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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은 AZ, 30대 아이 엄마인 기자가 주저없이 맞은 이유는[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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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스더 복지팀장의 픽: 백신 맞을까 말까

지난달 27일 대전시 유성구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전용 주사기로 추출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달 27일 대전시 유성구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전용 주사기로 추출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여기 OO 의원인데요, 잔여백신 신청하셨죠? 지금 오실 수 있나요.”

지난 9일 낮, 기자는 백신을 맞으러 오라는 병원 전화를 받았다. 5월 초 예비접종자명단에 이름을 올려뒀는데 한 달여 만에 기회가 돌아왔다. 회사에 보고한 뒤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헐레벌떡 달려간 병원은 30~40대로 보이는 이들로 붐볐다. 모두 잔여백신을 맞으러 온 이들이었다. 아스트라제네카(AZ)백신은 한 병에 10명 분량이 담겼는데 특수 주사기를 쓰면 12명분까지 나온다. 사전예약한 접종대상자 5명 중 2명이 예약을 변경하는 바람에 9명분 백신이 남았다고 한다.

간호사 선생님은 “잔여백신이 많아야 서너명 분량 나오는데, 오늘은 유달리 많이 나왔다”라며 “내일부터는 네이버랑 카톡으로만 잔여백신 안내하라는데 운이 좋았다”라고 설명했다. 체온을 재고, 예진표를 작성한 뒤 드디어 접종. 원장 선생님은 왼쪽 윗 팔뚝에 침착하게 주사를 놓고 뽀로로 밴드를 바르고, 당부했다.

“해열제는 미리 복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나절쯤 지나면 열이 나거나 근육통, 오한, 두통, 몸살 기운이 있을 수 있는데 그때 복용하세요. 이틀쯤 지나면 서서히 나아집니다.”

회사 백신접종 매뉴얼에 따르면 접종 당일 재택근무, 하루는 백신휴가, 이후 몸 상태에 따라 휴가 연장할 수 있다. 일단 집으로 돌아와 근무를 이어갔다. “괜찮냐?” “어땠냐?”는 선후배들의 메시지가 답지했다. 저녁까지 몸 상태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접종한 지 10시간이 지나자 으슬으슬, 미열이 나고 삭신이 쑤시기 시작했다. 새벽 내내 근육통과 관절통, 오한에 시달렸다. 다음날은 해열제를 먹고 종일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한 의료계 전문가는 기자가 AZ 접종 뒤에 아파서 쉬고 있다는 얘기를 듣더니 “이 기자, 아직 젊네요. 통증을 기쁘게 받아들이세요”라고 위로했다. 50대인 본인은 AZ를 맞고도 아무렇지 않았다며…. 이튿날인 11일 오전 통증이 거의 사라졌다. 간만에 운동하고 난 듯한 뻐근함이 남아있었지만 몸 상태는 좋았다. 무사히 출근했고 일하는 데 지장이 없었다.

 원장 선생님은 왼쪽 윗 팔뚝에 침착하게 주사를 놓고 뽀로로 밴드를 바르고, 당부했다.  “해열제는 미리 복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나절쯤 지나면 열이 나거나 근육통, 오한, 두통, 몸살 기운이 있을 수 있는데 그때 복용하세요. 이틀쯤 지나면 서서히 나아집니다.” 이에스더 기자

원장 선생님은 왼쪽 윗 팔뚝에 침착하게 주사를 놓고 뽀로로 밴드를 바르고, 당부했다. “해열제는 미리 복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나절쯤 지나면 열이 나거나 근육통, 오한, 두통, 몸살 기운이 있을 수 있는데 그때 복용하세요. 이틀쯤 지나면 서서히 나아집니다.” 이에스더 기자

AZ는 국내외에서 내내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화이자나 모더나에 비해 효과가 낮은 것이 아니냐는 시선을 받았고, 이어 60세 이상 고령층 임상 결과가 부족해 효과 입증이 안 됐다는 구설에 올랐다. 국내에선 60세 이상 접종이 보류되기도 했다. 이어 혈소판 감소를 동반한 희귀 혈전증(TTS) 우려가 제기됐다. 해외에선 주로 20~40대 여성에게서 TTS가 발생했다고 알려졌다. 결국 국내에선 30세 미만에 AZ 접종이 제한됐고, 기피 현상까지 생겼다. AZ 접종을 앞둔 주변 사람들에게서 “맞아도 되겠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AZ 대신 다른 백신을 맞기 위해 미국 행을 결심한 지인도 있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모두 지켜봤지만, 기자는 AZ 백신 접종을 망설이지 않았다.

AZ 백신을 접종한 이유는 ‘코로나19에 걸리고 싶지 않아서’다. 취재 차 다양한 사람을 두루 만나는 기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된다면…. 30대인 기자는 만에 하나 코로나19에 걸리더라도 어렵지 않게 완치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면 ‘걸리면 앓고 말지 뭐’란 생각은 감히 할 수 없다. 가까이 사는 부모님은 60대로, 코로나19 고위험군에 속한다. 두 분께 코로나19를 감염시키는 상황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그다음은 초등학생인 두 아이. 아이들은 당장 학교에 가지 못할 테고,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문을 닫을 거다. 전교생이 검사를 받고, 같은 반 친구들은 자가격리를 해야 될 테다. 회사도 업무가 마비되고 여러 사람이 검사받고 격리되며 곤란을 겪게 될 수 있다.

물론 백신을 접종해도 감염 가능성이 있다. 백신의 면역을 뚫고 감염되는 ‘돌파감염’이다. 그래도 접종자는 앓는 기간이 짧고, 증상도 훨씬 덜하다고 한다. 주변 영향도 확 줄어든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백신 접종자는 감염되더라도 바이러스를 40%가량 적게 뿜어내고, 바이러스가 검출되는 기간도 미접종자에 비해 6일 짧다.

접종 전 작성한 예진표. 이에스더 기자

접종 전 작성한 예진표. 이에스더 기자

백신이 불안하니 조심하면서 버티겠다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그건 그리 간단찮은 일이다. 코로나19 사태 와중 자가격리를 한 적이 있다. 점심 먹으러 들른 식당에서 확진자가 나와서였다. 밀접접촉자로 분류됐다는 보건소 통보를 받고도 어리둥절했다. ‘거리두기도 잘 지키고 마스크도 잘 쓰고 손소독제를 달고 살았는데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는 나만 조심하면 되는 감염병이 아니다. 무인도에 혼자 사는게 아닌 이상, 일상생활 도중 언제라도 어디서든 감염될 수 있다.

단기간 개발된 백신인 만큼 완전하지 못할 수 있다. AZ와 얀센은 TTS 우려가, 화이자ㆍ모더나는 심근염 가능성이 제기된 상태다. 기자가 맞은 AZ는 백신 접종으로 인한 이득(사망 예방)과 위험(희귀 혈전으로 인한 사망) 정도를 비교할 때 20대를 제외한 전 연령에서 이득이 더 크다고 한다. 접종으로 되찾는 일상을 수치화해 더할 수 있다면 이득은 눈덩이처럼 불어나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뭐든 가장 빨리 맞을 수 있는 백신을 맞겠다”라고 말한다.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과학을 믿어보기로 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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