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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선진국 퇴직연금 수익률 10%…‘디폴트옵션’ 뭐길래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일의 퇴직연금 이야기(84)

퇴직연금제에 있어 적립금의 확대만큼 중요한 것이 적립금의 증식이다. 이를 위해 자동투자 방식으로 적립금을 운용하는 디폴트 옵션 제도를 눈여겨볼만 하다. [사진 unsplash]

퇴직연금제에 있어 적립금의 확대만큼 중요한 것이 적립금의 증식이다. 이를 위해 자동투자 방식으로 적립금을 운용하는 디폴트 옵션 제도를 눈여겨볼만 하다. [사진 unsplash]

퇴직연금제가 안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수익률 저조라고 할 수 있다. 퇴직연금제가 노후복지에서 의미가 있으려면 적립금의 확대도 중요하지만, 적립금의 증식도 중요하다. 그런데 퇴직연금 최근 5년 평균 수익률은 1.77%에 불과하다. 이는 국민연금 수익률 5.39%에 비하면 차이가 크고 연금 선진국, 예컨대 호주나 미국, 영국 등에서 7~10%의 수익률을 장기적으로 달성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는 결과다.

이런 현실을 고려해 연금 선진국에서 이미 일반화한 사전지정운영제도(디폴트 옵션제도)도입이 검토되고 있다. 사전지정운용제도는 확정기여형(DC) 또는 개인형 퇴직연금제(IRP)의 가입자가 자신의 적립금 운용에 대해 명시적인 의사표시를 하지 않는 경우 자동 투자 방식으로 적립금을 운용하게 하는 제도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저조한 원인부터 살펴보자. 아래의 〈표1〉에서 제도별 원리금보장상품 비율을 살펴보면 확정급여형(DB)〉DC〉IRP의 순으로 원리금보장상품의 비중이 높다. 2019~2020년 사이 비율변화도 미미한 편이다.

〈표2〉에서 2020년 퇴직연금 연간 수익률(총비용 차감 후)은 2.58%로 전년(2.25%) 대비 소폭 상승(0.33%포인트)했다. 그런데 운용 방법별 연간 수익률 추이를 보면 2018~2020년 3년간 실적배당형상품은 –3.82~10.67%로 움직여 평균 4.41%였고, 원리금보장상품은 1.56~1.68%로 평균 1.67%였다. 결국 퇴직연금수익률 저조의 주범은 원리금 보장상품의 저조한 수익률이었다. 여기에는 DC형과 IRP 가입자가 운용지시를 하지 않으면 금리 1% 안팎의 원리금보장상품으로 자동 편입돼 방치되는 문제도 큰 역할을 한다.

DB형에 비해 DC나 IRP가 수익률이 높다고 해도 이는 실적배당형상품으로 운용했을 때 얻을 수 있지 원리금보장상품으로 운용한다면 저조한 수익률을 면하기 어렵다.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려는 것은 그래서다. 그동안 사전지정운용제도가 논의되어 오면서 여러 쟁점이 있었다. 첫째는 사전지정운용제도에서 자산운용 대상 상품 구성 시 원리금보장상품을 포함할 것인가의 여부, 둘째 실적배당형상품 투자에서 반드시 수반하게 되는 위험과 그에 따른 손실 발생 시 책임의 문제, 셋째 주인인 가입자에 대한 사전 및 계속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 넷째 자산운용 수수료 문제다.

원리금보장상품의 포함 여부는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원리금보장상품 선호 현상을 극복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에 디폴트옵션 가입자의 사전 교육을 통해 ‘적용제외(opt-out)’를 충분히 보장해 주는 것이 보다 현명한 접근법이고 해결책이다. 아울러 호주처럼 가입자가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게 하되 사전지정운용과 자기 선택(원리금보장 상품 포함) 비율을 정할 수 있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자산운용의 손실 발생 책임 문제는 사전지정운용 방법을 제공하는 주체에 엄격한 책임을 묻는 미국의 연금보호법(Pension Protection Act of 2006) 선례를 참고할 만 하다. 즉, 사전지정운용방법 제공기관에 대해 사전 및 계속 교육과 설명의 의무, 주의의무(어떤 행위를 할 때 상당한 주의를 기울일 의무), 충실의무(수익자 이익 우선 행동 의무), 자산배분 의무, 리스크관리 의무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적격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준수하면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이다.

셋째, 교육의 문제는 가입자의 제도 이해와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하며, 현재와 같이 퇴직연금사업자에게 위탁하는 구조를 과감하게 시정할 필요가 있다. 사전지정운용 방법 제공기관은 퇴직연금 사업자가 될 가능성이 큰데, 이들이 지금과 같이 교육을 위탁받으면 자기 이익을 우선하는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고, IRP에서는 실제적 교육이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2021년 미래에셋증권이 조사한 ‘대한민국 직장인 연금이해력 측정 및 분석’이다. 아래의 〈그림〉과 같이 연금 이해력 부분 평균점수에서 IRP의 점수가 가장 낮았다. IRP에 대한 교육의 책임은 전적으로 퇴직연금 사업자에게 있다. 형식적인 이메일 교육이나 서면자료 발송에 그치는 바람에 가입자의 IRP 이해도는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다행히도 이번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으로 가입자교육전문기관의 위탁 교육이 가능하게 됐다.

가장 큰 문제는 디폴트옵션 도입에도 불구하고 직장의 전·이직 시 퇴직금의 IRP 강제이전이 의무화돼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일시금 수령이 90%를 훨씬 넘는다면 디폴트옵션 내에서 장기자산운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여전히 일시금 수령이 많다면 디폴트옵션 도입 취지가 흐려질 수 있다. 혹여, 장기근속이 가능하고 자산운용 이해도가 높은 중간 이상 고소득 중견기업이나 대기업 종사자가 혜택을 독차지하는 상황도 우려된다. 중간소득 이하 가입자의 보호도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일정 기간 적립금 규모에 따른 원금 손실 보전 방안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퇴직연금제도는 도입 이래 저조한 수익률 문제에 시달려왔다. 그 중심에는 원리금보장상품 편중 운용과 지속적인 금리 하락이 있다. 선진국이 가입자의 자산운용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 활용하고 있는 디폴트옵션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현재 가장 큰 걸림돌은 윈리금보장상품의 포함 여부인데, 이 문제는 그리 복잡할 것 없어 보인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지만 디폴트옵션의 기본에 충실하되 가입자가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CGGC(Consulting Group Good Company)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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