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퇴직연금 수수료 1조, 정기예금 다를 바 없는데 운용 명목으로 떼 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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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0호 11면

[SPECIAL REPORT]
봉급쟁이 울리는 퇴직연금

삼성증권을 시작으로 개인형 퇴직연금(IRP)에 부과하는 수수료를 전액 면제하는 증권사가 늘어나는 가운데 퇴직연금 수수료 인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IRP 외 확정급여형(DB)·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상품의 수익률은 1~2%로 원리금보장형 비중이 큰 데도 수수료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 6257억, 보험 2621억 챙겨 #최근 증권사 등 IRP 면제 선보여

제자리걸음인 수익률에 비해 증권사·은행·보험회사가 한 해 벌어들이는 수수료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43곳의 은행·보험사·증권사 등 퇴직연금 운용사가 부과한 수수료(운용·관리 수수료 및 펀드 총 비용)는 1조773억원에 이른다. 업권별로는 은행이 6257억원을 챙겨갔고, 보험과 증권이 각각 2621억원과 1895억원이었다. 퇴직연금 수수료는 2019년엔 9996억원, 2018년에는 8860억원이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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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수수료율은 0.42%였다. 2019년 0.45%, 2018년 0.47%보단 낮아졌지만 퇴직연금 적립금이 매년 증가하면서 수수료의 절대 금액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퇴직연금은 특히 장기로 운용하는 데다 납입 금액이 아니라 총 자산에 부과하므로 10~20년 간 누적되는 수수료는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원리금보장형 상품은 사실상 정기예금과 다를 바 없는데도 운용 명목으로 수수료를 떼 간다. 정기적으로 가입자에게 수익률 공지 및 상품을 추천해 준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증권사를 중심으로 IRP 수수료 면제 바람이 불고 있다. 삼성증권이 4월 IRP 수수료를 전액 면제하는 비대면 상품을 선보이자 이후 미래에셋증권·유안타증권·신한금투·KB증권이 수수료 면제에 나섰다. 2017년 IRP 가입 대상이 자영업자 등으로 확대되면서 은행권이 벌였던 수수료 인하 경쟁이 다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시 하나은행은 은행권 최초로 IRP 수수료를 인하했고, 신한은행은 IRP 계좌에서 수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수수료를 면제한다는 파격적인 정책을 내놓은 바 있다.

증권사발 수수료 면제 바람은 다른 업권으로도 확산할 조짐이다. 주식시장 활황세 덕에 증권사의 IRP, DC형 수익률이 다른 업권에 비해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증권사의 IRP 비중도 눈에 띄게 커지고 있다. 2019년 말 20%였던 IRP 시장 내 증권사의 비중은 지난해 21.9%까지 높아졌다. 적립금도 5조773억원에서 7조5485억원으로 48.67%나 늘었다. 같은 기간 은행권 IRP 적립금은 35.57% 증가했다.

시장에선 금융당국이 퇴직연금 수수료 부과 기준을 관리·감독하고 수수료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IRP를 제외하고 퇴직연금 수수료는 사용자(기업)가 부담하지만 그로 인한 손해는 결국 직장인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일수록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크기 때문에 수수료율이 낮고, 중소기업은 적립금 규모가 작아 수수료율이 높은 편이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28일 논평을 통해 “연금 가입자들이 금융기관과 관련 상품을 자율적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사실상 막혀 있어 과다한 수수료율 개선을 요구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수수료 대폭 내리고 정부는 연금 운용 감독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금융당국이 퇴직연금 수수료 부과 체계에 대한 관리, 수수료 인하 정책을 펼치기엔 법적 근거가 없다. 국회에선 최근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퇴직급여법)에 수수료의 부과 수준 및 기준 등을 담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 논란으로 처리가 요원한 상태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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