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정체 지옥' 서부간선
9일 오후 4시, 한강 서쪽을 남북으로 잇는 성산대교 남단. 아직 본격적인 퇴근 시간대가 아닌데도 서부간선도로는 상·하행선 모두 심한 정체를 빚고 있었다. 성산대교를 바라보고 올라오는 상행선은 신정교를 시작으로 오목교를 지나 성산대교 남단까지 시속 14㎞로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었다. 양평교 부근엔 서부간선도로 지하화 공사에 따른 작업현장이 남아 있어 병목현상이 시작되는 상황이었다.
하행선도 막히기는 마찬가지였다. 목동교부터 정체가 시작돼 고척교, 광명대교를 지나 금천교까지 길게 차량이 늘어섰다. 안양교~광명대교 구간의 평균 속도는 시속 9㎞까지 떨어졌다. 오후 5시30분엔 고척교~안양교 부근 평균 시속이 6㎞까지 내려앉았다. 출퇴근 시간 외에 정체가 생기는 일도 있다. 지난 3일 밤 9시30분, 성산대교 위 상행선엔 일부 정체가 남아 내비게이션이 빨간색으로 변했다.
금천구 독산동에 차고지를 둔 택시기사 이모씨는 7일 “코로나19 이후 회식이 없어서인지 퇴근 차량이 분산되지 않고 동시간대에 더 몰리는 것 같다”며 “재택은 늘었다는데 정체가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 일대는 다리 하나를 지나는 데도 하세월이다 보니 차는 멈춰 있는데 손님들은 그대로 요금을 내야 한다. 기사 입장에서도 민망한 경우”라고 말했다.
성산대교 '숨통' 틀 월드컵대교, 내년 말 완공
이 부근 차량 정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게 인근 주민들과 운전자들의 말이다. 11년 전인 2010년 4월에도 서울시는 “상암DMC, 가재울뉴타운, 수색·증산뉴타운 등 대단위 개발사업이 진행 중이어서 서울 서북부 지역의 교통량이 성산대교·서부간선도로 축으로 집중되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또 “(성산대교 북단의) 내부순환로에서 서부간선도로와 공항로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성산대교를 거쳐야 해 성산로·마포구청역 사거리·성산대교 교통 지체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2017년부터는 성산대교가 더 큰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성능개선공사'가 진행되며 정체가 심화했다.
‘10년 묵은’ 교통체증이 지속하고 있지만, 해결을 기대하려면 아직 1년 넘게 더 기다려야 한다. 성산대교의 역할을 분담해줄 월드컵대교 공사가 2022년 12월에야 최종 완료되기 때문이다. 본선 개통은 오늘 8월로 2개월이 채 남지 않았지만, 주변 도로와 인접한 램프(진입로)까지 개통하려면 아직 1년 반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착공 후 무려 12년 8개월 만에 공사가 최종 마무리되는 것으로 월드컵대교는 국내에서 ‘가장 느리게 지어진 다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전 정권 지우기'에 7년 지체된 공사
공사가 이처럼 늦어진 이유가 뭘까. 권완택 서울시 도로계획과장은 “서부간선도로와 연계하지 않고 월드컵대교를 개통해봐야 큰 효과가 없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말했다. 교통량 분산을 위해 서부간선도로 지하화 완료 시점인 오는 8월과 시기를 맞췄다는 설명이다. 권 과장은 이어 “강서·양천지역 주민 요구로 램프를 추가 건설하게 된 것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당초 계획된 램프는 ▶올림픽대로↔월드컵대교 ▶노들로↔월드컵대교 ▶월드컵대교→공항대로 ▶노들로→올림픽대로 등 총 6개였지만 안양천로·공항로와 월드컵대교를 잇는 램프까지 총 8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공사가 늦어진 직접적인 원인은 ‘전 정권 지우기’에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학과 교수는 “착공 이듬해인 2011년부터 토목보다 복지를 강조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3연임 하면서 공사가 명맥만 겨우 유지할 정도가 된 건 사실”이라며 “정치적으로 볼 사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4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당초 월드컵대교 완공은 2015년이었지만 직전 해까지 공정률이 약 18%에 그쳤다. 총 공사비가 3550억원 중 4년간 투입된 건 고작 555억원뿐이었다. 반면 박 전 시장의 치적 중 하나로 꼽히는 '서울로 7017' 사업의 경우 공사비 1년 반 남짓한 공사 기간(2015년 12월~2017년 5월) 동안 597억원이 집행돼 대조를 이뤘다.
공사지연 아쉬움, “교통분산, 시간 걸릴 것”
우여곡절 끝에 완공되는 월드컵대교의 개통 효과는 어느정도 일까. 권 과장은 “본선만 개통해도 성산대교 통행량의 약 3만대는 월드컵대교로 전환할 것”이라며 긍정적인 대답을 내놨다. 권 과장은 “특히 서부간선도로↔성산대교를 오가는 차량이 안양천로↔월드컵대교를 이용하는 교통이 분산될 수 있을 것”이라며 “여기에 서부간선도로 지하화로 왕복 4차선 도로가 추가로 생기면 차량 흐름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완공 시기가 늦어진 데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강 교수는 “차량 통행 패턴이 달라지고 안정화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단기적으론 새로운 도로의 수요가 늘어나 차량정체가 더 심해지는 '브래스의 역설'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특히 서부간선도로 지하화로 이용자들이 왕복 5000원에 가까운 통행료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 같은 문제 해결이 향후 교통상황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