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몸 망가져 진짜 ‘허당’…전쟁 안 하니 표정은 밝아져”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740호 25면

[스포츠 오디세이] ‘예능 대통령’ 넘보는 허재

‘농구 대통령’이 예능까지 접수하려는 기세다. ‘TV만 켜면 허재가 나온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빛났던 농구 스타 허재(56)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완전히 망가진 ‘허당’의 모습으로 웃음과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1000개 하던 줄넘기 한 개도 ‘헉헉’ #꾸밈없는 모습에 시청자들 좋아해 #방송은 신입, 경쟁 신경 안쓰고 즐겨 #유재석·신동엽 등 잘 알아 불편 없어 #스타 안 보이는 한국농구 안타까워 #슛 연습 등 남보다 두 배 노력해야

2018년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끝으로 코트를 떠난 허재는 스포츠 레전드들의 조기축구 도전기 ‘뭉쳐야 찬다’(JTBC)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이어진 농구 예능 ‘뭉쳐야 쏜다’에서는 ‘상암 불낙스’ 감독을 맡고 있다.

허재 감독은 “전쟁같은 농구를 안 하니까 표정이 훨씬 편안해졌다”며 웃었다. 전민규 기자

허재 감독은 “전쟁같은 농구를 안 하니까 표정이 훨씬 편안해졌다”며 웃었다. 전민규 기자

은퇴 후 10년간 프로농구 전주 KCC 감독을 맡았던 허재는 지금도 ‘허 감독’이라고 불리는 걸 좋아한다. 서울 남산 자락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허 감독을 만났다.

2018년 대표팀 감독 사임 후 방송 입문

가장 신경 쓰이는 프로는 역시 뭉쳐야 쏜다인가요?
“그렇죠. 농구인이기 때문에 시청률이 떨어지면 나 때문에 떨어지는 것 같고요. 찬다(뭉쳐야 찬다)에서 쏜다(뭉쳐야 쏜다)로 편성이 연결됐을 때 사실 부담감이 컸어요.”
뭉찬에서 “그거선(그것은) 아니지”라는 유행어를 히트시켰는데요.
“평소 술 먹으면서 자주 했던 말이라 무심코 나왔는데 유행어가 됐네요. 예능 하면서 ‘어떻게 해 보겠다’ 이런 건 없어요. 있는 자체로 나를 표현하면 되는 거고, 상대 말이나 행동에 대해 자연스럽고 리얼하게 리액션을 하다 보면 괜찮은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2003년 원주TG 시절 우승 확정 뒤 림의 그물을 자르는 허재.

2003년 원주TG 시절 우승 확정 뒤 림의 그물을 자르는 허재.

‘난 역시 예능은 안 돼’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나요?
“뭉찬 초반엔 축구 룰도 몰랐고, 골키퍼를 하면서 백패스를 손으로 잡아서 원망도 많이 들었어요. 워낙 허당 짓을 하니까 다른 프로에서도 섭외가 들어오는데 그때 잠깐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는 메이크업도 안 하고, 맨얼굴에 머리가 새집이 되든 말든 다녔거든요.”
그래서인지 유난히 얼굴이 벌겋게 나오는 경우가 많았죠.
“주위에서 ‘야 방송하는데 술 좀 먹지 말고 나가지’ 그래요. 난 진짜 안 먹었는데 믿지를 않는 거라. (안)정환이가 메이크업 샵도 소개해 줬어요. 매일 야외에서 선크림도 안 바르고 촬영하다 보니 얼굴이 익더라고요.”
예능을 한 뒤부터 표정이 밝아졌다는 얘기를 자주 듣죠?
“싸울 일이 없으니까요. 농구는 매일 전쟁이고 전투죠. 6개월 시즌 마치면 팀을 재정비해서 다음 시즌 준비하고 용병 구하러 다니고. 전쟁 끝나면 바로 다음 전쟁 준비하는 거죠. 그러잖아도 욱하고 성격 급한 놈이 매일 전쟁하고, 끝나면 속상하니까 소주 먹고, 그러니 인상도 성격도 변하더라고요. 얼굴이 시커멓고 찌들어 있으니까 ‘저러다 허재 죽을 것 같다’는 소리도 나왔어요.”
‘뭉쳐야 쏜다’에 함께 출연한 현주엽(오른쪽). [중앙포토]

‘뭉쳐야 쏜다’에 함께 출연한 현주엽(오른쪽). [중앙포토]

그러다가 예능을 시작했는데요.
“이 안에서도 경쟁이 있겠지만, 나야 프로로 따지면 갓 들어온 신입인데 그런 거 신경 쓸 필요가 없었죠. 마침 최고의 MC인 (유)재석이, (신)동엽이, (강)호동이, (서)장훈이 모두 어렸을 때부터 알던 동생들이니까 방송국 가도 큰 불편이 없었어요. 내가 못해도 이 친구들이 커버해 주니까 즐기면서 할 수 있었죠.”
“농구 대통령이 너무 망가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을 텐데요.
“그런 얘기가 한편으로 이해는 돼요. 그런데 허당이 되고 싶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운동을 진짜 못해요. 오십 중반인데 몸이 따라가지도 못하고 근육도 없고…. 심지어 줄넘기도 못해요. 옛날에는 이단 줄넘기를 한번에 500개, 1000개씩 했는데 지금은 하나 하기도 힘들어요. 하고는 싶은데 안 된다니까요.”
시청자들은 그런 걸 재미있어 하잖아요.
“그렇죠. 명색이 농구선수 출신인데 3점 슛 넣고 싶지 않아서 안 넣겠어요? 여기(어깨)가 아파서 던지고 싶어도 못 던지는데, 제작진들은 내가 못하는 부분이 재밌거든. 내가 음식을 해봤겠어요. 쉰 넘도록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잖아요. 주민센터나 은행에 가서 서류 떼 오는 것도 웅이엄마한테 시키기만 했죠. 핸드폰 스마트뱅킹도 이번에 처음 배웠어요.”
농구 레전드들이 예능으로 몰려가 버리면 소는 누가 키웁니까?
“사실 장훈이도 농구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겁니다. 어릴 때부터 한 거니까 농구에 정이 더 가는 거죠. 나나 장훈이나 가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서 못 가는 겁니다. 지금 프로농구 감독 중 (전)창진이 형, (유)재학이 형 빼고는 다 후배인데 그 자리 뺏을 수는 없죠.”

예능 초기엔 ‘내가 뭐하고 있나’ 생각도

JTBC 새 예능 ‘해방타운’ 제작발표회에 참석 한 허재(왼쪽 둘째). [중앙포토]

JTBC 새 예능 ‘해방타운’ 제작발표회에 참석 한 허재(왼쪽 둘째). [중앙포토]

농구 인기가 예전 같지 않고 스타도 안 나온다고 하는 말에 허 감독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팀마다 스타성을 갖춘 선수가 하나는 있어야 하는데 다들 실력이 고만고만해요. 어쩌다 농구장 가면 막판 10점 이상 이기던 팀이 잠깐 화장실 갔다 온 사이에 역전당하는 경우가 많죠. ‘저건 아닌데’ 싶은 플레이가 자꾸 나오니까  농구가 쫀득쫀득한 맛이 없는 거죠. 그러다 보니 팬층이 줄어들고, 그게 제일 안타까워요.”

국내 스타 선수가 안 나오는 이유로 외국인 용병을 꼽지 않을 수 없는데요.
“10개 프로팀이 용병 두 명을 얼마나 잘 뽑느냐가 그해 성적을 좌우하고, 국내 선수가 용병 서포터 역할로 전락한 건 오래됐습니다. 국내 선수들이 용병 리듬에 맞추려다 보니까 의존하게 되고, 용병도 국내선수와 안 맞으니까 혼자 해결하려고 합니다. 결국 국내 선수 수준이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죠.”
농구천재 허재도 남다른 노력을 했겠지요?
“학생이 절에 들어가 촛불 켜놓고 고시공부 하는 것과 같아요. 단체운동 끝나고 개인운동 하면서 얼마나 모자란 부분을 채우느냐가 스타를 결정합니다. 새벽 일찍 집 근처를 한 바퀴 뛴다든지, 집에 농구골대 있으니까 아침에 슛 연습 한다든지…. 줄넘기는 하루 1000개를 목표로 몇 달 동안 매일 해서 근육을 만들면 점프가 높아지고 체공 시간이 길어집니다. 밤에는 누워서 천장 보고 슈팅 500개 한다든지, 남들의 두 배 노력을 해야 스타가 됩니다.”
허재 하면 술에 얽힌 전설이 많죠. ‘상대 선수가 술 냄새 때문에 어지러워서 수비를 제대로 못했다’ 같은 얘기 말이죠.
“가끔 그런 적도 있었겠지만 매일 새벽까지 술 먹고 어떻게 시합 했겠어요. 기아 들어가서는 전력이 떨어지는 팀과의 경기 전날에 좀 먹은 적은 있죠. 내가 술을 워낙 좋아하니까 그런 얘기들이 도는데 ‘네가 (냄새) 맡아봤어?’라고 싸울 수도 없고. 그게 뭐 죽을죄도 아니고, 그렇다고 농구 못한 것도 아니고….”

드래프트서 아들 지명 안 한 허재 “해피 엔딩”

허웅(左), 허훈(右)

허웅(左), 허훈(右)

허재의 농구 재능과 승부근성을 빼닮은 허웅(28·DB·사진 왼쪽) 허훈(26·KT·오른쪽) 형제는 연세대를 거쳐 프로농구 팀에서 활약하고 있다. 허웅은 2년 연속 인기상을 탔고, 허훈은 2019~20 시즌 MVP였다. 세 사람은 유튜브 채널 ‘코삼부자’도 운영하고 있다.

허재가 KCC 감독으로 있던 2014년 KBL 신인 드래프트. 허씨 집안이 풍비박산 날 뻔했다. 4순위 지명권을 얻은 허 감독이 허웅이 아닌 다른 선수를 지명한 것이다. 장내에 싸늘한 침묵이 흘렀고, ‘웅이엄마’ 이미수 여사의 얼굴은 돌처럼 굳었다. 당시 상황을 허 감독이 설명했다.

“웅이는 당연히 후보군에 있었고 팀에서도 필요한 선수였어요. 그런데도 웅이를 뽑았다면 허재 아들이라서 뽑혔다느니, 실력도 안 되는데 경기에 뛴다느니 별 얘기가 다 나왔을 겁니다. 또 선수끼리 모여 감독 흉도 볼 수 있는데 웅이가 왕따처럼 될 수도 있는 거고요.”

그렇지만 아들 둘과 자신의 인생을 맞바꾼 엄마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허웅도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웅이엄마가 나한테 전화를 20통 넘게 걸었고, ‘너는 사람도 아니야’라는 말까지 했어요. 웅이도 ‘아빠, 나 이제 농구 안 할래’ 할 정도로 상처를 입었죠. 결과적으로 DB에서 잘 성장해서 국가대표까지 됐으니 해피 엔딩이 된 거죠.”

※인터뷰 전문은 월간중앙 7월호 〈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