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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 “아동학대법은 필요, 대중 분노 자양분 삼아선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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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오은영 박사가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정수경PD

지난달 28일 오은영 박사가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정수경PD

“안녕하세요, 박사님. 아동학대 관련해서 여쭤볼 게 있는데 인터뷰를…”

“네~! 해야지요. 무조건 해야지요.”

“…”

당황했다. 대한민국에서 요즘 제일 바쁘다는 ‘육아 대통령’ 오은영 박사가 전화기 너머 인터뷰를 수락하는데 1초가 안 걸렸다. 즉답 이유는 단 하나. 아동학대를 주제로 다뤄서다. 지난달 28일 주말을 앞둔 금요일 밤 8시. 서울 강남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환한 웃음과 ‘솔’에 걸친 하이톤 목소리는 적막한 사무실을 밝게 채웠지만, 내용은 무겁고 진지했다.

세상 모든 ‘금쪽이(채널A ‘금쪽같은 내 새끼’ 출연 자녀)’들을 엄마 품으로 돌려보내는 가슴 따듯한 ‘국민 육아 멘토’, 오 박사는 의사다. 의료인으로서 25년 간 아동학대 현장을 마주했다. 학대당한 아이들이 성인이 된 걸 봤단다. “아동학대 연구는 평생의 숙제”라고 말하는 30년 차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가 봤을 때, 한국 아동 학대 관련 법과 제도 문제점은 뭘까. 유명세를 의식해 에둘러 점잖게 답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은 빗나갔다.

‘육아 멘토’로 나선 지 한 20년 됐다. 
의사로서 1:1로 환자를 돕는 것도 의미 있지만, 사회 전반이 바뀌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단 생각 들었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방송을 시작했다. 2005년부터 2016년까지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나갔다. EBS ‘생방송 60분 부모’도 10년 넘게 했다.
과거보다 육아에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뭘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의 자식 사랑은 깊다. 근데 시대와 문화 따라 이 사랑의 방향도 달라진다. 예를 들면 1960년대 소아정신과 학회 안에선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이후 체벌보다 더 건강한 훈육법이 있다는 걸 알고 인식도 차츰 바뀌었다. ‘사랑 방법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느끼는 것 같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체벌에 관대했다. 이런 문화는 아동 학대가 늘어나는데 영향을 끼쳤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체벌에 관대했다. 이런 문화는 아동 학대가 늘어나는데 영향을 끼쳤다.

유독 ‘오은영’을 자주 찾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그렇게 말해주니 좋다. (웃음) 사실 난 늘 하던 일을 계속했을 뿐이다. 동네 20~30년 된 설렁탕 맛집도 가면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지 않나. (육아 연구와 관련해) 이런 게 (나한테도) 조금 있는 게 아닌가 감히 생각해본다. 부담된다. 그렇지만 불편한 중압감보단 기쁜 책임감으로 받아들이겠다.
방송에선 인간에 대한 믿음이 강해 보인다.
맞다. 인간이 희망이다. 철학자 칸트를 좋아하는데, 칸트는 “인간은 교육받지 않으면 인간답지 못하다”고 했다. 배우면 발전하고 성장하는 게 인간이다.
최근 아동학대 사건 보면 그런 믿음 안 깨지나.
당연히 인간에 좌절한다. 정말 나쁜 사람들이 있다. 현장 사례를 접하면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다. ‘어떻게 이토록 잔인할까, 약자인 아이들에게 왜 이럴까’란 고민에 빠진다. 타인의 ‘선함’을 기본적으로 믿고 살아야 하는데, 아동학대 사건은 이런 걸 뿌리째 흔든다. 또 한편으론 내 일처럼 공분하는 분들 보면 희망을 느낀다.  
우리나라만 심한가.
서구는 아동학대 건수가 매년 대동소이한데, 우리나라는 수년간 급격히 늘었다. 사건 자체도 늘고, 신고 건수도 늘었다고 본다. 실제 사건 수는 신고 건수의 4배 정도라는데, 발견 안 된 경우가 상당할 거다.
연도별 아동학대 신고 건수. 보건복지부

연도별 아동학대 신고 건수. 보건복지부

“분노 자양분 삼은 급한 입법 우려돼”

국회가 아동학대특별법 냈다. 기대와 우려가 있다. 
법을 만드는 게 맞다. 없는 것보다 낫다. 그래야 기틀이 생긴다. 아이 안전을 위해 너무 중요한 법이다. 지속해서 점검·보완해야 한다. 이번 특별법은 정인이(양천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계기로 발의됐다. 끔찍한 사건을 겪으며 대중이 분노했고, 이 분노의 힘이 법을 만들었다. 좋은 결과다. 하지만 분노를 낮추기 위해 급하게 법이 만들어지면 우려되는 면도 많다. 대중의 분노를 자양분 삼아 급하게 법을 만들었는데, 이 법을 고치려면 공분을 일으킨 사건보다 더 가슴 아프고, 더 큰 분노가 필요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한 번 생긴 법을 고치는 건 쉽지 않으니까.
다른 제도도 손 봤다. 2회 신고로 피해 아동은 안전해질 때까지 ‘즉각 분리’된다.
숫자에 발목 잡히면 안 된다. 가해가 분명한데 횟수(2회 신고)를 못 채웠다고, 현장인력들이 발길을 돌릴 수 있다. 첫 신고라도 명백한 학대라면 분리해야 한다. 횟수에 얽매이면 기계적인 판단에 그칠 수 있다.
양천아동학대 사망사건은 공분을 샀다. 국회는 아동학대특별법을 발의 했다. 정부와 경찰은 연 2회 신고 만으로 피해 아동을 부모로부터 '즉시 분리' 할 수 있게 제도를 고쳤다.

양천아동학대 사망사건은 공분을 샀다. 국회는 아동학대특별법을 발의 했다. 정부와 경찰은 연 2회 신고 만으로 피해 아동을 부모로부터 '즉시 분리' 할 수 있게 제도를 고쳤다.

아이 분리 방식 두고 ‘분리 불안’ 같은 정서적 고려가 없다는 비판도.
잘못한 가해자는 생활하던 곳에 그대로 두고, 피해자를 어딘가(쉼터)로 보내는 건 말이 안 된다. 아동이 불편을 감당한다. 굉장히 어른 중심적이다. 어쨌든 간에 학대가 의심되면 일단 분리가 맞다. 그래야 안전하다. 근데 분리에만 치중하면 아이 안녕과 복지는 사라진다. 모든 아이에게 부모는 생명의 ‘동아줄’이다. 피해 아동도 마찬가지다. 가해 부모가 동아줄은 동아줄인데, ‘썩은’ 동아줄이다. 아이는 혼자 살 수 없으니 이 썩은 줄이라도 잡아야 한다. 누군가는 “학대한 부모랑 어떻게 1초라도 함께 두느냐”라고 말하지만, 아이에겐 가해자라도 부모와 떨어지는 게 굉장한 두려움과 공포일 수 있다.

“전담 공무원과 경찰, 아동학대 전문성 약할 수 있다”

전담 공무원과 경찰도 배치했다.
그들도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이 있겠지만, 아동학대 문제 관련 전문성은 약할 수 있다. 게다가 순환 근무라면 왔다 가는 자리로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양천 아동학대 사망사건도 시민·의료인·교사 모두 학대 의심 신고했는데, 문제가 생긴 건 신고 뒤다. 경찰에서 높은 분들이 이제 아동학대 사건 직접 관리·감독 맡는다지만, 현장에선 모셔야 할 윗분들이 더 많아진 걸 수도 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목소리가 더 반영되고 고충이 고려돼서 그들이 잘 일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판단 착오로 피해 아동이 더 위험해질 수도 있겠다.
전담공무원과 경찰이 자율적으로 현장을 판단하는 게 쉽지 않다. 절차 매뉴얼이 필요하다. 현장도 이런 걸 따라서 “난 모른다. 법이 그렇다”고 핑계 대고 할 일 할 수 있어야 한다. ‘신고 의무자’인 의사도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아주 작은 상처라도 보이면 물어본 뒤 아이 안전 확인될 때까지 멈추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쉽게 자의대로 괜찮겠거니 처리하면 안 된다. 물론 이렇게 신고하면 병원 문을 며칠 닫을 수 있다. 신고당한 사람들이 쫓아와서 난리 치고 욕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게 두려워도 할 일은 해야 하지만 인간적인 고충이 있다. 신고자가 누군지 다 안다. 익명 보장이 안 된다. 학대 신고도 112 신고처럼 24시간 핫라인이 필요하다.
좋은 대안은 뭐가 있을까.
해결방법 있다. 목 놓아 말하고, 악을 써도 입법하는 분들에게 전달이 잘 안 된다. 학대가 의심되는데 가해자가 이걸 부정하면 판단이 힘들지 않나. 이럴 땐 가족 전체를 모니터링 할 공간이 필요하다. 아이는 소아정신과 외래진료를 받고, 부모는 따로 면담한다. 이러면 가해 파악이 수월하다. 전문가가 개입할 중간 단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인식이다. 체계적인 법과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시스템을 다루는 사람의 인식 개선이 제일 중요하다.
재학대 비율도 높다. 이유는 뭘까.    
그걸 이해하려 들면 안 된다. 어느 누가 아이를 가방에 넣고, 굶기면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할까. ‘(가해자가) 왜 그랬지’라는 의문에서 ‘왜’가 설명이 안 된다. 이건 병리적인 문제다. 철저하게 치료해야 할 문제다.
폭력도 중독되나.
폭력은 중독이다. 힘을 쓰면 아이가 금방 말을 들으니까 더 폭력에 중독된다. 그래서 항상 ‘절대 그 선을 넘어가는 첫 경험을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선을 넘으면 그다음은 너무 쉽다. 어려움이 있어도 ‘때려서 고치겠다’는 생각은 안 된다. 부모들이 ‘난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서도 안 된다.

“세게 처벌한다고 아동학대 안 멈춘다”

자신의 행동이 학대인 줄 모르는 부모도 많다고 한다.
(부모) 본인이 그렇게 (학대인 줄 모르고, 학대당하며) 커서 아이를 그렇게 키워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학대인 줄 모르는 부모일수록 철저하게 교육하고 추적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 학대 가해자들은 행동에 대한 결과 예측을 잘 못한다. 아동학대는 중범죄라 처벌수위가 지금보다 더 높아져야 하지만 더 세게 처벌한다고 학대를 멈추진 않는다.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게 학대를 막는데 별 도움이 안 된다. 학대는 예방해야지, 사후 처벌 수위를 높이는 건 학대 예방에 도움이 안 된다.
지난 7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회의를 열고 아동학대 처벌 수위를 강화 하기로 했다. 양 엄마 학대 끝에 숨진 양천아동학대 사망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아동학대 양형기준을 수정하기로 했다.

지난 7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회의를 열고 아동학대 처벌 수위를 강화 하기로 했다. 양 엄마 학대 끝에 숨진 양천아동학대 사망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아동학대 양형기준을 수정하기로 했다.

형량 높이는 게 예방 효과가 없다는 건가.
아동학대는 인간이 결코 하면 안 되는 범죄라서 형량을 높이는 게 맞긴 맞다. 상징성도 있고 메시지도 있다. 그리고 이제까진 (처벌이) 너무 가볍기도 했다. 그런데 처벌 수위를 높인다고 해서 학대 가해자 개개인의 학대 행위를 막진 못한다는 뜻이다. ‘처벌이 무서워서, 이 아이를 학대하지 말아야지’ 이런 건 잘 안 통할 거란 이야기다. 다시 강조하지만 아동 학대 문제는 학대 발생 후 처벌보다 예방이 더 중요하다.
지난달 말 유은혜 부총리 면담했다. 무슨 이야기가 나왔나.    
청와대 관계자, 교육·복지 장·차관들 모여 코로나 교육 공백 논의했다. 아동학대 관련해서 유은혜 부총리와 복지부 차관에게 의견 냈다.
무슨 의견 냈나.
현재 영유아검진은 소아과에서 신체검진에 중점 두고 진행된다. 소아정신과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통한 정신·정서 검진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국가 예산으로 아이들의 정신·정서 발달 검진하고, 필요하면 부모교육도 제공해 위기가족 치료와 보호 연계하는 제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렇게 되면 학대 징후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큰 사건 연달아 터졌다. 어떤 마음 들었나.
아이들에게 부모는 우주다. 우주가 흔들리면 아이들은 설 곳이 없다. 부모가 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동시에 어려운 일인지 요즘에 새삼 깨닫는다. 마음에 상처도 많이 입었다. 그래서 ‘이게 문제다, 저게 문제다’ 말도 많지만 한편으론 그냥 모든 부모를 위로 하고 싶다.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영상=정수경·조은재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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