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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애도만 있을 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64)

“고인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살아계셨으면 어땠을까, 어떤 마음으로 돌아가신 걸까가 궁금했고, 그 점을 떠올릴 때 가장 슬펐다.”

넷플릭스의 드라마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 정리사입니다’의 작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25년 동안 유품정리사로 일하고 있는 김새별 대표의 에세이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이 드라마는 지난 5월 론칭 이후 호평과 관심을 받고 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스무살 청년이 폭력의 상처 속에서 거칠게 살아온 삼촌과 함께 유품정리 일을 하며 고인의 숨겨진 이야기와 마음을 유족에게 전하는 과정을 담았다. 드라마를 시청하며 죽음과 이별,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에 대해 생각해봤다. 슬픔과 상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보내는 과정인 ‘애도’에 대해 말이다.

노란 상자 안에 담긴 고인의 마음을 유품정리사가 전달한다는 내용의 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 [사진 넷플릭스]

노란 상자 안에 담긴 고인의 마음을 유품정리사가 전달한다는 내용의 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 [사진 넷플릭스]

미국정신분석학회의 정신분석용어사전에는 애도를 ‘의미 있는 애정 대상을 상실한 후에 따라오는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는 정신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누군가를 잃은 후 ‘마음이 평안하고 고요해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시간이 답’이라는 어른들의 말처럼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추슬렀다고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순간순간 가슴이 아릴 정도로 그리워진다. 그동안 그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는지, 그럼에도 나는 해준 게 없다는 미안함에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누군가의 마음이 느껴지면 금세 다시 마음이 출렁인다. 작년에 나 역시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떠나보낸 그때, 그 몇 개월 후, 그리고 지금을 돌아보니 긴 시간 이별의 과정을 경험하고 있는 중인 건 맞다.

김형경 작가의 『좋은 이별』은 ‘애도 심리에세이’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별 후 마음이 흘러가는 방향과 모습을 잘 설명해준다. 친구가 당시 권해준 책인데, 내 마음을 바라보고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작가는 애도를 3단계로 나누어 이야기를 풀어간다. 첫 번째 단계는 소중한 대상을 잃은 후에도 열정이 여전히 상대를 향해 흘러가고 있는 상태, 두 번째 단계는 상대로부터 열정을 회수해왔으나 그것을 잘못 사용하는 상태, 마지막 단계는 열정을 비로소 치유와 변화를 위해 사용하는 상태다. ‘무브 투 헤븐’에는 이별을 경험한 직후의 모습이 담겨 있으니 당연히 첫 번째 단계의 감정이 많이 보인다. 충격을 받아 감정이 마비되고, 상황을 부정하며, 때로는 분노를 표현하고, 그리워하는 모습 말이다. 사실 나도 이 단계를 벗어났는지 자신이 없다.

친구와 늘 함께 가던 식당에 홀로 앉아 친구가 앉던 자리를 향해 잔을 나누는 샌디. '코민스키 메소드 시즌3'는 두 친구의 이별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진 넷플릭스]

친구와 늘 함께 가던 식당에 홀로 앉아 친구가 앉던 자리를 향해 잔을 나누는 샌디. '코민스키 메소드 시즌3'는 두 친구의 이별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진 넷플릭스]

근래 시청한 또 다른 드라마에도 애도의 과정이 담겨 있다. 할리우드 노장 배우 마이클 더글라스(샌디 코민스키 역)와 앨런 아킨(노먼 뉴랜더 역)이 주연을 맡은 ‘코민스키 메소드’가 그것인데, 얼마 전 론칭한 시즌 3는 샌디의 단짝 친구 노먼의 장례식부터 시작한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 보낸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샌디는 이렇게 말한다.

“작년에 암치료를 받았는데 진짜 무서웠어요. 근데 제 단짝 친구라는 인간이 머리카락을 남기는 문제로 계속 농담을 하는 거예요. 빠지면 찻잔 덮개를 만들라면서요. 찻잔덮게요. 니뽕이다. 이 웬수야. 내 머리카락은 한 올도 안 빠졌거든. 하나도 안 잃었어…. 그런데 자네를 잃었지.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제 자네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막막해….”

어려운 상황에서 농담을 건네줄, 그게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는 걸 아는 친구를 이제는 만날 수 없다는 슬픔이 샌디의 얼굴에 깔리기 시작한다. 이 드라마는 노년의 주인공이 경험하는 애도 과정과 그 애도의 마음을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데 쓰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나에게도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여러분에게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최근에 제겐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그 사람은 나에게 항상 다정했습니다. 그 사람은 제가 혼자였을 때 절대 볼 수 없었던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해 주었어요. 오늘 이 자리에서 그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내가 만났던 사람 중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람입니다. 여기서 약속할게요.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내가 죽을 때까지요. 고마웠어요.”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이별한 대상을, 그와 나눈 시간을 아름답게 그리기 위한 노력만이 있을 뿐이다. 애도는 이를 위한 과정이다. [사진 unsplash]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이별한 대상을, 그와 나눈 시간을 아름답게 그리기 위한 노력만이 있을 뿐이다. 애도는 이를 위한 과정이다. [사진 unsplash]

‘무브 투 헤븐’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첼리스트가 공연 중 관객을 향해 전한 애도의 말이다. 애도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별을 단호히 바라보는 과정이자, 마음을 다해 정성으로 떠나보내는 과정이다. 좋은 이별을 위한 좋은 애도, 그걸 할 수 있어야 오래오래 잘 기억할 수 있다.

전 코스모폴리탄·우먼센스 편집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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