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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의 시시각각

혁신은 언제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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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진표(왼쪽 두 번째)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위 위원장이 10일 국회에서 부동산특위 공급 대책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민주당은 부동산 불법 거래 등 비위 의혹이 드러난 의원 12명에 대해 자진 탈당을 권유했지만 해당 의원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오종택 기자

김진표(왼쪽 두 번째)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위 위원장이 10일 국회에서 부동산특위 공급 대책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민주당은 부동산 불법 거래 등 비위 의혹이 드러난 의원 12명에 대해 자진 탈당을 권유했지만 해당 의원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오종택 기자

풋볼(football)은 공을 발로 차는 경기라서 그렇게 부른 게 아니다. 말을 살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이 할 수 없이 두 발로 뛰어다니며 경기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민들의 힘겨루기를 겸하다 보니 거칠고 우악스러웠다. 어떤 학교에선 공을 손으로 잡아도 되고 어떤 학교에선 금지했는데, 럭비와 축구로 발전해 영국은 캐나다에 럭비, 미국엔 축구를 수출했다. 실제로 19세기 캐나다 맥길대와 미국 하버드대 친선전에선 전반전에 축구, 후반전에 럭비로 승패를 가렸다고 한다. 공에 손을 대는 경기가 더 재미있다고 느낀 미국인들은 여기서 미식축구를 만들어 냈다.
 10여 년 전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할 때 미식축구장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정치도 그렇다. 용광로 소릴 듣는 미국은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통합을 유지한다. 하지만 서로 다름도 인정한다. 질서를 존중하지만 동시에 과감하게 도전한다. 그런 융합이 혁신을 부른다.
국회 본회의장 난타전이 연일 미국 방송을 타던 때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단체 격투기 비슷한 우리 정치는 다르다. 살아남자면 보스 눈치가 우선이다. 다른 목소리는 안 된다. 확립된 권위엔 지나치게 순종적이고 새로운 민주적 권위 형성엔 적대적이다. 지난주 청와대 행사를 보면서 미식축구장이 떠올랐다.
 70명 가까운 여당 의원 중에 대통령에게 바닥 민심을 전하거나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 의원들을 상대로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당은 혁신 DNA를 갖고 있는 역동적, 미래 지향적 정당’이라고 규정했다. 그러곤 “부동산 빼곤 문제없다. 더 많이 자랑들 하시라”며 ‘내로남불 프레임’을 거론했다고 한다. 만남 자체가 재·보선 참패 후 쇄신을 외치던 초선 의원들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들어보면 잘못한 건 없는데 선거엔 졌다는 뜻이다. ‘혁신 DNA’라면 대개 용광로 정신으로 이해한다. 그런 뜻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태평성대가 아니다. 지금 나라 곳곳에서 빚어지는 국정 혼선은 한마디로 역주행이다. 어느 한 곳도 멀쩡하거나 희망적인 숫자가 없다. 그래서 국민 심판을 받았다. 인사 실패든, 부동산이든 문 정부의 독선적 국정운영에 대한 뭔가 불편한 언급이 쏟아져야 했던 자리다. 왜 그런 목소리가 없었느냐고 묻자 ‘그걸 대통령에게 질문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는 게 의원들의 답변이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우물우물 퉁치고 넘어가는 건 ‘나대 봐야 좋을 것 없다’는 ‘꼬붕 정신’ 때문일 것이다. 그게 ‘받아쓰기 내각에 거수기’였는데도.
 투기 혐의 의원이 12명이나 나온 당이다. 아마도 끝이 아닐 것이다. 그걸 지적하면 ‘내로남불 프레임’이라고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프레임으로 짜증 내는 ‘유체이탈’도 그렇지만, 더 답답한 건 독재 정권 여당에서도 나오던 정풍운동은 약에 쓸래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당은 내용조차 공개하지 않는다. 대신 의원직을 유지시켜 주려는 ‘봐주기 징계’가 있다. 그렇다면 국회에서 해머를 들고 공중 부양하던 분노가 당장 나와야 한다. 그런데 아무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문 대통령은 야당 시절 영수회담이 끝날 때마다 ‘벽을 보고 얘기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때와 지금은 뭐가 다른가.
 간담회 테이블엔 성취와 성공을 상징하는 노란 장미, 신뢰를 상징하는 블루베리 열매가 놓여 있었다고 청와대는 브리핑했다. 한국 정치가 성취와 성공, 신뢰의 새 길을 열어가면 정말 좋겠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뭔가 바꿔보려 할 때 가능한 일이다. 우리끼리 모여 ‘우리만이 옳다’고 뻐기는 깨진 용광로에선 분노만이 뿜어져 나올 뿐이다. 융·복합 시대다. ‘군자는 두루 통하고 편벽되지 않지만 소인은 편벽되고 두루 통하지 못한다’.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모두들 그걸 다짐하고 당선됐다.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