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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글이 이래” vs “왕도 칭송한 문장”…논란 부른 18세기 베스트셀러 작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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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0호 21면

천하제일의 문장. 하지영 지음. 글항아리

고 김영택 화백이 그린 세계건축문화재 펜화 기행 중 하나인 '진주성과 촉석루.' 촉석루에는 18세기 명문장가 신유한의 '촉석루에 제하다(題矗石樓)' 글귀가 기둥마다 걸려 있다. [중앙 포토]

고 김영택 화백이 그린 세계건축문화재 펜화 기행 중 하나인 '진주성과 촉석루.' 촉석루에는 18세기 명문장가 신유한의 '촉석루에 제하다(題矗石樓)' 글귀가 기둥마다 걸려 있다. [중앙 포토]

글이 대체 왜 그런가.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단정한 송문(宋文)과 다정한 당시(唐詩)를 따르던 18세기 조선 문인들은 그의 문장을 보고 불편해한다. 형식이 난해했지만, 영조도 인정한 명문장가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맞버틸만하다’는 『해유록』을 남긴 신유한(1681~1748)에 대한 당시 세평이 그러했다.

형식은 당시 흐름 따르지 않아 비판 받아 #내용은 책 목판 닳아 부서질 정도로 인기

18세기 조선 문단에 큰 그림자를 드리운 신유한은 지금의 우리에게 낯설다. 더욱이, 책에는 한시(漢詩)가 즐비하지 않은가. 하지만 저자는 미국과 일본의 자료까지 뒤져 신유한이라는 인물을 해체한다. 방대한 자료를 통해 한시의 뜻과 배경을 쉽게 내준다. 대신, 사람 이야기에 빠지게 만든다. 문인을 다루되, 인(人)에 방점을 찍는다.

신유한은 일찍부터 문장이 뛰어났다. 영조가 신하들이 밀담을 주고받는 걸 보고 “뭘 수군거리느냐”고 물어봤다. 진주 촉석루에서 쓴 신유한의 시가 베스트셀러처럼 회자될 때였다. 영조는 그 자리에서 “신유한은 정말 문장을 잘하는 자다”고 칭송했다.

진주 촉석루에는 신유한이 읊은 '촉석루에 제하다(題矗石樓)'의 글귀가 주련으로 달려있다. 진양성 밖 강물은 동쪽으로 흐르고/대숲 난초 푸르게 모래섬 덮었네/천지엔 충성 다한 삼장사가 우뚝하고/강산엔 나그네 붙드는 높은 누각 솟아있네/따뜻한 날 병풍치고 노래하니 숨은 용 춤추고/병영 막사에 서리 내리니 졸던 가마우지 걱정스럽네/남쪽 하늘가 바라보니 전운 사라지니/장단의 음악 소리 봄놀이 같구나(晉陽城外水東流/叢竹芳蘭綠映洲 天地報君三壯士/江山留客一高樓/歌屛日暖潛鮫舞/劍幕霜侵宿鷺愁/南望斗邊無戰氣/將壇??半春遊). [중앙포토]

진주 촉석루에는 신유한이 읊은 '촉석루에 제하다(題矗石樓)'의 글귀가 주련으로 달려있다. 진양성 밖 강물은 동쪽으로 흐르고/대숲 난초 푸르게 모래섬 덮었네/천지엔 충성 다한 삼장사가 우뚝하고/강산엔 나그네 붙드는 높은 누각 솟아있네/따뜻한 날 병풍치고 노래하니 숨은 용 춤추고/병영 막사에 서리 내리니 졸던 가마우지 걱정스럽네/남쪽 하늘가 바라보니 전운 사라지니/장단의 음악 소리 봄놀이 같구나(晉陽城外水東流/叢竹芳蘭綠映洲 天地報君三壯士/江山留客一高樓/歌屛日暖潛鮫舞/劍幕霜侵宿鷺愁/南望斗邊無戰氣/將壇??半春遊). [중앙포토]

일본 고베시립박물관에 있는 '조선통신사 내조도.' 신유한은 1719년 조선통신사의 제수관 역할로 일본을 방문해 현지 문사들과 교유했다. 신유한이 일본 방문 뒤 쓴 '해유록'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기행문의 쌍벽을 이룬다는 평을 받는다. [사진 글항아리]

일본 고베시립박물관에 있는 '조선통신사 내조도.' 신유한은 1719년 조선통신사의 제수관 역할로 일본을 방문해 현지 문사들과 교유했다. 신유한이 일본 방문 뒤 쓴 '해유록'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기행문의 쌍벽을 이룬다는 평을 받는다. [사진 글항아리]

그의 문집 『청천집』은 목판이 닳아 부서질 정도로 출간됐다. 일본 문사들과 교유할 조선통신사 일행으로 가서는 7개월간 6000여 수의 시문을 만들어냈다. 일본 문인들이 당시 그의 숙소 앞에서 장사진을 쳤다고 한다. 하지만, 영조는 반전의 발언을 했다. “그런데, 사람이 좀 거칠더라”고. 왜 그랬을까.

신유한은 문과 장원급제를 했으나, 출세가 막혔다. 영남 궁벽한 곳의 서얼 출신이라는 게 발목을 잡았다. 저자가 ‘시문에는 냉소와 좌절이 묻어난다’고 한 이유다. 하지만, 그 이유는 약자에 대한 연민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지방 수령으로 겉돌면서도 백성을 구휼하는 데 앞장섰다.

일본 나고야성박물관에 있는 신유한 친필. [사진 글항아리]

일본 나고야성박물관에 있는 신유한 친필. [사진 글항아리]

글항아리에서 출간한 '18세기 개인의 발견' 시리즈. 신유한(천하제일의 문장), 조귀명(나만이 알아주는 나), 이용휴(기이한 나의 집), 유한준(저마다의 길, 이상 왼쪽부터)을 다룬다. [사진 글항아리]

글항아리에서 출간한 '18세기 개인의 발견' 시리즈. 신유한(천하제일의 문장), 조귀명(나만이 알아주는 나), 이용휴(기이한 나의 집), 유한준(저마다의 길, 이상 왼쪽부터)을 다룬다. [사진 글항아리]

이 책은 ‘18세기 개인의 발견’ 시리즈 중 제1권이다. 시리즈는 조귀명(2권 『나만이 알아주는 나』), 이용휴(3권 『기이한 나의 집』), 유한준(4권 『저마다의 길』)도 다룬다.

독보적 문장을 개척했다는 조귀명은 왜 자신의 문집에 서문(추천사)도 받지 못했을까. 재야의 명문장가 이용휴에게는 왜 속물과 진보라는 두가지 평가가 내려졌을까. 나와 남의 길을 긍정하고자 한 유한준은 왜 생전에 스스로 묘비명을 썼을까. 네 권이 같은 날 출간됐다. 역시 현재 우리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당시 지배적 가치관에 반하면서도 변화를 통해 자신만의 문장 세계를 구축한 인물을 다룬다. 네 권 모두 '사람 이야기'에 맞춰, 쉽고도 흥미진진하게 풀고 있다. 몰랐던 이들을 알게 되는 지적 만족감이 팽팽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신유한의 '청천집.' 18세기 베스트셀러로, 목판이 닳아 부서질 지경이었다. [사진 글항아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신유한의 '청천집.' 18세기 베스트셀러로, 목판이 닳아 부서질 지경이었다. [사진 글항아리]

신유한의 문장은 당시 읽기 어려웠다. 시대와 다른 길을 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여러 사람의 비방이 있었다. 문장이 그를 입신하게 했고, 좌절하게도 만든 셈. 손명래(1644~1722)가 신유한을 옹호한다. "시대에 따라 문장은 변하기 마련이네." 답습과 허례에 안주하면 무너지는 오늘날, 더욱 사무치는 답안이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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