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고수익률 욕심 접고 펀드에 장기 투자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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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0호 11면

[SPECIAL REPORT]
봉급쟁이 울리는 퇴직연금

주요 선진국의 퇴직연금은 주식형 자산 비중이 50% 내외인 데 반해 우리나라의 DC형과 IRP의 주식형 자산 비중은 8%에 그친다. 주식형 자산을 편입할 때는 시장수익률을 목표로 하는 게 좋다. 사진은 11일 오전 서울 하나은행 딜링룸. [뉴스1]

주요 선진국의 퇴직연금은 주식형 자산 비중이 50% 내외인 데 반해 우리나라의 DC형과 IRP의 주식형 자산 비중은 8%에 그친다. 주식형 자산을 편입할 때는 시장수익률을 목표로 하는 게 좋다. 사진은 11일 오전 서울 하나은행 딜링룸. [뉴스1]

퇴직연금은 어떻게 운용해야 할까? 퇴직연금을 운용하려면 먼저 세계 주요국의 퇴직연금 등 연기금 운용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401K(미국의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제도)는 2019년 말 기준 주식형 펀드 59%, 혼합형 28%, 채권형 11%, MMF 2% 등 주식 비중이 60~70%에 달한다.

‘노후 자금’ 설계 가이드 #DC형·IRP도 거의 원금보장 상품 #실적배당 주식형펀드 비중 8%뿐 #맞춤형 자산 배분, 주식군 선택 #세제 혜택 개인연금도 확충해야

영국의 퇴직연금 역시 국내 주식 16%, 해외 주식 29%, 부동산 8%로 위험자산 비중만 53% 이상이다(UBS, 2017년). 호주는 국내 주식 23%, 해외 주식 23% 그리고 대체투자 19%로 위험자산 비중이 65% 이상(ASFA Statics, 2017년)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도 2020년 5월 말 현재 국내 주식 17%, 해외 주식 22%, 대체투자 12%로 위험자산 비중이 약 51%에 이른다.

그런데 우리나라 퇴직연금의 운용 현황을 들여다보면 이와는 큰 차이가 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말 상품유형별 수익률은 원리금보장형 1.68%, 실적배당형 10.67%로 둘 사이 수익률 격차가 확대됐다고 한다. 수익률만 놓고 보면 DC(확정기여)형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이 매우 좋은 성과를 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DC형의 실적배당형 비중은 16.7%, IRP도 26.7%에 불과했다.

실적배당형 상품은 펀드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집합투자증권이 대부분(89%)이다. 금액 기준으로는 채권형 펀드 13조9000억원, 주식(혼합)형 펀드 8조6000억원이다. 더구나 DB(확정급여)형을 제외하면 실제 DC형과 IRP의 주식(혼합)형펀드 평가금액은 약 7조9000억원에 불과하다. DC형·IRP 총 평가액 101조6000억원 중 약 8%에 해당한다. 실적배당형 상품의 수익률이 아무리 높아도 비중이 낮아서 가입자가 수령할 연금은 거의 증가하지 않는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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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형과 IRP는 가입자 스스로 적극적으로 운용하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부족한 은퇴자금을 보완하라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다. 그러나 현실은 대부분 원금보장형이나 그와 유사한 저수익 자산군에 배분돼 있다. 주요 선진국 퇴직연금과 국민연금이 50% 내외의 주식형자산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DC형과 IRP를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무작정 주식 비중을 늘리라는 얘기가 아니다. 나에게 적합한 비중을 찾기 위해선 연금시장에서 인기 있는 펀드 중 하나인 ‘TDF(Target Date Fund)’를 참고할 만하다. 은퇴 시점을 목표 시점으로 주식 등 위험 자산의 비중을 점차적으로 축소함으로써 위험을 관리하는 자산배분형 펀드다. 그래서 모든 TDF는 펀드 이름에 연도가 포함돼 있고, 대부분 5년 단위로 구성돼 있다. 예컨대 2040년이 은퇴 시점인 사람은 펀드명에 2040이 포함돼 있는 펀드의 위험자산 비중이 적합하다.

자산운용사가 운용 중인 TDF는 은퇴시점까지 운용기간이 12~13년 이상 남아있는 경우 주식 비중이 매우 높다. 장기투자로 인해 가격 변동(하락)의 위험이 매우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퇴시점이 다가올수록 주식 비중은 점점 줄어든다. 물론 무조건 TDF를 편입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자산배분에는 어떤 기준이 필요한데, 주식 비중에 대한 가이드를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방법으로 TDF를 참조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자산 배분이 마무리되면 다음은 주식이라는 자산군에 무엇을 편입할 것인가가 남는다. 이미 수많은 포트폴리오 이론과 실증 결과는 장기적으로 시장수익률을 초과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전문가인 펀드매니저조차 시장수익을 초과 달성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매일 생업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초과 수익을 장기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요컨대 투자는 장기로, 장기투자는 시장수익률을 추종하는 것이 아주 간단하고도 현실적인 방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부적인 편입 상품은 시장 전체를 추종하는 ‘인덱스펀드’와 지수 관련 ‘상장지수펀드(ETF)’ 등이 적절하다. 실행 방법이 어려우면 달성 가능성도 떨어진다. 퇴직연금은 장기투자로 시장수익률을 달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시장에 대한 불필요한 두려움도 문제지만 시장수익율을 초과 달성하겠다는 욕심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근로기간이 매우 길고 꾸준히 투자한다면, 퇴직연금은 매우 큰 노후자금이 된다.

하지만 운용을 잘 해도 매년 급여의 8.3%를 적립하는 퇴직연금만으로 충분한 노후자금을 마련할 수는 없다. 물론 우리에게는 크든 작든 국민연금이 존재한다. 그 밖에 순수한 자기 의지로 준비 가능한 개인형 IRP와 연금저축계좌가 있다. 물론 연금보험도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국가, 기업, 개인이라는 3층 구조로 노후자금을 준비한다. 우리도 그렇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이 그것이다. 하지만 1층(국민연금)과 2층(퇴직연금)으로는 미흡하다 것이 문제다. 개인연금이 지금보다 대폭 확충돼야 한다. 이를 위해 세제 혜택과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지만 퇴직연금과 마찬가지로 갈 길이 멀다. 물가상승률을 이기지 못하는 원금보장형과 채권형 자산에 대부분의 개인연금이 몰려 있다. 시간과 전문성, 정보 등이 부족한 개인이 스스로 운용해야 한다. 장기투자 그리고 시장수익률 추구라는 보다 달성 가능성이 높은 안정적 운용을 통해 개인 스스로 자신의 노후를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배현기 ㈜웰스가이드 대표
서울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장기신용은행 연구원을 거쳐 기획예산처 등에서 근무했다. 하나금융지주에서 전략 실무를 총괄했으며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모바일 연금자문회사 웰스가이드를 설립해 ‘좋은 사회를 위한 금융’이라는 미션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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