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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애가 무슨" 韓처럼 이랬다가…노땅 정치 흑역사 찍은 英

중앙일보

입력 2021.06.11 18:00

업데이트 2021.06.11 18:13

이준석 국민의힘 신임 대표는 과학 용어로 치면 ‘어노말리(anomaly)’다. 예측 가능한 패턴에서 벗어나는 특이 현상이란 말이다. 30대 당수 탄생은 한국 정치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기존 정치권의 문법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다.

많은 미디어가 이준석 돌풍과 함께 지난 10년 유럽에 불어닥친 30대 리더 열풍을 조명했다. 하지만 유럽과 한국 사이의 공통점은 ‘30대 리더의 출현’이라는 표면적 사실 외에는 많지 않다. 축구에 비유하자면, 유럽은 프로축구팀처럼 유소년 클럽부터 선수를 키워내는 시스템이고, 한국은 끝없는 외부 선수 영입으로 신선함을 계속 주입하는 방식이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30대 당대표 탄생, 청년 정치인이 홀대받던 정치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이준석 신임 국민의힘 당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나경원 후보와 인사하는 모습. 뉴시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30대 당대표 탄생, 청년 정치인이 홀대받던 정치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이준석 신임 국민의힘 당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나경원 후보와 인사하는 모습. 뉴시스

한국은 ‘청년 정치’ 후진국

한국은 의회의 청년 대표성이 매우 약한 나라 중 하나다. 한국 유권자 중 40대 이하 비율은 53.7%(2019년 기준)이지만, 45세 미만 국회의원 수는 6.3%(21대 기준)다. 국제의회연맹(IPU) 소속 150개국 중 143위다. 40세 미만으로 좁히면 국회의원 수는 13명(4.3%)에 불과하다. IPU에 따르면 한국 의회는 2019년 기준 여성 대표성에서 세계 120위다. 국회만 놓고 보면 청년이 여성보다 약자인 셈이다.

보통 당대표, 최고위원이라고 하면 이런 느낌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한국 정치엔 청년 세대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다. 사진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19년 12월 국회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오른쪽부터 조경태 최고위원, 황 대표, 심재철 원내대표, 정미경 최고위원. 김경록 기자

보통 당대표, 최고위원이라고 하면 이런 느낌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한국 정치엔 청년 세대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다. 사진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19년 12월 국회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오른쪽부터 조경태 최고위원, 황 대표, 심재철 원내대표, 정미경 최고위원. 김경록 기자

국회의 청년 대표성이 약하다는 사실은 국민도 잘 알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선거학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년 국회의원 비율 확대에 응답자의 78.8%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정치 현실은 한참 뒤처져 있다. 10년 전 민주통합당에서 청년 정치인 발굴에 참여했던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청년 유권자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어 ‘표’가 안 된다는 이유로 정치권은 청년 정치인을 키우려는 노력을 덜 해왔다”며 “청년 정치인을 길러낼 시스템은 갖추지 않은 채 청년의 정치적 역량이 부족하다고 질책만 해온 것이 사실”이라고 비판했다.

이준석 현상의 이면엔 청년이 제대로 대표되지 못하는 한국 정치의 현실이 숨어 있다.

이준석 현상의 이면엔 청년이 제대로 대표되지 못하는 한국 정치의 현실이 숨어 있다.

5년 전, 민주당의 청년 홀대 논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 있었다.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3월 더불어민주당은 공천 파동에 휩싸였다. 공천 파동은 보통 당내 계파 갈등 때문에 일어나지만, 이번에 문제가 됐던 건 청년 대표성 이슈였다.

당시 민주당이 발표한 비례대표 후보 최종명단에서 청년 정치인 중 가장 앞선 번호는 16번(정은혜 후보)과 24번(장경태 후보)이었다. 선거 직전 여론조사를 볼 때 당선 안정권은 15번이었다. ‘청년 분야엔 2명의 후보자를 우선순위에 둔다’는 민주당 당헌ㆍ당규를 정면으로 위반한 처사였다. 청년 분야 후보자 공천심사도 5분 면접으로 졸속 운영됐다. 청년 당원들은 당의 홀대에 분노했다.

당원들은 공천관리위원 사퇴를 요구하는 등 청년 편에 서서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보도와 청년 정치인들의 SNS를 종합해보면 민주당 내부에선 “민주화도 겪어보지 못한 젊은 세대가 정치를 뭘 알겠느냐”, “이번에 출마 못 해도 젊은 사람들은 기회가 많다” 등의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한국 정치에서 선거는 정치 원로들의 판이었다. 2016년 3월 김종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에서 중앙선대위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진표 부위원장, 김종인 대표, 진영 부위원장. 강정현 기자

한국 정치에서 선거는 정치 원로들의 판이었다. 2016년 3월 김종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에서 중앙선대위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진표 부위원장, 김종인 대표, 진영 부위원장. 강정현 기자

이런 분위기는 자유한국당ㆍ바른미래당도 마찬가지였다. 이준석 당시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청년비례로 당선된 초선의원 한 명에게 청년 일자리 문제 같은 거대담론을 떠맡기고, 이 (비례대표) 한 자리를 놓고 당에서 청년들이 헌신하고 경쟁하며 싸우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청년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선입견은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서도 경험ㆍ경륜을 내세우는 다른 후보들이 이준석 후보 나이를 집중 견제했다. 민주당 정세균 전 국무총리의 ‘장유유서’ 발언도 비슷한 맥락이다.

아이러니한 건 이 시기 유럽에선 30대 총리, 당대표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오스트리아와 핀란드는 30대가 총리 자리에 앉았고, 이탈리아ㆍ스페인에선 30대들이 주축이 된 정당이 돌풍을 일으켰다. 유럽의 30대 총리, 당대표 리스트는 너무 길어서 일일이 예로 들기 힘들 정도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한국의 청년 정치인들은 당이 키워낸 인물이라기보다 상대적으로 개인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지만, 유럽은 지방정치부터 중앙정치까지 올라올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청년 정치인 끝없이 배출하는 영국

유럽 정치는 우리와 뭐가 달랐던 걸까.

우선 영국 사례를 보자. 영국은 시민들에게 정치인이 될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지만, 검증 과정은 험난하기로 유명하다. 정치인을 꿈꾸는 청년들은 보통 정당 청년 조직에 들어와 정치를 배운다. 그러다가 첫 번째 관문으로 구의원 혹은 시의원에 도전한다. 영국 시의원은 ‘열정 페이’를 요구하는, 명예직에 가까운 근무조건으로 악명이 높다. 주당 근무시간은 20시간 정도지만 연봉은 많아 봤자 1500만원 수준이다. 그래서 젊은 정치인들은 ‘투잡(two-job)’을 당연시한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도 젊은 시절부터 정치에 투신해 잔뼈가 굵었다. 캐머런 전 총리가 2012년 3월 미국 뉴욕대에서 강연하는 장면. AP=연합뉴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도 젊은 시절부터 정치에 투신해 잔뼈가 굵었다. 캐머런 전 총리가 2012년 3월 미국 뉴욕대에서 강연하는 장면. AP=연합뉴스

구의원·시의원 단계에서 똘똘하게 일 잘한다고 지역구와 동료들에게 인정받으면 하원의원 도전 기회가 주어진다. 게다가 인지도를 쌓기 힘든 박봉의 젊은 정치인도 전당대회에서 단숨에 ‘신데렐라’가 될 기회를 준다. 토니 블레어,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 계기가 전당대회 연설이었다. 이번 이준석 당대표가 경선을 치르며 한 연설들이 공감을 받으면서 차기 대선주자로까지 거론되는 것과 비슷하다.

영국이 이런 체계를 갖출 수 있었던 건 영국 정치권이 수십 년 동안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하지만 이런 노력의 배경에는 ‘노땅’ 정치인들을 각성하게 만든 충격적 선거 패배가 있었다.

청년에게 된통 얻어맞은 영국 보수당

1945년 7월 영국 보수당은 대대손손 길이 남을 흑역사를 찍었다. 총선에서 ‘세계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이 이끄는 보수당(197석)이 노동당(393석)에 ‘더블 스코어’로 참패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기에 선거 결과를 낙관한 보수당은 충격에 빠졌다. 미래를 이끌어갈 영국 젊은이들은 전쟁 승리에 취한 보수당보다 경제 재건과 복지ㆍ교육ㆍ의료 시스템 개혁 등 국가의 미래 청사진을 보여준 노동당에 표를 던졌다.

1945년 총선에서 영국 보수당은 노동당에 역사에 길이남을 참패를 당했다. '구국의 영웅' 처칠의 체면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NYT 캡처

1945년 총선에서 영국 보수당은 노동당에 역사에 길이남을 참패를 당했다. '구국의 영웅' 처칠의 체면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NYT 캡처

충격에 휩싸인 영국 보수당은 청년들 마음을 끌어안기 위해 고심했다. 우선 25세 이하 청년조직을 꾸려 보수당의 비전을 알릴 수 있는 장으로 삼았다. 젊은이들 마음을 얻기 위해 딱딱한 정책만 다루는 걸 넘어 댄스파티와 공연, 봉사활동을 아우르는 ‘사교 클럽’처럼 정치 조직을 운영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도 없고 데이트 앱도 없던 시대, 젊은 남녀들은 정치에 대한 꿈을 키우는 동시에 이성을 만나는 장소로 이곳을 활용했다.

10년도 되지 않아 조직은 15만 명 넘는 회원을 거느리는 최대 정치 조직으로 거듭났다. 그 덕에 1951년 총선에서 보수당(321석)은 노동당(295석)을 누르고 다시 정권을 가져왔다. 영국에서 젊은 총리가 끊임없이 배출되는 것도 이러한 전통에 기인한다.

청소년 정치 활동 보장하는 핀란드

핀란드 역시 모든 정당이 15~29세를 대상으로 한 청년 조직을 운영한다. 이들은 20대 초반부터 지방자치선거에 도전한다. 선출된 이들은 시민들 대표로 활동하며 정치적 리더십과 갈등 해결 능력을 키운다.

여기서 두각을 나타낸 이들은 총선에 출마한다. 소속 정당이 승리하면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에 장관 직함을 달기도 한다. 다만 핀란드는 지자체 선거, 총선 모두 전면 비례대표 선거제도로 운영되기에 20대도 당선이 비교적 쉽다.

산나 마린(오른쪽에서 두번째) 핀란드 총리와 장관들. 30대 여성이 핀란드 정치를 이끌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산나 마린(오른쪽에서 두번째) 핀란드 총리와 장관들. 30대 여성이 핀란드 정치를 이끌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핀란드 역사상 최연소 총리인 산나 마린 역시 고교 졸업 직후 사회민주당에 입당하며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시의원, 하원의원, 교통통신부 장관을 거쳐 34세에 총리직에 올랐다. 1985년생인 그는 이준석 당대표와 동갑이다.

핀란드는 1970년대에 18세 이상에게 국회의원ㆍ총리 출마가 가능하도록 법이 바뀌었다. 1968년 유럽에 불어닥친 ‘68운동(프랑스에서 기존 가치와 질서에 저항한 시위에서 시작해 유럽 전역과 미국까지 번진 사회개혁 운동)’의 여파가 법 개정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청년 가두는 한국 정치의 ‘유리 천장’

한 나라의 정치 문화를 한 번에 바꾸기는 매우 힘들다. 유럽과 달리 한국 정치에는 청년에게 ‘유리 천장’과 같은 기능을 하는 조건들이 있어서다. 우선 비례의석 비중이 작아 정치 열망이 큰 청년조차 정치권에 발을 들이기가 까다롭다. 핀란드의 경우, 모든 의석을 비례 대표로 채운다.

또 전국 조직을 갖춰야 하는 등 정당법이 엄격해 새로운 당을 만들기도 힘들다. 스페인ㆍ이탈리아 같은 신생 정당 돌풍은 한국 사회에선 꿈 같은 일이다. 또 청소년들이 정치를 경험할 기회는 고작해야 정규 수업 시간 ‘정치’ 과목을 통하는 게 전부다. 시민 정치교육이나 정당 정치를 경험할 곳이 부족하기 때문에 청년들이 정치 참여에 소극적인 문화가 형성돼 있다.

정치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정치권도 조금씩 제공하고 있으나 아직 문화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온택트 청년정치학교'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정치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정치권도 조금씩 제공하고 있으나 아직 문화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온택트 청년정치학교'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지금까지 청년 정치인이나 젊은 초선의원들은 보통 ‘당론 호위대’ 역할을 해 왔기에 회의론도 적잖다. 지난 4월 재보선 참패 이후 민주당 초선ㆍ2030 청년의원이 “조국 사태를 반성한다”고 하자, 친문 인사들의 맹비난에 시달렸다. 이 때문인지 초선의원들은 지난 3일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은 만났지만, 정권 비판이나 반성에 대해 말을 꺼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청년 정치, 첫발 내디딘 정당들 

지난해부터 우리나라 정치계도 대대적으로 젊은 정치인을 키우려는 행보를 시작했다. 세대별로 정당 지지 성향이 굳어진 상황에서 20대와 30대는 유독 이념에 바탕을 두지 않고 사안에 따라 실용적으로 투표하는 성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즉 2030 세대가 ‘캐스팅 보트’를 쥔 그룹이 됐다. 지난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전체 유권자 중 20ㆍ30대 비중은 34%에 이른다.

정치권도 청년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당 간담회에서 윤호중 비대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정치권도 청년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당 간담회에서 윤호중 비대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1월 민주당은 전국청년위원회를 전국청년당으로 개편했다. 특히 전국청년당 내 청소년분과를 발족해 18세 이하 청소년에게도 당직을 부여하기로 했다. 청소년부터 정당 활동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30대 당대표까지 배출하는 유럽형 모델과 비슷하다.

국민의힘도 지난해 12월 ‘청년의힘’이라는 청년정당을 창당했다. 국민의힘 역시 유럽형 모델을 벤치마킹했다. 국민의힘은 청년 정당에 중앙당과 독립된 의결권ㆍ인사권ㆍ예산권을 보장해 새 인물 발탁과 청년 정책 발굴에 집중하기로 했다.

최근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만 40세 이상으로 돼 있는 대통령 선거 출마 나이 제한을 낮추고, 만 25세 이상인 국회의원 피선거권 연령도 낮추자”고 주장한 것도 정치권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안병진 교수는 “기후변화ㆍ불평등 등의 문제는 미래 세대가 주축이 돼 풀어나가야 하는 문제인 만큼 청년 세대의 정치적 대표성이 강화돼야 한다”며 “기존 정치권이 청년이 미래의 주체라는 인식을 뚜렷이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스템적으로 여러 장애물이 있긴 하지만 한국 사회는 신선함에 대한 갈망을 가진 사회”라며 “이준석으로 대표되는 청년 돌풍의 나비효과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정치권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영상=김지선ㆍ정수경 PD, 김지현ㆍ이가진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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