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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 흔드는 외국계 보고서…개미들 "공매도 결탁" 부글부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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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외국계 증권사가 한국 증시를 흔들고 있다. 한동안 뜸했던 '매도' 보고서를 통해서다. 타깃은 대형주다. 목표 주가를 반 토막 낸 보고서를 내놓을 때마다 해당 기업 주가는 곤두박질치기 일쑤다.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선 '공매도 세력과 연관된 보고서 아니냐'는 의심이 끊이질 않는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 로이터=연합뉴스

글로벌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 로이터=연합뉴스

LG화학·삼성SDI 이어 금호석유 7.6% '뚝'

외국계 보고서의 파장이 가장 컸던 종목은 LG화학이다. 지난달 25일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가 "배터리 자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하면 LG화학은 할인이 불가피하다"며 투자 의견을 '매수'에서 '매도'로 내렸다. 목표 주가는 130만원에서 68만원으로 48% 깎았다. 이후 LG화학 주가는 이틀간 10% 급락했다. 시가총액은 6조2800억원이 증발했다.

지난달 30일엔 삼성SDI가 모건스탠리의 보고서로 홍역을 치렀다. 배터리 제조사들의 경쟁 과열이 예상되니 주식을 팔라는 내용이었다.

전기차 배터리 업체뿐 아니다. 화학업체인 금호석유도 표적이 됐다. 지난달 20일 씨티그룹에 이어 지난 8일엔 JP모건이 부정적 보고서를 냈다. JP모건은 "올 상반기가 수익성 피크 아웃(고점 통과)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목표가는 34만원에서 18만원으로 대폭 낮췄다. 이 보고서 탓에 금호석유 주가는 지난 9일 7.62% 빠졌다.

국내 증권사들은 이 같은 주장이 과장됐다는 입장이다. 시장의 우려를 부풀려 지나치게 가격을 후려쳤다는 얘기다.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수요에 대한 이해와 현 상황에 대한 명확한 해석이 없다. '감'에 근거한 주장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한승재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금호석유의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이익 체력'이 높아져 있어 주가는 저평가 상태"라고 말했다. LG화학도 자회사의 시장가치 할인을 반영해도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대비 주가 수준)이 낮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외국계 증권사 매도 보고서로 직격탄 맞은 종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외국계 증권사 매도 보고서로 직격탄 맞은 종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목표가 '반 토막' 탓에 파급력 커

그런데도 외국계 보고서의 파급력이 큰 것은 '매도', '목표 주가 반 토막' 등 자극적 의견 때문이다. 국내 증권사 보고서에서 보기 힘든 표현이 등장하는 탓에 주목도가 높아지는 효과도 있다.

대형 운용사의 한 주식운용본부장은 "외국계 증권사는 매도 리포트를 낼 때 목표 주가를 현 주가보다 낮추는 등 세게 쓰는 경향이 있어 시장 충격이 크다"며 "보고서 내용이 신뢰할 만하거나 전망 적중률이 높기 때문은 아니다"라고 했다.

외국계 증권사의 주 고객이 외국인 투자자란 점도 한몫한다. 외국인은 국내 증시 시가총액의 30%를 차지한다. 외국계 자산운용사 임원 A씨는 "외국인 투자자가 외국계 보고서를 많이 참고하다 보니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과거 투자자의 학습 효과도 주가 하락을 부추긴다. 가까운 예로 2017년 모건스탠리의 삼성전자 매도 보고서, 2018년 노무라증권과 도이치방크의 셀트리온 '고평가' 보고서 등이 있다. 비관적 보고서가 나올 때마다 해당 기업 주가는 어김없이 폭락했다.

기업 성장성에 대한 의구심이 시장에 퍼져 있던 상황에서 비관적 보고서가 나오면서 파급력이 커졌다는 지적도 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시장 상황과 맞물린 영향이 크다"며 "고점 불안이 생기던 시점에 매도 보고서가 나와 차익실현 심리를 자극했다"고 말했다.

 개인투자자 모임인 한국주식투자연합회(한투연)가 지난 2월 서울 세종로에서 공매도 반대 운동을 위해 '공매도 폐지' 등의 문구를 부착한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개인투자자 모임인 한국주식투자연합회(한투연)가 지난 2월 서울 세종로에서 공매도 반대 운동을 위해 '공매도 폐지' 등의 문구를 부착한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매도 결탁, 불가능하다"

일각에선 외국계 증권사 보고서가 공매도와 연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서 판 뒤 나중에 사들여 갚아 차익을 얻는 투자 기법이다. CS 보고서가 나온 직후인 지난달 26일 LG화학은 코스피 기업 중 공매도 거래대금(650억원)이 가장 많았다. 전날(101억원)의 6배 넘는 수준이다.

인터넷 주식 게시판에는 "'큰손' 고객인 외국계 헤지펀드가 돈 벌 수 있도록 (외국계 증권사가) 장난질한 것 아니냐" "공매도하려는 수법, 티가 너무 난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에 대해 익명을 원한 외국계 증권사 임원은 "매도 리포트가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음모론"이라며 "내부 규정상 공매도 세력과의 결탁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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