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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쓰러진 한 아이…” 운명 예감 이한열 ‘시참’에 전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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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0호 24면

시로 읽는 세상 

‘한열이를 살려내라’란 문구가 적힌 판화 조형물. [뉴스1]

‘한열이를 살려내라’란 문구가 적힌 판화 조형물. [뉴스1]

무심코 한 말이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를 두고 ‘말이 씨가 된다’고 한다. 이때 말과 사실 사이에는 뚜렷한 논리의 고리가 없다. 공교롭고 기막힌 우연의 개입이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그렇기만 할까. 씨가 되는 말은 말한 이의 성격과 습벽, 그가 처한 특별한 형편과 어떤 관련이 있지 않을까.

이한열 ‘비망록’ #최루탄 맞아 숨진 ‘6월 항쟁’ 암시 #윤동주 ‘참회록’ #운석 밑을 걷는 ‘슬픈 사람’ 묘사 #김수영 ‘이상한 도적’ #시구처럼 ‘마흔 여덟’에 세상 떠나 #기형도 ‘정거장에서의 충고’ #‘누추한 육체 …’ 조로·우울증 가득

시에도 이런 일이 있다. ‘시참(詩讖)’이 그것이다. 별생각 없이 적은 내용이 뒷일과 일치하는 현상을 말한다. 일신을 점할 운세가 자기도 모르게 누설되는 셈인데, 물론 인과관계는 찾기 어렵다. ‘참’자에는 ‘예언’이란 뜻이 있고 예언의 논리란 짐작이다. 그러나 시참은 짐작을 사실로 만들어 주는 정신의 신비를 암시한다. 정민 교수의 『한시 미학 산책』에서 두 편을 옮겨 본다.

 가지는 지나는 새 마중을 하고(枝迎南北鳥)
 잎새는 오가는 바람 배웅하누나(葉送往來風)

이 두 줄은 옛날 중국의 소녀 설도가 지은 것이고,

 늙은이 머리 위에 내린 흰 눈은(老人頭上雪)
 봄바람 불어와도 녹지를 않네(春風吹不消)

다음 두 줄은 선조 때 문인 우홍적이 일곱 살에 지은 시구라 한다. 앞의 시에서 “가지”와 “잎새”는 “새”와 “바람”을 맞아들이고 떠나보낸다. 다 인간의 비유들이다. 뒤의 시에서 어린 시인은 어째선지 늙음에 집착해 삶의 근심과 노쇠의 힘을 천진하게 읊는다. 설도는 나중에 기생이 되었고 우홍적은 요절했다. 정 교수의 해설을 줄여 적었다.

이들은 모르는 새 제 앞날을 예언한 셈이다. 누가 들려줘서 받아 적었다고도, 보이지 않는 손이 적어 주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시에도 시참의 사례들이 있다. 스물아홉에 순사한 윤동주의 시에는 자기 생의 비극적 결말에 대한 예감이 역력히 배어난다. ‘서시’의 소망과 다짐, ‘별 헤는 밤’의 부끄러움과 의지의 갈피들에서, 특히 ‘참회록’의 숙연한 결구에서 그러하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우러렀던 별은 “운석”으로 떨어지고, 화자는 운명에 이끌리듯 어두운 미래의 하늘 밑을 걸어간다. 그를 억누른 것이 벌거벗은 폭력의 시대였다 하더라도 윤동주가 순교적 열정에 싸여 자신의 죽음을 향해 곧장 나아갔다고 볼 순 없다. 앞날의 비극은 전면적 억압 아래서의 소극적 저항, 내면의 보존을 위한 다짐 속에 어렴풋이 예감되었을 것이다.

김수영의 경우는 더 암시적이어서 섬뜩하다. ‘이상한 도적’(1953)이란 시의 화자는 “기진맥진하여서 술을 마시고” 취한 채로 어느 여관에 들어가서는, “내가 임종하는 곳이 이러할 것이니 하는 생각이 불현듯이 든다”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르는 이들과 또 술을 마신다. 시의 허리 부분이다.

 그 중 끝의 방문을 열고 보니 꺼먼  사람이 셋이나 앉았다
 얼굴은 분간할 수도 없는데
 술 한 병만이 방 한가운데
 광채를 띄우고 앉아 있다
 나는 의치를 빼서 호주머니에 넣고 앉자
 선뜻 인사를 하고
 (…)
 나이를 물어보기에 마흔여덟이라고 하니 그대로 곧이 듣는다

“꺼먼 사람”들의 얼굴은 가려져 있고 술병만 빛을 받는 어두운 실내다. 이들은 누구일까. 알 수 없지만 불길하다. 틀니를 뺀 제 모습을 두고 한 취중 농담이겠지만, 시인과 방불한 화자는 왜 하필 나이를 “마흔여덟”이라고 했을까. 김수영은 1968년 마흔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내 희망을 감시해 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정거장에서의 충고’

윤동주의 시가 비감하고 김수영의 시가 기이하다면, 기형도의 다수 시편들은 위에 보이듯 조로와 우울의 증세를 띤다. 생은 불안하고 젊은 몸은 뜻밖에 “누추하”다. 그는 이 시의 첫 행에서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고 적었지만, “내 나이와는 무관한 슬픔들”을 느끼고 그것이 “내 몫이 아니어서 고통스”(‘노인들’)러운, 이상한 예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이 늙음이 물론 시의 젊음이었지만.

기형도는 1988년에 광주의 망월 묘역에 갔다가 이한열의 어머니를 만난 적이 있었다. “한열이 학교 선뱁니다” 인사하고, 음료수 캔을 사서 건네기도 한다(‘짧은 여행의 기록’). 그런데 서성란 작가의 책 『이한열-나의 행동이 너를 부끄럽지 않게 하기를』에는 시인 이한열이 나온다. ‘비망록’이란 시다.

 어스름한 한밤에
 목말라 목이 말라
 여름에 지쳐
 주저앉은 한 아이 있었네.

 온몸에 문신을 새긴
 지친 아이였었네.
 ‘아, 살아야 한다!’

 목말라 목이 말라.
 여름에 쓰러진
 한 아이
 그 옆에 서 있는 깊은 우물

 (…)

 비망록 마지막 페이지 첫째 줄
 빨갛게 그어진 주검

이한열은 1987년 6월 9일 시위 도중 경찰의 최루탄을 맞고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가, 다음 달 5일에 숨졌다. 우리는 “한 아이”와 “여름에 쓰러진”과 “주검”을 보며 그 자신의 운명이 예견된 듯한 느낌에 전율하게 된다. 그는 개인적 행복과 ‘운동’의 대의 사이에서 고심하던 청년이었다. 이 시는 그 고심의 깊이와 절실함을 웅변해 준다.

시참의 목소리를 더듬어 본 것은, 시인이 시를 쓴다기보다 시가 시인을 통해 발설된다거나 ‘시가 시인의 ‘비망록’을 쓴다’는 사실을 확인해 본 것과 같다. 이분들은 각자의 어둠과 싸우며 시적 무의식에 몸을 내주었을 것이다. 모두 불의의 죽음을 맞았는데 또 공교롭게 같은 학교를 다녔다. 이 글은 연세대 교정을 거닐며 쓴다. 오월에서 유월로, 계절이 뜨겁게 이동하고 있다.

이영광  시인·고려대 교수
시인·고려대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 시집 『끝없는 사람』 『깨끗하게 더러워지지 않는다』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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