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 사회2팀장의 픽 : 견제의 시간
“31년 전 오늘, 22세 청년 박종철이 물고문을 받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벌써 3년 5개월 전 일입니다. 2018년 1월 14일 문재인 정부 2년차 초입, 청와대는 야심차게 ‘권력기관 개혁안’을 발표했습니다. 그때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한 조국 당시 대통령 민정수석의 일성은 고(故) 박종철 열사였습니다. 기일을 회견 날짜로 잡은 것은 청와대의 각오가 그만큼 비장하다는 의미였습니다. 조 전 수석의 발언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당시 검찰, 경찰, 안기부는 합심해서 진실을 은폐하려 했습니다. 영화 1987에 나오는 것처럼 검사 개인은 진실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검찰 전체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문재인과 조국의 메시지 ‘견제’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전 수석 등이 던진 권력기관 개혁 메시지는 명쾌했습니다.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이 상호 견제하면서 권력 남용을 통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조직의 이익과 권력의 편의를 위해 국민 반대편에 서왔던 ‘권력 우선의 시대’를 끊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2년 뒤인 2020년 1월, 패스트트랙과 필리버스터 등 우여곡절을 거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생기고 검ㆍ경 수사권이 조정됩니다.
입법에 의해 권력기관이 개편된 지금은 ‘견제의 시간’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 성공을 위해서도,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자정(自淨)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마침 그 시금석이 될 만한 사건이 최근 논란이 됐습니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입니다. 그의 혐의를 경찰이 왜 내사 종결했는지, 그 과정에 권력의 외압이 있었는지가 쟁점이었습니다. 경찰 진상조사단은 지난 9일 경찰관 개인의 직무유기를 인정하고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외압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청와대ㆍ법무부 관계자들과 이 전 차관이 통화한 사실은 확인했지만, 사건과 무관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용구 사건 자초지종 검찰이 더 따져야
그러나, 이대로 의혹을 접기엔 찜찜합니다. CCTV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건 경찰의 잘못이라고 칩시다. 그런데, 국민적 공분을 일으킬만한 사건을 저지른 당사자가 주요 공직에 오르는 게 방치되는 상황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이 엉망진창의 검증시스템은 누가 고쳐야 하나요? 청와대와 법무부 관계자가 혹시나 직권남용(외압)이나 직무유기(함구)를 했는지 자초지종을 따지지 않은채 넘어가야 하나요?
아직 실망하기엔 이릅니다. 검찰 수사가 남아 있습니다. 경찰이 송치한 이 전 차관의 증거인멸 등의 혐의를 마무리하면서 경찰의 조사 내용을 견제하고 권력의 남용을 통제할 기회가 아직 있는 겁니다. 게다가 지금은 조 전 수석이 말했던 ‘검찰과 경찰이 합심해서 진실을 은폐하는’ 시대도 아니니까요.
다만, 김오수 검찰총장이 지난 7일 취임 인사차 김창룡 경찰청장을 만난 뒤에 한 발언이 좀 걸리긴 합니다. 김 총장은 “두 기관 간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는 데 뜻을 모았다.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유기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국민의 편리와 개혁의 완성을 위한다면, ‘추상같은 견제’가 우선이라는 걸 모르진 않겠지요?
견제 안 하면 부메랑으로 돌아와
그 경쟁 구도에 새로 뛰어든 공수처도 길을 잃고 헤매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검사와 판사 등 권력기관을 견제하는 일보다 정치권력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며 필요 이상의 계산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견찰, 검새, 꽁수처라는 비아냥을 떨쳐내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세 권력 기관이 ‘견제의 시간’을 제대로 천착하길 희망합니다. 본질을 망각한 꼼수는 반드시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뒤통수를 치기에, 조직의 안녕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 정부의 권력기관 개혁 성적표는 그렇게 점점 드러날 겁니다.
김승현 기자 s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