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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붕괴날 작업한 굴착기 기사 "마음 아프지만···나도 억울"

중앙일보

입력

지난 9일 17명의 사상자를 낸 철거 건물 붕괴사고와 관련해 사고 발생 전 철거 현장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 10일 공개됐다. 철거업체 작업자들이 건물을 층별로 철거하지 않고 한꺼번에 여러 층을 부수는 모습이 사진에 찍혀 해체계획서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일 17명의 사상자를 낸 철거 건물 붕괴사고와 관련해 사고 발생 전 철거 현장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 10일 공개됐다. 철거업체 작업자들이 건물을 층별로 철거하지 않고 한꺼번에 여러 층을 부수는 모습이 사진에 찍혀 해체계획서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사상자가 많이 나와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지난 9일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건물 붕괴 현장에서 철거 작업을 했던 굴착기 기사 A씨는 11일 중앙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고 당시 상황을 묻는 질문에 A씨는 “여전히 정신이 없다. 아무 생각도 안난다. 정신이 있을 때 얘기하자”고 힘없이 말했다.

A씨는 사고 당일 대형 굴착기로 건물을 뜯어내고 있었다. 건물 3층 높이의 성토(盛土) 경사면을 오가며 콘크리트와 철근을 하나하나 제거하는 작업이다. 비산먼지를 덮기 위한 다량의 살수 작업도 진행됐다.

9일 오후 4시22분쯤 공사 현장은 건물 외벽이 우르르 쏟아지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건물에 깔린 버스 승객 등 9명이 숨지는 등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A씨를 포함한 인부 4명은 붕괴 직전 현장을 떠나면서 화를 면했다.

경찰은 사고 당시 굴착기를 운전한 A씨를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한 상황이다. 건물 붕괴 전 철거작업이 있었고 굴착기를 활용한 공법상 A씨의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A씨는 ‘억울한 부분이 있냐’는 물음에 “분명히 있다. 시간이 좀 필요하다…”라며 말끝을 흐렸다.

A씨는 중장비 업체를 운영하는 대표이사다. 붕괴 사고 후에도 건물 잔해물 치우느라 10일 새벽까지 일했다고 한다. 경찰은 철야 작업을 한 A씨를 불러 조사한 뒤 11일 입건했다. A씨와 함께 일했던 한 지인은 “본인의 굴착기로 작업을 하다 발생한 사고라 마음 고생이 심한 것 같다”며 “사고 당일에도 본인의 고통을 뒤로 하고 밤늦은 시간까지 직접 현장을 정리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9일 발생한 17명의 사상자를 낸 철거 건물 붕괴사고와 관련 지난 1일 철거 업체가 해체계획서를 준수하지 않고 철거를 진행했음을 증명하는 사진이 나왔다. 사진에는 굴착기가 건물의 저층을 일부 부수고 있는 모습이 찍혔다. 연합뉴스

9일 발생한 17명의 사상자를 낸 철거 건물 붕괴사고와 관련 지난 1일 철거 업체가 해체계획서를 준수하지 않고 철거를 진행했음을 증명하는 사진이 나왔다. 사진에는 굴착기가 건물의 저층을 일부 부수고 있는 모습이 찍혔다. 연합뉴스

경찰은 A씨 업체가 사고 구역의 건축물 해체를 도맡은 정황을 포착해 관련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은 건설산업기본법상 재하도급 금지 규정 위반 여부 및 시공사와 조합, 그리고 철거업체 간 계약 과정에서의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파악할 방침이다. 철거기업의 재하도급 여부도 수사 대상이다. 11일 현재 경찰에 입건된 사람은 철거업체와 시공사 관계자, 감리 등 7명이다.

이번에 붕괴된 건물이 부실한 철거 작업에서 비롯됐다는 의혹은 속속 나오고 있다. 건층 최상층부터 차례로 철거한다는 해체 계획이 애초부터 지켜지지 않았다. 붕괴 건물 인근 주민들의 증언과 현장 사진 등을 살펴보면 상층부가 아닌 건물 중간부터 철거작업이 진행된 정황이 확인되고 있다. 중간부터 해체된 탓에 건물 하층부가 상층부 하중을 못 이겨 도로를 향해 무너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9일 철거건물 붕괴사고가 발생한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재개발부지 모습.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9일 철거건물 붕괴사고가 발생한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재개발부지 모습. 프리랜서 장정필

외벽 철거 순서도 계획서와 달랐다. 애초 건물을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좌측→후면→정면→우측 순서로 철거해야 했지만 철거업체는 후면 벽부터 철거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전면부가 무너지는 결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상층부를 철거하면서 쌓은 골재와 폐기물, 다량의 흙이 건물 중심을 잃게 만들었다는 추측도 나온다. 부실한 해체계획서, 공사 비용을 단축하기 위한 재하도급 문제도 불거진 상태다.

동구청은 “철거업체 관리 감독 권한은 감리업체에 있다”며 사고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 안전관리 전문가는 “건물이 무너지기 전 철거 방식에 대한 위험성을 알리는 민원이 제기된 것으로 안다”며 “건물 철거의 최종 허가권자는 자치단체이기 때문에 민원 접수 당시 현장 점검을 제대로 했는지 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건축물관리법상 민원이 발생하면 자치단체가 현장을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광주광역시=김지혜·최종권·진창일 기자 kim.jihye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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