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광역시 붕괴 건물의 ‘해체계획서’와 실제 공사 현장 사진을 비교해보니 측벽 철거 순서를 어긴 사실이 확인됐다.
해체계획서 “좌측 벽부터 철거해 다른 벽 무너짐 확률 낮춰야”
해체계획서에 담긴 ‘철거 순서’
10일 중앙일보가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광주시 동구 주택재개발 사업 붕괴 건물 ‘건축물 해체허가 및 해체계획서’에는 건축물 안전도 검사를 통해 측정한 벽면 강도를 토대로 측벽 해체 순서가 기록돼 있다.
붕괴한 건물을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좌측(4번)→후면(1번)→정면(3번)→우측(2번) 순서로 철거해야 한다고 돼 있다. 철거 업체가 측정한 벽마다 평균 강도는 ▶좌측 28.20MPa ▶후면 29.60MPa ▶전면 32.25MPa ▶우측 32.50MPa 등이다. MPa는 물체의 강도나 압력 등을 측정하는 단위다.
철거 업체는 “강도 측정 결과 건물 외벽의 강도는 4번 벽이 대체로 낮게 나옴”이라며 “철거 진행 시 좌측(4번) 벽부터 철거를 진행하여 다른 벽면의 무너짐이 발생할 확률을 낮추어 진행하도록 한다”고 철거 순서를 지킬 필요성을 설명했다.
실제 공사 보니 후면 벽부터 철거
이 문서는 철거 시공자인 A 기업의 건축물 해체계획서 검토확인서가 첨부돼 있다. 철거업체 관계자가 1층부터 5층까지 각각의 벽 강도를 측정하고 있는 모습도 담겼다.
하지만 철거업체는 지난 9일 5층 건물이 무너지기 전 해체계획서에 담긴 순서와는 달리 후면 벽부터 철거하고 있었다. 해체계획서대로라면 좌측부터 벽을 해체해야 다른 벽이 붕괴할 위험을 낮출 수 있는데 순서를 어기면서 전면부가 무너지는 결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층별 철거 순서도 어겼다. 붕괴 건물 철거 공사 관할 지자체인 광주 동구청이 밝힌 해당 건물 철거계획에 따르면 철거업체는 건물 5층 최상층부터 철거를 시작해 순차적으로 하향식 해체작업을 해야 한다. 중장비가 5층부터 3층까지 해체작업을 마친 뒤 1~2층 저층부로 내려오는 형태다.
중간층부터 철거도 문제
중앙일보가 확보한 ‘해체계획서’에서도 중장비가 건물 최고층 위로 닿을 수 있을 때까지 잔재물을 쌓고 철거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또 최고층부터 3층까지 건물 해체 뒤 1~2층 해체작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붕괴 건물 인근 주민들의 증언과 현장 사진 등을 살펴보면 상층부가 아닌 건물 중간부터 철거작업이 진행된 정황이 확인되고 있다. 중간부터 해체된 탓에 건물 하층부가 상층부 하중을 못 이겨 도로를 향해 무너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명기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는 “건물 해체과정에서 해체순서와 구조적인 보강 등을 관리 감독하는 해체 감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건물 철거 붕괴사고 사례를 보면 상층의 일부를 철거한 뒤 곧바로 1층에 내려와 기둥이나 벽을 깨부수는 경우도 있다. 이러면 건물이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며 “해체계획서상 할 수 없는 방법이지만 공사를 빨리 끝내려고 1층을 먼저 해체하는 경우에 사고가 나기도 한다”고 했다.
광주광역시=김준희·최종권·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