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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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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P팀 기자

김현예 P팀 기자

①14세 이상의 남성 중 병역 미필자 ②여성.

정부가 앞장서 “이들은 절대 안 된다”를 외쳤던 시절이 있었다. 금지 대상은 해외여행. 나라 살림살이가 팍팍하단 이유였다.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은 “불요불급(不要不急)한 여행을 규제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외화 절약이 목적으로 해외 유학을 갈 땐 정부 허가를 받도록 했다. 어렵사리 유학길에 오른 경우에도, 배우자나 가족을 해외로 초청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 우리 눈엔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교육 공무원이 연구 등을 위해 해외로 떠난 경우엔 휴직 처리를 하고, 그 기간 중엔 급여나 연구수당을 주지 않도록 법을 정한 것도 그즈음이었는데 불똥을 맞은 건 서울대 교수들이었다. 1966년 무려 71명의 교수가 무더기 휴직 처리되었는데, 한국에 남은 가족들은 “생계를 위협받는다”며 아우성을 치기도 했다.

외국행은 당시엔 소수의 계층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부의 상징이었다. 이 때문에 해외여행은 사회면에 종종 등장했다. 서울의 한 사립초등학교 학생들이 일본으로 단체 해외여행을 한 것이 드러나 사회면에 올랐고,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테니스 경기에 출전한 국내 대표 선수단이 대회가 끝났는데도 열흘 넘게 귀국하지 않아 징계 대상이 됐다.

부부동반 해외여행은 언감생심 꿈꾸지 못할 일이었다. 부부가 함께 해외여행을 갈 수 있게 문이 열린 건 1980년. 그러고도 9년이 지난 1989년에서야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뤄졌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해외여행 빗장이 풀리자 출국자 수는 그해 처음 100만명을 넘어섰는데, 정부는 여기에도 조건을 붙였다. 수강료 3000원을 내고 하루를 꼬박 들어야 하는 ‘반공교육’ 이수였다.

코로나19로 인해 불가능했던 해외여행이 다시 가능해진다고 한다. 트래블 버블(여행 안전권역) 안에 들어가는 국가들에 한해 백신접종과 음성 확인을 거쳐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으로, 이르면 오는 7월부터 단체 여행객에 한해 이뤄진다. 제한도 있다. 지정된 여행 동선에서 벗어나 해외 교민이 국내에 있는 가족이나 지인을 만나는 건 안 된다. 국경 없는 여행의 자유를 누리기까지, 우리는 앞으로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그땐 그랬지’라며 오늘을 되돌아볼 수 있을까.

김현예 P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