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사라져 가는 너”나홀로 피천득 묘소를 찾아서

중앙일보

입력 2021.06.11 13:00

[더,오래] 조남대의 은퇴일기(17)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수필 공부를 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 2년 전에는 수필가로 등단하기도 했다. 수필을 배우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이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웠던 피천득 선생의 ‘수필’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로 시작하는 글을 읽다 보면 ‘수필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수필에 대해 조금의 보탬이나 부족함 없이 잘 설명해 놓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선생에 대해 관심과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반포주공아파트와 반포천 사이에 있는 피천득산책로 풍경. [사진 조남대]

반포주공아파트와 반포천 사이에 있는 피천득산책로 풍경. [사진 조남대]

그러던 중 버스를 타고 가다 반포천 변에 ‘피천득산책길’이라는 푯말을 보고 무슨 인연이 있기에 이렇게 명명했는지 궁금해 시간을 내어 둘러보았다. 반포주공아파트와 반포천 사이의 제방 길에 조성된 피천득산책로는 아름드리 메타세쿼이아와 벚나무, 소나무 등이 우거져 더운 여름에도 시원하게 산책을 할 수 있다.

선생이 이 아파트에서 27년간 거주하면서 집필 활동하신 것을 기념하여 사후에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산책로에는 선생의 시와 수필 내용이 적힌 시비와 의자를 비롯하여 조그마한 좌상도 만들어져 있다.

복잡한 도심에 있지만, 산책로를 걷다 보면 깊은 숲속에 들어온 것처럼 조용하고 아늑하다. 반포천에는 물오리가 노닐고 왜가리도 조용히 서 있으며, 봄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뻐꾸기 노랫소리까지 들린다. 이런 환경도 주옥같은 시와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수필을 쓰는 데 큰 영향을 끼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천득 선생의 유품은 대부분 서울 잠실 롯데월드 3층 민속관에 40여 평 규모로 만들어진 ‘금아피천득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다. 입구에는 상반신 사진이 크게 붙어 있어 한 번에 알 수 있다.

금아피천득기념관에 마련된 피천득 선생의 서재 모습. [사진 조남대]

금아피천득기념관에 마련된 피천득 선생의 서재 모습. [사진 조남대]

내부에는 선생의 일생이 사진과 함께 상세히 기록되어 있고, 신분증을 비롯한 안경과 필기구와 평소 사용하시던 각종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집필 활동을 하신 서재에는 책상과 의자도 놓여 있는데 창문을 통해 보이는 신록의 모습이 실제처럼 꾸며져 있어 생동감이 넘친다.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커피를 한잔하며 정담을 나누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푸근하고 인자한 모습이 그대로 느껴진다. 늦었지만 직접 찾아와 뵙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은 춘원 이광수와 안창호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 금강산 장안사에 1년간 머물면서 불경을 배우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삶이 있었기에 심금을 울리는 멋진 시와 삶의 철학이 담긴 글을 후세에 남긴 것이 아닌가 한다.

특이하게도 기념관에는 인형으로 꾸며진 방이 있다. 지극히 아끼던 외동딸을 미국으로 떠나 보내고 쓸쓸한 마음을 추스를 수 없어 인형을 딸처럼 생각하면서 보살폈다는 것이다. 얼마나 보고 싶으면 그랬을까? 딸을 향한 애잔한 모습이 눈에 선해 보였다.

피천득 선생 탄생 111주년을 기념해 5월 말에 묘소를 참배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 거리 두기가 연장되는 바람에 행사가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가 없어 혼자 서울 근교 공원묘지를 찾았다. 유명하신 분이라 쉽게 찾을 줄 알았지만 규모가 엄청나게 커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었다. 관리사무실에 들러 피천득 선생 묘소를 참배하러 왔다고 하자 친절하게도 약도까지 그려준다.

안내 표지석을 따라 올라가자 듬성듬성하게 나 있는 잡초와 자주색의 붓꽃 뒤로 선생님의 존함이 새겨진 묘비와 산소가 보인다. 흠모해 왔던 선생을 직접 뵙는 것처럼 반갑고 감회가 새롭다. 편안하게 잘 지내시기를 기도드린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피천득 선생 묘지와 시비. [사진 조남대]

피천득 선생 묘지와 시비. [사진 조남대]

묘비 바로 옆에는 작고하기 전 마지막으로 썼다는 ‘너’라는 제목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제자들이 시비를 세웠다고 한다.

“눈보라 헤치며 날아와/눈 쌓이는 가지에 나래를 털고/그저 얼마 동안 앉아 있다가/깃털 하나 아니 떨구고/아득한 눈 속으로 사라져 가는 너”

고고하게 한세상을 사시다가 유감없이 하직한 선생의 모습을 잘 나타낸 자화상처럼 보였다.

이 시대의 유명한 문학인이지만 너무나 겸손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은 모습에 숙연함을 감추지 못했다. 비록 이곳에 누워계시지만 주옥같은 작품은 오랫동안 후세에 전해질 것이며, 사랑하는 제자와 문인들의 끊이지 않는 발길에 흐뭇해하실 것이다.

수필을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서 존경하는 피천득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어서 행복하고 뿌듯했다. 고교 시절부터 마음속에 품어 왔던 선생의 ‘수필’이라는 작품을 교과서처럼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해 보려고 한다. 그 결과 꿈으로 그칠지라도 내 작품도 교과서에 게재되거나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날이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행정위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