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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선마다 野 겨냥한 '검풍'···이번엔 공수처풍이 尹 정조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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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염려를 제가 다 경청하고 있다"며 "좀 지켜봐 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총장직에서 물러난 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우상조 기자

범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염려를 제가 다 경청하고 있다"며 "좀 지켜봐 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총장직에서 물러난 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우상조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밖 1위를 이어가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과거 역대 대선에선 검찰이 야당 주자를 겨냥한 수사로 "'검풍(檢風)'이 대선에 개입한다"는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낳았다. 선거일 앞두고 설사 무혐의가 되더라도 이미 후보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은 터라 막판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2022년 3월 대선을 9개월 앞둔 시점에서 집권 여당의 ‘검찰개혁’으로 출범한 공수처가 야권 1위 주자를 정조준하면서 '검풍'을 대체해 선거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받는 이유다.

장면 #1. 1997년 'DJ 비자금'…YS “대선 앞두고 檢수사 비겁한 짓”  

15대 대통령 선거를 두 달여 앞둔 지난 1997년 10월.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 강삼재 사무총장이 야당인 새천년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670억원 비자금 조성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검찰에 조세포탈 및 뇌물수수 혐의로 고발했다. 천문학적인 액수가 언급되면서 의혹만으로도 폭발력이 대단했다. 그러나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은 여당의 고발 나흘 만에 “대선 전 수사 종결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어 ‘수사 유보’를 발표했다.

1987년 6월 25일 동교동의 김대중씨를 찾아간 김영삼 민주당 총재가 김대중씨와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1987년 6월 25일 동교동의 김대중씨를 찾아간 김영삼 민주당 총재가 김대중씨와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 전 총장은 나중에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극비리와 진행된 독대를 회고했다. 김 대통령이 “선거 때 상대 후보의 약점을 들춰내 비난한 사람치고 당선된 사람이 없다. 대선을 앞두고 (DJ) 비자금을 수사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며 “비겁한 수사를 하면 되냐”고 수사 중단을 지시했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결국 김대중 후보는 이회창 후보를 39만표 차이로 이기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2. 2002년 김대업의 병풍(兵風)…민주당 “의인” 불구 사기극 종결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의 선거 벽보.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의 선거 벽보.

지난 2002년 대선 때도 주인공은 ‘검찰’이 됐다. 군(軍) 의정부사관 출신인 김대업씨가 대선 5개월 전인 같은 해 7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부인이 1991년 돈을 주고 장남의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이른바 ‘병역 비리 의혹’을 제기하면서다. 이어 김대업 본인과 한나라당 등의 명예훼손 고소·고발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소위 병풍(兵風) 수사가 대선 정국을 지배했다.

당시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김씨를 "용감한 시민", 박양수 의원은 "신념을 가진 의인(義人)"이라고 치켜세웠다. 결국 지지율 1위를 달리던 이 후보의 지지율은 급전직하했고 노무현 대통령이 2.3%포인트(57만 표) 차이로 당선됐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직후 2003년 1월 검찰은 거꾸로 김씨를 무고‧수사관사칭·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구속했고 이듬해 2월 대법원이 김씨에 대해 징역 1년 10개월 유죄를 확정하면서 '병풍'은 사기극으로 막을 내렸다.

#3. 2007년 도곡동땅·다스 차명 의혹…10년 만 재수사로 뒤집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월 19일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던 모습. 대법원은 이 전 대통령에게 징역 17년을 확정했다.[뉴스1]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월 19일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던 모습. 대법원은 이 전 대통령에게 징역 17년을 확정했다.[뉴스1]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지난해 10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자동차부품업체 다스(DAS)에 대한 횡령 252억원 및 뇌물 94억원 등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17년형을 확정했다. 유죄로 인정된 뇌물액 중 89억원은 다스가 김경준 BBK 전 대표를 상대로 140억원 투자금을 반환받는 데 미국 소송비용을 삼성이 대납한 돈이다.

이 출발은 2007년 검찰의 한나라당 후보 시절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도곡동 땅과 다스 차명재산 및 BBK 주가조작 의혹 수사였다. 소위 대선후보 검증 수사다. 검찰은 도곡동 땅에 대해선 같은 해 8월 한나라당 경선 직전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라는 애매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같은 해 12월 BBK 주가조작을 김경준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내리며 다스에 대해서도 "이 후보 소유라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상황이 급반전한 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10년 만 재수사에서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 소유 영포빌딩 지하에서 다스 관련 핵심 자료를 확보했고, '집사'로 불리던 김백준 청와대 전 총무기획비서관으로부터 "다스는 이 전 대통령 것"이란 증언도 받아냈다. 다스의 진실이 드러난 결정적 계기는 대통령 재임 중인 2011년 2월 김경준으로부터 다스 투자금 140억원을 돌려받은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삼성이 이 전 대통령 측 요구로 다스의 현지 소송비용을 대납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4. 2021년은 공수처 주연…與김종민 "尹 도핑테스트 받아야"

이번에는 검찰이 아닌 공수처가 주연이다. 공수처는 유력 대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비롯한 전·현직 검찰 간부들을 상대로 시민단체가 제기한 고발을 정식 입건하고 수사 절차에 착수했다. 두 건(옵티머스 자산운용 부실수사‧한명숙 위증 교사 감찰방해) 모두 작년 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윤 전 총장 징계 국면에서 쟁점화했다가 이후 감찰과 징계위 등에서 유야무야된 사안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지난 3월 4일 검찰총장 직을 사퇴했다. 임현동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지난 3월 4일 검찰총장 직을 사퇴했다. 임현동 기자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전 총장도 경기에 출전하려면 도핑테스트를 받아야 한다”며 “기록이 1등 나오니까 도핑테스트 안 받겠다? 특권이고 반칙”이라고 공수처의 수사를 독려했다. 추 전 장관도 “이미 징계 의결 단계에서도 상당한 증거를 가지고 입증이 됐다. 그 증거가 그대로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힘을 실었다.

검찰 안팎의 반발도 감지된다. 한 부장검사는 “공수처도 수사가 어렵다는 걸 알 텐데 굳이 이 시기에 ‘입건’ 결정을 내렸다는 게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며 “검찰이 권력의 입맛에 맞게 쓰였다는 이유로 ‘검찰개혁’이 시작됐고 공수처가 출범했는데 아쉽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권이 본격적으로 '윤석열 죽이기'에 돌입했다”고 비판했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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