그렇다"라는 답변이 돌아오면 문제의 본질은 해결되지 않은 채 마음만 상하게 된다. [사진 pixnio]

가구를 구입하면서 설치비가 별도라는 사실을 확인하고자, 가구회사에 문의하게 된 이모 주부. 가구 회사의 답변은 “원래 저희는 가구 설치비를 별도로 받고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였다. 회사의 정책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이해해야겠지만, 질문에 대한 대답이 시원하게 들리지 않는다. 이제까지 다른 가구를 구입하면서 설치비를 별도로 지불해 본 적이 없어 낯선 게 아닐까 생각하기로 했지만, 일단 구입을 보류하고 다른 가구 회사 제품을 검토해보기로 했다.

그렇다. 고객은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질문도 많고, 불만도 많다. 복잡한 거래를 진행하다 보면 가볍게 작은 실수를 할 수 있다. 회사는 회사대로 규칙을 정하고 비즈니스를 해야 하니 나름의 기준을 세운다. 하지만 수준이 점점 더 높아지고, 존중받기를 원하고, 납득되지 않으면 동의하지 않는 고객에게 단순히 결론만 제시하는 방법은 분명 뭔가 부족하다.

“원래 그렇습니다.” 두 사례에서 상담사와 고객센터는 ‘원래’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사실 ‘원래’라는 단어는 ‘처음부터 또는 근본부터’라는 의미이다. 근본적으로 변치 않는 사실을 의미하기에 누구나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 아주 힘 있는 단어가 아닐까?

그런데 일상적으로 ‘원래’는 변질되어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원래 다 이래요”, “원래 우리는 이렇게 했어요” 등의 말은 핑계나 변명, 그리고 회피의 용도로 활용하기도 한다. 원래 ‘원래’가 가지고 있는 뜻인 근본과는 무관하게 말이다.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물론이고 일상에서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이해시키기 위한 상황은 자주 일어난다. 세일즈에서도 마찬가지다. 세일즈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 고객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낯섦은 가끔 기업과 세일즈맨에게 좋은 자극이 되기도 하고, 고객 관점의 배려나 메시지의 강화를 위한 첫걸음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를 “죄송합니다. 저희는 원래 그렇습니다”로 마무리한다면 핑계나 변명, 회피로 보이지 않을까? 고객이 궁금해하는 본질을 배려하지 않고, 결론이 그러하니 받아들이든 말든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해석되지 않을까?

직장에서도 "왜 이렇게 업무하는지" 하고 묻는 후배에게 "원래 그렇다"고만 대답할 것이 아니라,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싶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사진 pxhere]

직장에서도 "왜 이렇게 업무하는지" 하고 묻는 후배에게 "원래 그렇다"고만 대답할 것이 아니라,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싶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사진 pxhere]

꼭 ‘말’의 문제만이 아니다. 일상적으로 하던 방식을 아무 비판 없어, 당연하게만 받아들이면 창의적인 방법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과학기술이나 예술적인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설득이나 관계, 세일즈맨의 세일즈 화법이나 제안방법, 기업의 마케팅이나 고객 상담 등 모든 분야에서 ‘당연하니까’라는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면 경쟁에서 앞서기 어렵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세일즈맨은 고객에게 전달하는 모든 사실의 이면에 ‘고객의 이익’ 혹은 ‘고객의 관점’을 고려해야 한다. ‘원래 이런 겁니다’라는 마인드가 생기면, 고객은 납득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나는 세일즈에서만큼은 아예 ‘원래’라는 단어를 삭제해 버리라고 권한다. 원래라는 단어와 개념을 삭제하면, 고객의 궁금증이나 고객에게 설득하고 제안하려는 내용을 훨씬 더 고객 관점에서 표현할 수 있다.

앞선 사례에서 김대리와 상담한 상담원이 이렇게 설명했으면 어떨까?

“고객님, 할인 쿠폰이 표시되면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결제창에 할인 쿠폰이 표시되어야 최종적인 쿠폰 적용이 됩니다만, 과정상에서 오해가 있을 수 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담당 부서에 확인하고 개선방향을 찾아 다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혼란을 드린 점 죄송하며 고객님의 생각을 전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모 주부와 상담한 가구회사 고객센터에서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고객님, 가구는 일반 소비재보다 부피도 크고, 설치하는 수고가 많이 듭니다. 또 설치하는 곳마다 상황이 달라서 설치 비용을 가구 구입비에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회사는 가구 설치를 전문가에게 일괄적으로 맡기고, 전문가의 수고만큼의 수고비를 별도로 책정해 가구 가격을 보다 투명하게 설정하는 정책을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고객의 가구가 더 견고하게 설치될 수 있는 방법이자 합리적인 가격정책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어떠실까요?”

‘원래’라는 단어는 결론만 제시하는 느낌이 든다. 그냥 일방적으로 이해하라는 것처럼 들린다. 왜 그러한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니 정성스럽지 못한 말투가 되어버린다. 변화하고 싶지 않다는 고집을 보이기도 한다.

세일즈든, 일상이든 마찬가지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작은 뉘앙스의 차이에서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그 의도가 나쁜 것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정성스럽고, 고객 지향적인 관점은 분명 부족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직장 내에서도 그렇다. ‘왜 이렇게 업무를 하는 것인지’ 질문하는 후배에게 ‘원래 그렇다’고만 대답하는 선배나 상사가 있는 건 아닐까? 업무의 효율 때문인지, 부서 간 협조 때문인지, 의사결정의 순서 때문인지, 혹은 오랜 시간 해온 관행이기 때문인지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논리가 맞지 않는다면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함께 나누면 될 일이다.

유년기 아이는 늘 해맑은 눈망울로 어른에게 묻는다. “왜 이런 거예요?” 그 아이들에게 ‘응, 원래 그래’라고 대답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나에게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의 질문이나 의구심에 ‘원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의 일상에서 ‘원래’는 더 근본적인 질문에 당당히 답할 수 있는 언어이길 바란다. 그냥 내 입장만 고집하고, 변화나 조언은 듣지 않겠다는 느낌으로 전달되지 않도록 말이다.

SP&S 컨설팅 공동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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