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준 렌딧 대표. [사진 렌딧]](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6/11/e9d6b73b-23cc-42a1-9a78-d7723c86e84e.jpg)
김성준 렌딧 대표. [사진 렌딧]
스타트업에 규제는 두려운 존재다. 아무리 잘 나가는 서비스라도 기존 산업과 충돌하고 반대 여론이 높아지면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 없던 규제가 생길수도, 있던 규제가 더 굳건해질 수도 있기 때문. 지난해 타다가 택시업계 반발에 밀려 서비스를 접는 일까지 생기면서 스타트업계 두려움은 더 커졌다.
제도권 1호 P2P '렌딧' 김성준 대표 인터뷰
하지만 P2P(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개인 간 거래) 스타트업 렌딧은 2015년 창업 때부터 조금 다른 길을 택했다. “온라인 투자엔 규제가 필요하다”며 대놓고 법제화를 주장했다. 그후 수년간 업계·정부·국회를 설득한 끝에 2019년 말 P2P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P2P금융업을 규율하는 세계 최초의 제정법. 지난 10일에는 새 법에 따라 금융위원회 등록을 완료, 국내 1호 P2P 등록업체가 됐다. 창업 후 6년만, 법 통과 후 1년 7개월 만에 제도권에 안착했다.
렌딧은 왜 이렇게까지 법제화에 사활을 걸었을까. 또 어떻게 설득할 수 있었을까.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소재 한 공유오피스에서 만난 김성준(36) 렌딧 대표는 “모든 규제는 그 산업의 맥락 속에 다 존재의 이유가 있다”며 “무조건 피하고 볼 게 아니라 산업에 맞는 규제를 잘 찾아서 적용하도록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KAIST를 졸업한 김 대표는 2015년 렌딧을 창업했다.
- 왜 법제화가 필요했나.
- P2P 플랫폼은 기술을 이용해 돈이 필요한 쪽(대출자)과 돈을 빌려줄 쪽(투자자)을 이어주는 곳이다. 우리는 금융 빅데이터를 머신러닝 기술로 분석하기 때문에 통계방식을 쓰는 기존 금융회사보다 더 정교하게 신용평가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은행 대출 금리(평균 5% 안팎)와 제2금융권 대출 금리(20% 안팎) 사이 중금리(10% 안팎) 대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들어간다 해도, 우리는 본질적으로 고객이 맡긴 돈을 다루는 금융회사다. 소비자 보호 같은 특정 분야에선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
- 규제 없는 게 사업하기 더 수월하지 않나.
- 시장에 기회가 있다고 판단되면 온갖 종류의 참여자가 들어온다. 온라인투자업에도 건전하지 못한 참여자가 많아지면서 산업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퍼졌었다. 물권이 없는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한다며 자금을 모집하는 사기 대출을 하거나, 리스크가 큰 사업의 수익률을 과대 포장해 소비자에게 불완전 판매를 하는 식이었다. 몇몇 업체가 사고를 내니 'P2P는 위험하다'는 낙인이 찍혔다.

P2P 금융업자 등록 조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 법 제정 후 어떻게 달라졌나.
- 제도권에 들어간다는 것은 정부가 정한 높은 기준을 충족한 업체만 사업을 할 수 있단 의미다. 회사가 망해도 회사자산과 대출채권의 투자자 자산을 명확히 분리하도록 하는 등 소비자 보호의 수준이 달라졌다. 회사가 잘못하면 처벌받는 규정도 생겼다. 중요한 건 이 조항들을 아무렇게나 막 갖다 붙인 게 아니라는 점이다. 수년간 정부와 업계가 논의한 끝에 산업 발전과 소비자 보호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았다. 적절한 규제가 산업의 질적 개선까지 이룰 것이라 생각한다.
- 많은 스타트업이 제도권 편입을 원하지만 실패한다.
- 가장 중요한 건 명분과 기술이다. 렌딧이 혁신하려는 시장은 중금리 개인신용대출 시장이다.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려운데 의지할 곳이라곤 제2금융권의 고금리 대출밖에 없는 건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됐다. 정부도 중금리 대출이 필요하다고 봤고. 그래서 우리 사업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게 수월했다. 물론, 명분만 있다고 다 되진 않는다. 그걸 실행할 기술력도 입증해야 했다. 우리가 6년간 마냥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다. 렌딧 플랫폼으로 현재까지 2만명가량이 2300억원의 개인신용대출을 받았다. 이중 절반이 제2금융권에서 20% 안팎 고금리를 내던 사람들인데, 우리는 이들에 대한 대출금리를 평균 11%로 낮췄다. 이런 데이터를 모아 허황한 얘기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했다.
- 기존 업계반발은.
- 모빌리티의 '타다' 사례처럼 우리 쪽은 생존을 걸고 해야하는 싸움까지는 아니었다. 기존 금융사들의 반대가 크진 않았다.
![2019년 9월 온투법 법제화 토론회장에 참석한 박용만 전 대한상의 회장, 은성수 금융위원장, 민병두 전 국회 정무위원장, 김종석 의원, 유동수 의원, 김성준 렌딧 대표(왼쪽부터). [사진 금융위]](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6/11/035b513b-f32a-4c56-9a23-cf6911536c39.jpg)
2019년 9월 온투법 법제화 토론회장에 참석한 박용만 전 대한상의 회장, 은성수 금융위원장, 민병두 전 국회 정무위원장, 김종석 의원, 유동수 의원, 김성준 렌딧 대표(왼쪽부터). [사진 금융위]
김 대표는 업계 도움도 제도권 편입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2019년 P2P법이 국회에 통과할 때까지 대한상공회의소, 인터넷기업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 여러 경제·스타트업 단체에서 힘을 모아줬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박용만 전 대한상의 회장의 도움이 컸다고 했다.
- 어떤 도움을 받았나.
- 2019년 8월 쯤이었다. 파행하던 국회가 정상화된다는 뉴스가 나왔는데 밤 11시쯤 박용만 전 회장 전화가 왔다. 여름 휴가 중이셨는데 새벽 비행기 타고 올라오실거니까 다음날 6시에 국회에서 만나자는 얘기를 하시더라. 같이 국회의원 만나서 설득하고….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둘이 있는데 어깨를 두드려주며 '이건 네 일일 뿐만 아니라 내 일이기도 하니 될 때까지 해보자'고 하실 땐 정말 큰 용기를 얻었다.
- 앞으로의 계획은
- 이제 다시 시작이다. 판이 만들어졌으니 본격적으로 국내 중금리 시장에서 혁신 경쟁을 할 것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 소비자 편익이 커지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중금리 혜택을 볼 수 있게 하겠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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