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10명 중 6명 무관심, 연평균 수익률 2%대 ‘16년째 낮잠’

중앙선데이

입력 2021.06.12 00:02

업데이트 2021.06.12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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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0호 08면

[SPECIAL REPORT]
봉급쟁이 울리는 퇴직연금

직장인들이 퇴직연금에 대한 관심·이해도를 높여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스1]

직장인들이 퇴직연금에 대한 관심·이해도를 높여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스1]

#직장인 최모(42)씨는 최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100lifeplan.fss.or.kr)에 자신의 퇴직연금 현황을 조회했다가 깜짝 놀랐다. 예상 수령액을 조회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수익률을 따져보니 제2금융권 적금 금리에도 못 미치는 연평균 1%대 중반 수준이었다. 최씨는 “퇴직연금을 은퇴 직전에나 신경 쓸 노후 자금으로 여겨 회사에 맡기고 잊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재테크 관점에서 진작 신경 쓸 걸 그랬다”고 말했다. 최씨는 자신의 퇴직연금이 기대 수익률이 낮은 확정급여(DB)형이라는 사실도 이제서야 알았다.

작년까지 쌓인 퇴직연금 255조
선진국과 달리 안전한 DB형 선호
직접 운용 DC형·IRP 40%도 안 돼
기업선 “손실 땐 문책만” 소극적

초년생, 연봉 상승 기대되면 DB형
임금피크 전후 땐 DC형·IRP 유리
은퇴 맞춰 포트폴리오 조정 TDF도

#또 다른 직장인 국모(51)씨는 근래 들어 퇴직연금에서 10% 초반대의 쏠쏠한 수익률을 얻고 있어 기분이 좋다. 국씨는 “이직한 회사 인사팀에서 확정기여(DC)형을 추천하고 선택권을 줘서 가입하고 계속 유지 중”이라며 “지난해 가입 금융사의 퇴직연금센터 창구에서 추천받은 방법대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부터 깔고, 공부해서 직접 주식·채권 등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더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2005년 정부는 기존의 퇴직금 제도에 연금 기능을 강화한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했다. 근로자가 퇴직할 때 적립금을 연금으로 받으면서 노후 대비를 수월하게 하도록 하고, 기업 등 고용주(사용자)가 폐업·파산 등으로 퇴직금 지급을 못하는 상황에 대비한다는 취지였다. 이에 가입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말까지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은 총 255조5000억원으로 불어났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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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를 통한 투자 수익률은 연평균 2%대에 그치고 있다(2013~2019년 7개년 연평균 수익률 2.27%, 지난해는 2.58%). 특히 최씨와 국씨 사례처럼 가입자 개인이나 사용자가 얼마나 적극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수익률이 크게 달라질 수 있어, 더는 퇴직연금을 사회적 무관심의 대상으로 방치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퇴직연금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DB형과 DC형, 그리고 개인형 퇴직연금(IRP)이다. DB형은 사용자가 퇴직급여를 사전에 확정하고 퇴직연금 운용사에 맡겨 운용하는 경우다. 투자 손실이 발생해도 회사가 확정한 금액은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다. DC형에 가입하면 사용자가 근로자의 개인 계좌에 부담금을 납입한 후, 근로자가 직접 운용사 상품을 선택해 운용할 수 있다. 단, 손실이 발생해도 고스란히 근로자 본인이 감수할 몫이 된다. IRP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 2012년 개정되면서 새로 도입됐다. 개인이 직접 가입해 자율로 운용할 수 있으며 연간 최대 1800만원 납입이, 700만원까지 세액 공제가 각각 가능하다. DB형과 DC형에서 퇴직급여 또는 중간 정산금을 받아야 가입할 수 있다.

호주와 미국 등 선진국들은 이 가운데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DC형이나 IRP 중심의 퇴직연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개인이 퇴직연금 운용 재량을 가지면 이들의 상품 가입은 물론, 해지와 경쟁사로의 이동 가능성까지 빈번하게 신경 써야 하는 운용사들로서는 수익률에 중점을 둔 다양한 상품을 준비하는 데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은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에서 이런 DC형과 IRP 비중이 지난해 말 총 40%에도 못 미쳤다. 60.2% 비중을 차지한 DB형의 지난해 수익률은 평균 1.91%로 DC형(3.47%, IRP특례 포함)이나 IRP(3.84%)보다 크게 낮다.

국내에 유독 DB형 적립금이 많은 이유는 사용자들이 근로자 개인의 수익률 제고엔 별 관심이 없이 운용의 안전성을 선호해서다. DB형을 운용하는 한 기업 담당자는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수익률을 높여보겠다고 괜히 잘못 나섰다가 손실을 입으면 회사로부터 문책만 받는다”면서 “안전성이 좋은 DB형을 선호할 수밖에 없으며, 다른 선택의 기회를 직원들에게 안 줘도 여태 문제가 없었다”고 전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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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대로 정작 개인들이 퇴직연금에 무관심한 것도 작용 중이다.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의 올해 설문조사에서 30~59세 직장인 1000명의 퇴직연금에 대한 이해도는 400점 만점에 190.5점으로 낙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퇴직연금의 위험자산 투자 한도, 투자 가능 상품을 묻는 문항에선 정답률이 각각 17.3%, 28.1%에 그쳐 운용 관련 지식이 매우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른 설문조사에선 직장인의 60%가량이 퇴직연금을 투자에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DB형의 비중이 60%를 넘는, 선진국 대비 이례적인 퇴직연금 시장 구조가 고착화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DB형이 개인 입장에서 꼭 나쁜 선택지인 건 아니다. 직접 자산 운용에 도전할 시간적 여유나 금융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20~30대 사회 초년생이라면 DB형으로 회사에 맡겨 안전성을 추구하는 게 나을 수 있다. 40~50대라도 재무적으로 탄탄하고 연봉 상승폭이 가파른 회사에 다닌다면 DB형에 의지할 만하다. 또 장기근속을 염두에 둔 회사라면 DB형이 유리하다. 이와 반대인 경우, 그리고 임금피크제 적용이 가까워졌거나 승진 기회가 적은 고(高)직급의 근로자라면 DC형을 통한 적극적 투자와 수익률 제고에 도전할 만하다. 여기에 평소 노후 대비책이 불충분하다고 느꼈던 40~50대라면 IRP를 주목할 만하다. 특히 자영업자와 공무원연금 가입자는 IRP 가입이 가능하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DB형과 달리 DC형과 IRP는 무주택자가 주택 구입을 위해 필요한 경우 등 특정 사유를 충족했을 때 법적으로 중도 인출이 가능하다는 이점도 있다.

단, DC형 가입 시엔 주의할 점이 있다. 퇴직연금 상품은 은행의 예·적금이나 금리 확정형 보험 등 안전자산 위주로 운용되는 ‘원리금 보장형’과, 주식·채권형 펀드 등에 공격적으로 투자되는 ‘실적 배당형’으로 나뉜다. 그런데 현행법상 DC형은 가입하고서 금융사에 따로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기대 수익률이 높은 실적 배당형이 아닌 원리금 보장형으로 금융사가 운용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DC형 가입자의 83%가 1년 동안 한 번도 포트폴리오 변경을 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금융투자협회)된 적이 있었을 만큼 가입자가 관심을 두지 않는 상황에서 자동으로 원리금 보장형으로 운용된 경우가 많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각 운용사가 제공하는 맞춤형 서비스를 잘 활용할 필요도 있다. 대표적인 게 가입자의 은퇴시기에 맞춰 자동으로 포트폴리오 조정을 해주는 타깃데이트펀드(TDF)다. 생애주기별 케어의 개념으로 가입자가 젊을 때인 운용 초기엔 적극적으로 위험자산에 투자해 수익률 제고를 노리고, 은퇴가 가까워지면 안정적으로 자산을 배분하는 식으로 수익성과 안전성 사이의 균형을 도모해준다. 김은혜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연구원은 “수익률이 중요하긴 하지만 퇴직연금 특성상 포트폴리오에 위험자산만 집중적으로 담기보다는 안전자산도 고르게 담는 게 좋다”며 “위험자산 투자 비중이 고민될 경우 숫자 100에서 본인의 나이를 뺀 값 정도로 (비중을) 정하는 걸 추천한다”고 덧붙였다. 55세의 가입자라면 위험자산 비중은 45%, 35세라면 65% 정도가 좋다는 설명이다.

미국 9.5% 호주 8.9%, 한국의 4배 수익률…“한국은 원리금 보장형 지나치게 많아”
퇴직연금 제도를 운영 중인 선진국들은 일찍부터 수익률 제고에 힘썼다. 호주와 미국이 대표적이다. 두 나라는 수익률 제고에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 확정급여(DB)형 위주의 퇴직연금 시장을 형성한 한국과 달리, 기대 수익률이 높은 확정기여(DC)형과 민간 주도에 초점을 맞춰 제도를 꾸렸다. 개인에게 퇴직연금의 운용 재량을 주고, 금융사들을 경쟁시킬수록 수익률이 높아져 노후 보장에 보탬이 된다고 봤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는 실제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국가별로 집계된 2013~2019년 7개년 퇴직연금 연평균 수익률을 보면 미국은 9.49%, 호주는 8.87%였다. 같은 기간 한국은 2.27%였다.

호주는 1992년 ‘슈퍼애뉴에이션’(Superannuation) 제도를 도입했다. 고용주(사용자)가 근로자 급여의 9% 이상을 의무적으로 적립하되, 소매형·기업형·공공 등의 기금 유형은 전적으로 근로자가 선택해서 투자하도록 했다. 같은 유형 내에서도 직종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 특화한 상품을 고를 수 있어 퇴직연금 운용사 간 상품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다. 호주 전체 근로자의 95% 이상이 여기에 가입해 있다.

2013년부터는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라는 제도적 뒷받침에도 나섰다. DC형을 운용하는 100개 이상 연기금의 가입자가 일정 기간 스스로 자산 운용을 하지 않아도, 의무적으로 해당 연기금이 지정한 상품에 자동 가입돼서 투자가 진행된다. 금융 지식이 적거나 가입 초기에 포트폴리오를 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가입자라도 수익률 제고 경쟁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1981년 ‘401K’ 제도를 도입하고, 2009년부터는 모든 근로자가 자동 가입하도록 했다. 마찬가지로 근로자가 운용사에 운용 방법을 직접 지시하며, 미 노동부는 위험성과 안전성 사이 균형을 고려해 타깃데이트펀드(TDF)를 401K의 기본 옵션으로 제시하고 있다. 401K로 100만 달러 이상의 연금 자산을 축적한 미국 내 가입자 수만 지난해 3분기 26만2000명에 달했을 만큼 성공적인 제도로 평가된다(피델리티자산운용 집계).

두 나라와 일본·영국·스위스·캐나다·네덜란드 등 퇴직연금 선진국 7곳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 투자 비율이 지난해 말 기준 30~60%로 한국(89.3%)만큼 절대적이지 않다. 신윤현 윌리스타워스왓슨 투자부문 대표는 “한국은 DC형 비중이 낮을 뿐 아니라 원리금 보장형 상품이 지나치게 많다”고 했다. 노르웨이도 연간 전체 퇴직연금 운용 자산의 60%가량을 국내외 주식에 투자할 만큼 수익률 제고에 적극적이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1998~2018년 20년간 선진국들은 주식(41%)과 채권(31%), 대체투자(26%) 등의 순으로 퇴직연금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태생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금융사들이 퇴직연금 분야에서도 열심히 경쟁하는 체제를 만들어줘야 개인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며 “퇴직연금 가입자 유치 경쟁만 존재하고 수익률 경쟁엔 소극적인 한국으로선 호주와 미국 등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해 제도와 사회 분위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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